LG그룹 2024년 정기 인사가 마무리됐다. 주요 계열사 수장이 교체되고 젊은 기술 인재가 대거 등용됐다. 지난해 인사가 '안정'에 가까웠다면, 올해 인사는 '쇄신'에 더 가깝다. 특히 '44년 LG맨' 권영수 부회장이 용퇴하면서 권봉석·신학철 부회장 2인 체제로 친정체제를 구축했다는 평가다.
24일 LG전자는 이사회를 열고 조직개편(2023년 12월 1일자)과 임원인사(2024년 1월 1일자)를 실시했다.
인사 발표 전날까지만 해도 재계에서는 조주완 LG전자 사장의 부회장 승진을 예상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새로운 신임 사장 2명(박형세 HE사업본부장·정대화 생산기술원장)을 승진시키며 사장만 3명인 조직이 됐다. CEO 직속 해외영업본부를 신설한 것도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다.
LG전자는 "이번 조직개편은 지난 7월 발표한 ‘2030 미래비전’을 향한 변화와 도약에 속도감을 더하고 이를 위한 조직 역량과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2030 미래비전은 가전을 넘어 고객의 다양한 공간과 경험을 연결·확장하는 스마트 라이프 솔루션 기업으로 변화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구광모 회장은 세대교체를 위한 인사를 단행해 왔다. 지난해에는 머리(사장급)가 아닌 허리(전무·상무급)에 변화를 많이 줘 40대 임원을 과감하게 늘렸다. 올해는 과감하게 사령탑도 바꾸며 전반적으로 세대교체 바람을 불어넣는 인사를 단행했다. 신규 임원 99명 중 1970년대 이후 출생이 97%를 차지했다.
■ LG엔솔·LG이노텍 수장 10년 젊어져…위기의 LGD엔 구원투수 투입
핵심 부품 계열사인 LG에너지솔루션과 LG이노텍은 사장이 교체되며 가장 큰 변화를 맞이했다. 특이점은 전략가나 CFO 출신보다는 기술·연구개발(R&D), 현장을 잘 아는 인물을 수장으로 앉힌 점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22일 자동차전지사업부장 김동명 사장을 신임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다. 김동명 사장은 1998년 배터리 연구센터로 입사해 연구개발(R&D), 생산, 상품기획, 사업부장 등 배터리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전문가다. 지난 2014년 모바일전지 개발센터장, 2017년 소형전지사업부장을 거쳐 2020년부터 자동차전지사업부장을 맡아 대규모 수주를 이끌어냈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영진은 10년이나 젊어졌다. 권영수 부회장을 비롯해 이방수 사장(CRO·최고 위기관리 책임자), 김명환 사장(CPO·최고 생산기술 책임자) 등 1950년대생 사장들이 대거 퇴진하고, 후임에 1960~1970년대생 김동명 사장, 박진원 부사장, 손창완 전무가 선임됐다.
LG이노텍도 10년 젊은 CEO를 선임했다. LG이노텍은 23일 최고전략책임자(CSO)인 문혁수 부사장을 신임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다. LG이노텍에 1970년대생 대표가 선임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LG이노텍 수장을 맡았던 정철동 사장은 LG디스플레이로 투입됐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2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2조원이 넘는 6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만큼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난 CEO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 사장은 지난 40여 년간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이노텍 등 LG의 부품·소재 부문 계열사를 두루 거쳤으며, B2B 사업과 IT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성과 경영 능력을 갖춘 최고경영자로 평가받는다.
LG 관계자는 "OLED 중심의 핵심사업을 강화하고 차별화 기술과 품질 경쟁력을 바탕으로 질적 성장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 '44년 LG맨' 권영수 용퇴…권봉석·신학철 부회장 및 황현식 사장 유임
이번 인사의 큰 이변 중 하나는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의 용퇴다. 1957년생인 권 부회장은 1979년 LG전자로 입사해 44년간 LG그룹에 몸담았다. LG디스플레이, LG유플러스, ㈜LG 등 LG그룹 내 최고경영자를 두루 맡아왔으며, 지난 2년간 LG에너지솔루션을 이끌며 IPO(기업공개)를 성사시키고 누적 440조원의 수주 잔고를 올리는 등 글로벌 배터리 1위 기업의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 부회장이 물러나면서 LG그룹 3인 부회장 체제는 권봉석 LG 부회장과 신학철 부회장의 유임으로 2인 부회장 체제로 바뀌었다.
신 부회장은 이제 LG그룹에서 유일하게 남은 1950년대생 CEO이지만, 구광모 회장이 취임한 2018년 영입된 외부 인재기도 하다.
황현식 LG유플러스 사장도 유임됐다. 당초 CEO 임기는 내년 3월까지였지만, 연장된 것이다. 업계에선 LG유플러스가 지난해 창사 첫 연간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하고, 최근 사물인터넷(IoT) 회선을 포함한 전체 이동통신 서비스 회선 수에서 KT를 앞선 점 등이 이번 황 사장의 연임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LG그룹 첫 여성 사장 1호인 이정애 LG생활건강 사장은 뚜렷한 성과가 없어 교체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선임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체 없이 계속 사장직을 이어간다.
이 밖에 계열사 인사로는 김영민 LG경영연구원 원장과 29년 만에 야구단 승리를 이끈 김인석 LG스포츠 대표의 사장 승진이 있었다.
■ 그룹 전체 R&D 임원 역대 최대 203명… ‘성과주의’와 ‘미래준비’ 기조
LG그룹은 이번 임원 인사에서 ‘성과주의’와 ‘미래 준비’라는 기조를 유지했다. 전체 승진자 중 31명이 R&D 임원인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그룹의 미래 사업인 ABC(인공지능·바이오·클린테크)와 SW 분야서 24명 승진, 그룹 전체 R&D 임원은 역대 최대인 203명으로 미래기술 경쟁력 강화에 힘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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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관계자는 "리더십 세대교체와 분야별 사업경험과 전문성·실행력을 갖춘 실전형 인재들을 발탁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1위 사업 달성에 필요한 장기적인 준비를 위해 해당 산업에서 성과를 내고 전문 역량을 갖춘 사업 책임자를 보임하여 변화의 드라이브를 가속화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인사를 통해 선임된 최고경영진들은 구본무 선대회장 재임 당시 임원으로 발탁된 이후 구광모 대표 체제에서도 중책을 맡으며 차세대 경영인으로 지속 육성, 앞으로 LG의 고객가치 철학을 구현하고 회사를 성장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