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한민국엔 미래 담론이 없는가

[김경묵 칼럼] '테크가 세상을 바꾼다'는 인식 부재가 문제

데스크 칼럼입력 :2023/11/07 07:26    수정: 2023/11/08 10:12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잘 알거나 잘하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잘 모르는 것은 일단 꺼립니다. 실수할 가능성을 줄이려는 인간 특유의 방어기제 때문이라고 심리학자들은 분석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인간사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 방어기제 때문에 우리나라가 미래로 한 발짝도 못나간다면 문제가 좀 달라집니다.

국회로 잠깐 눈을 돌려볼까요. 

의원 한명 한명이 입법 기관이라는데, 과연 그들이 잘 알거나 잘하는 일은 뭘까요? 현재까지 그들이 보여준 것만 보면 진영논리에 함몰된 이념논쟁, 과거사 후벼파기, 협치 대상 악마화 하기 등으로 파악됩니다. 그 어느 것 하나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는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제공=이미지투데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바로 미래에 대한 제대로 된 비전이 없어서 입니다. 비전은 왜 없을까요? ‘기술(테크)이 세상을 바꾼다’는 인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100% 완벽한 해답은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진단하는 최소한의 단초는 될 거라 생각합니다.

미래는 늘 기술의 진보로 창조돼 왔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테크는 미래를 바꾸는 공식이 돼버렸습니다. 2000년대 들어 가속화된 인터넷혁명, 모바일 혁명, 그리고 지금 목도하는 AI혁명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기술혁명이 무서운 건 그 사회의 비즈니스 인프라는 물론 더 나아가선 국민의 생활 인프라를 송두리째 바꿔 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이제는 가물가물한 기억이겠지만, 우리는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컴퓨터 키보드로 많은 것을 해결했습니다 서류작성은 물론 검색이나 쇼핑 주문 등 웬만한 일상은 키보드로 다 가능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몇 년전 부터는 스마트폰에서 손가락 터치 하나만으로도 전혀 불편함 없이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는 마블영화의 '자비스'처럼 음성명령 하나로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에 살 것 같습니다.

단순히 기술의 진보로 삶의 양태가 이렇게 편해졌다는 것을 강조하는 게 아닙니다. 이러한 변화가 미래 먹거리 독점을 가능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부의 권력지도를 바꾼다는 데 큰 시사점이 있습니다.

단적인 예가 미국 시가총액 10대 기업의 변화입니다. 2000년대 이전만 해도 시총 10위 내에는 금융, 석유, 방산, 유통 제조 기업들이 차지했습니다. 2020년 이후 이 자리에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메타),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등 IT업체 일색입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미래는 테크가 열고, 미래를 여는 자들이 부의 권력을 차지한다는 상식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국회의사당(제공=이미지투데이)

다시 우리나라 얘기로 돌아와 봅시다.

여의도 국회에는 법이 정한 300명의 의사결정권자들이 있습니다. 나름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 테크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무엇이 세상을 그렇게 변하게 하고, 우리가 어떻게 이 변화에 대응해야하는 지 한번이라도 고민한 의원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찌 보면 그건 그들만의 잘못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잘해 왔던 일을 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그저 공천과 지역구 생각만 가득한 그들에게 우리나라 미래를 위해 테크 공부를 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사치일 겁니다.

결과적으로 그런 사람을 뽑은 우리의 잘못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 상황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는 겁니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 혁명을 넘어 AI가 세상을 집어 삼키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처럼 여야가 극단적인 대립만 계속하고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AI 혁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2류, 3류 국가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최소한 국회에 미래지향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여야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 운명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미래 도시(제공=이미지투데이)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진영에 관계없이 10% 정도(진영별로 15명씩 총 30명)만 IT를 아는 분들로 채우자는 겁니다. 그들이 국민의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미래담론을 펼치면서 정책대결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자는 겁니다.

생각 같아선 지역이기주의의 산물인 지역구까지 없애자는 제안을 하고 싶지만, 차마 그런 말까지는 못하겠습니다. 

이런 제안을 하는 건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대의정치의 기반인 국회는 민의와 나라 상황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나라에서 IT가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10%가 적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둘째, IT는 국회가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인 대의기관으로 도약하는 기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상황에서 여야가 어느 날 갑자기 협치를 할 것으로 기대하긴 힘들어 보입니다. 서로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영역인 IT는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여야 어느 쪽도 그 가치를 부정하기 힘듭니다. 지금 같은 극한 대결 양상에서 서로 진정성 있는 대화를 시작할 실마리를 찾기 가장 좋은 분야란 겁니다. 게다가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영역인 만큼, 여야 어느 쪽도 외면해선 안 되는 분야가 바로 IT입니다. 그러니 가치중립적인 IT를 통해 여야가 통 큰 정치를 하는 출발점으로 삼자는 겁니다.

하나 더 바라는 게 있다면, 소득수준 3천 달러 시대에 성공하신 분들이 그들의 성공방식으로 소득수준 3만 달러 시대 젊은이들의 미래를 강요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분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우리는 미래로 한 발 짝도 못나갑니다.

또 지금처럼 입법독재와 정치과잉으로 미래담론의 기회조차 앗아가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모든 분야에서 정치적 수사로만 얘기하는 나쁜 버릇을 이제 멈추셨으면 합니다.

경제는 경제의 언어로, 문화는 문화의 언어로, 교육은 교육의 언어로 소통해야지 지금같이 모든 걸 정치적 언어로 유불리만 따지는 한 우리나라의 미래는 요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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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4월 총선에서 이길 궁리만 하는 양당 정치인들에게는 제 얘기가 한가하게 들리실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겐 한가하게 들리는 이 얘기가 국회가 국회다워지고 나라가 나라다워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저열한 정치과잉에서 벗어나 미래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그런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