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P요? 쉽지 않습니다. ERP는 단순히 소프트웨어(SW) 기술이 아닙니다. IT와 경영 두 요소가 합쳐있습니다. SW기술은 물로 경영 지식을 알아야 하고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국내 모 대기업도 ERP한다고 뛰어들었다 철회했습니다. ERP는 회사 전체 업무 영역을 인티그레이션(통합)하고 또 경영 성과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국내 ERP 제품 중 이런 기능을 갖춘 건 우리가 유일합니다."
회사 대표보다 '원장'이란 용어가 친숙한 권영범 영립원소프트랩(이하 영림원) 대표는 지난 19일 지디넷코리아와 인터뷰에서 이 같이 밝혔다. 이날 영립원은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서울 인터컨티넨탈코엑스에서 '2023 영림원소프트랩 기업문화 혁신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날 주제는 '경영을 더 잘하게 하는 제2의 플랫폼'이였다. '경영을 더 잘하게'는 영림원이 지난 30년간 지켜온 슬로건이다. 자사 ERP를 도입하는 기업고객의 경영을 '더 잘하게' 돕겠다는 권 대표의 철학이 담겨있다.
이날 행사에서 권 대표는 직접 주제강연을 했다. 권위보다 개인이 중시되는 새로운 시대가 왔다고 짚은 그는 기업문화 혁신은 필연이라면서 "기업은 현 시대에 맞는 혁신 도구를 활용해 건강한 기업문화를 창조하고 가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림원은 이날 기업문화 혁신을 돕는 툴(소프트웨어) 3종을 공개했다.
3종 중 핵심인 '플렉스튜디오 2.0(Flexudio 2.0)'이다. 비전문가도 30분만에 모바일 앱을 만들 수 있는 노코드 앱 플랫폼이다. 또 익명성을 보장해 참여도를 높이고 새로운 브레인스토밍 방식으로 보다 효율적으로 아이디어를 수집하는 '에버레스크(EverAsk)' 앱과 여러 앱에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한 화면에서 조회할 수 있게 데이터 중앙화와 원클릭 이동을 지원하는 통합 뷰 클라우드 서비스 '에버런(EverOnOne)'도 발표했다. 앞으로 기업문화 혁신을 돕는 이런 앱들을 계속 내놓을 예정이다.
권 대표는 신제품 도구에 대해 "지난 30년간 영림원은 ERP 한 우물만 파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다"면서 "이제 새로운 30년 성장을 위해 기업문화를 혁신하는 도구들을 개발해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ERP가 기업 실행력을 도와주는 시스템이라면, 기업문화 혁신 앱은 구성원 간 시너지와 개인 생산성을 높여줄 것"이라면서 "영림원은 기업이 경영을 더 잘할 수 있도록 'ERP'와 '기업문화 혁신 앱'을 양대 축으로 기업문화 혁신을 이루는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권 대표 강연 직후 설립 30주년을 맞은 소회를 듣고 싶어 따로 단독으로 인터뷰를 했다. 30년 세월이면 강산이 세번 바뀐 세월이다. 온갖 애증이 있을법한데 그는 30년 세월이 "현재 닥친 문제를 해결하느라 집중하다보니 금방 갔다"고 했다.
권 대표는 시험쳐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시절 명문인 경기고등학교를 졸업(73년)하고 서강대 전자공학과 학부를 마쳤다(77년). 뉴욕주립대학원 기술경영 석사(2003년)와 미국 USC MBA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2006년).
전공은 전자공학이였지만 소프트웨어(SW)에 끌렸다. 대학졸업 후 삼성전자 컴퓨터사업부에 입사해 SW를 독학으로 배웠고,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시스템공학센터와 큐닉스데이타시스템을 거쳤다. 당시 전국체전 전산화(1983년)와 메인프레임 다운사이징같은 고난도 정보화 프로젝트를 실무 지휘하며 '고수'가 됐다. 패키지SW에 길이 있다는 확신이 들어 1993년 5월 영림원소프트랩을 창업했다. 당시 개념조차 없던 ERP 개발에 뛰어들어 1997년 '국산 1호 ERP'로 불리는 'K-system'을 세상에 내놨다. 아래는 권 대표와 일문일답. 영림원은 설립 30주년을 기념해 오는 11월 전직원이 일본 워크숍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에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예전 CTO같은 마음이 들었다던데
"설립하고 나서 20년 정도 CTO도 직접 맡았다. CTO때 항목 하나하나를 세밀히 챙겼다. 나이가 드니 힘이들더라. 환갑때인 8~9년전에 CTO 자리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이번에 '에버레스트' 출시할 때는 아이디어도 내가 내고 예전 CTO 시절처럼 화면그림을 직접 그렸다.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6년전에 회사일에 집중한다면서 외부 활동을 다 접고 휴대폰 번호도 바꿨다. 지금도 그러나?
"6년전 외부 모임을 끊은게 24개 정도 된다. 회사 내부 업무에 집중하려고 그랬다. 2020년 8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나름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 지금은 끊었던 24개 중 가까운 친구 모임 몇 개만 다시 살렸다."
-창립 30주년 기념 컨퍼런스에서 신제품 3종을 선보였다
"지난 30년간 우리가 주력해온 ERP는 이제 확고한 경쟁력을 갖췄다고 본다.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자신이 있다. 새 성장을 위해 새로운 아이템을 찾았고, 이번 컨퍼런스에서 선보인 기업문화 혁신을 돕는 도구들이 그 아이템이다. 3년전부터 기업문화 혁신이라는 화두를 잡고 노력했다. 그 결과 노코드 플랫폼 ‘플렉스튜디오(Flextudio) 2.0’과 ’에버레스크(EverAsk)’ ‘에버런(EverOnOne)’이 탄생했다. 준비는 3년전에 했지만 개발은 큰 리소스를 동원하지 않고 단기간에 끝냈다."
