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빈대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문의 전화가 빗발쳐요."
지난 9일 오전 9시 영등포시장역 인근 사우나. 이곳 사장 이모씨(70대)는 울상을 짓고 있다. 손님들에게 빈대가 없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빈대 포비아가 갈수록 확산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부 업체를 불러 최근 내부 소독 작업을 한 결과 빈대는 단 한 마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안해하는 손님이 많다고 한다. 괜히 빈대가 아닌 셈이다.
이씨는 "몇 년 전에도 빈대가 나온다는 소식에 살충제를 도포했다"며 "빈대 공포 때문에 손님이 더 찾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방역 아무리 신경 써도 꺼지지 않는 '포비아'
전국 곳곳에서 빈대가 출몰한다는 소식에 목욕탕이나 찜질방 등 다중이용시설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여느 때보다 방역에 신경 쓰고 있지만 빈대 포비아를 불식하기엔 역부족이다.
만화방도 직격탄을 맞았다. 최근 만화방은 쿠션이나 소파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빈대가 옮겨붙을 위험이 있는 만큼 방역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서울 강남역 소재 만화방 관계자는 "빈대가 매장에 출몰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큰일이 나는 만큼, 직원들끼리도 '조심하자'며 경각심을 갖고 일을 하고 있다"며 "제휴된 방역 업체에 더 신경을 써 달라고도 했다"고 말했다.
사무실이 밀집된 있는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도 빌딩마다 빈대 퇴치 방법과 주의사항을 알리는 공지문이 붙어 있었다.
문정역에서 헬스장을 운영하는 B씨는 "승강기 공지에 빈대 주의 사항이 붙어 있어 경각심을 가지려 한다"며 "혹시라도 퍼지면 안 되는 만큼, 마감할 때마다 소독을 하고 간다"고 전했다.
시민들의 '빈대 공포'는 상당한 수준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빈대가 옮겨붙을 수 있어 지하철에 빈자리가 생겨도 앉지 않는다", "되도록 코트같이 쉽게 달라붙을 수 있는 소재의 옷은 입지 않으려 한다" 등의 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직장인 김모씨(32)는 "평소 온라인 쇼핑을 즐기고 있는데 요즘에는 아예 현관문 밖에서 개봉한다"며 "영화관이나 뮤지컬도 보러가기 꺼려진다"고 전했다.
정부 합동대책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6일까지 전국 17개 시·도에 접수된 빈대 의심 신고건수는 30여건으로 전해졌다. 지난 2014년부터 약 10년간 관련 신고는 9건에 불과했지만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대구 계명대 기숙사에서 발견된 이후 지난달 인천 모 사우나 등 전국 각지에서 출몰하고 있다.
◇박멸 어렵다지만 과도한 '공포' 경계해야
빈대는 대표적인 '흡혈충'으로 물리면 피부가 빨갛게 붓고 가렵다. 동시에 여러 마리의 빈대로부터 물리면 고열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빈대는 좁은 문틈에 숨어들어 좀처럼 '박멸'이 어렵다. 피를 빨지 않아도 성충은 최장 6개월가량 생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방제 전문가들은 바퀴벌레보다도 처리 난도가 높은 해충으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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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과도한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설명한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영화관이나 만화방은 빈대가 서식하기에 적합한 장소는 아니다"며 "사람들이 다 옷을 입고 있는 만큼, 빈대가 흡혈하기 어려워 여러 개체가 증식할 확률은 낮다"고 말했다.
제공=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