-'경영을 더 잘하게'라는 슬로건은 30년 역사 중 언제 쓴 건가?
"창업할때부터 우리 사명이다."
-경영을 더 잘하게 하는 건 뭔가?
"경영의 본질에 충실하는 거다. 경영의 본질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시너지를 내고 경쟁 우위 전략을 수립해 충실히 수행하는 거다. 올바른 일을 올바른 방법으로 수행, 효율적으로 일해 성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효율적으로 일을 하는 것은 ERP가 커버할 수 있다. 하지만 그외 것은 안된다. 마음에 우러나 일을 하거나, 개인이 일을 잘할 수 있게 하는 문화 조성 등이 필요한데 이런 건 ERP가 커버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에 기업문화를 혁신하는 도구들을 선보였다. 세상이 바뀌었다. 20세기는 효율문화와 권위적이였지만 지금은 개인이 중시되는 시대다. 20세기 생각을 가지고 21세기 사람들에게 효율을 높이라고 하면 안된다."
-새 도구는 누구를 겨냥한 것인가? 고객층은?
"기존 우리 주 고객층은 중소중견 기업이 대부분이다. 먼저 기존 고객부터 적용하고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 대기업도 공략할 거다."
-플랫폼 역할을 하는 '플렉스튜디오 2.0'은 뭔가?
"외부의 다양한 파트너 아이디어를 모아 이를 빨리 앱으로 만들 수 있게 해주는 플랫폼이다. 내년에는 '플랙 스튜디오2.0' 기반의 앱 공모전도 할 예정이다. 백개든 천개든 기업문화 혁신과 관련 앱을 계속해 '플렉스튜디오 2.0'에 올릴 거다. 개발자와 수익을 나눌 수도 있다. 이걸로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커버할 수 있다."
-기업문화를 혁신하는 새 도구를 발표했는데, 영림원의 기업문화는 어떤가?
"권위를 배척하고 수평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회사 호칭을 다 님으로 통일했다. 나도 신입사원들이 권영범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요즘은 다시 원장님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웃음). 우리 회사의 대표적 수평 문화가 '영웨이 협의회'다. 350여명의 전직원을 20명씩 조를 짜서 매주 한번, 수요일에 내가 참석한 가운데 독서 토론을 한다. 토론이 끝나면 저녁식사와 함께 와인을 마시며 자유롭게 대화한다."
-ERP라고 다 같은 ERP가 아니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ERP하면 다 같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ERP는 회사 전체 업무 영역의 프로세스 를 인테그레이션(통합)하고 또 경영 성과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거래처별 손익이 어떻게 되는지, 품목별 손익은 어떻게 되는지, 이런 걸 알려줘야 한다. 프로세스 통합과 인과적 데이터가 인테그레이션 되는 구조를 갖춰야 진정한 ERP라 할 수 있다."
-이런 ERP는 국내에 몇 개나 있나?
"국내에 ERP 기업이 10~20곳 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기능을 갖춘 곳은 국내에서 영림원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곳은 품목별 손익과 거래처별 손익을 처리하지 못한다. 커스터마이징해 억지로 맞췄기 때문에 2~3년 쓰다 보면 단점이 드러난다. 해외 제품 중에는 SAP가 이런 기능을 갖췄다. 다른 외국계 제품은 아직 이런(통합) 구조를 갖추지 못했다고 본다."
-영림원은 SAP같은 글로벌 제품과 직접 경쟁할 수 있나?
"국내에서는 SAP와 우리가 승률이 반반이다. 특히 매출 1천억~2천억하는 기업은 우리를 더 선호한다. 하지만 5천억 이상 기업은 아무래도 SAP를 더 선호한다. 5천억 이상 정보화 사업은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야해 우리같은 규모 기업이 할 수 없다. 그래서 안들어간다. 최근에도 수주할 수 있다며 같이 들어가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안한다고 했다."
-대학 전공은 전자공학인데 SW엔지니어가 됐다.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무엇을 전공으로 할 건가?
"이과는 안할 것 같다(웃음). 철학, 뭐 이런 쪽을 할 것 같다. 내가 나이 딱 40일때 창업을 했다. 이후 정신없이 살았다. 책은 50대부터 보기 시작했다."
-경영 성과로 '336'을 제시했다던데
"3년안에 300명으로 600억(매출)을 달성하자는 거다. 올해 매출이 600억 넘을 것으로 보여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엔 수출도 많이 강조했다. 수출 성과는 어떤가?
"어려운 일본에서 클라우드 SaaS 고객 10곳을 확보했다. 지난달에는 일본에서 ERP 사업을 아주 크게 하는 현지 대형사가 보자고해 만났다. 일본시장에서 영림원이 지속적으로 사업을 할 것인지 알고싶어 불렀더라. 일본시장에서 영림원 입지가 커지고 있다."
-40살에 창업해 30년이 지났다. '국선도 하는 CEO'로 유명한데 건강은 어떤가?
"한 10년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다른 소프트웨어였다면 벌써 은퇴했을 거다. 근데 ERP는 IT와 경영이라는 두 요소가 합쳐져있다. 경영 지식을 알아야하고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이게 없으면 매우 다양한 회사들의 프로세스를 통합할 수 없다. 기술이 문제가 아니다. 기술보다 지식이 없어 ERP를 못만드는 거다. 몇 년 전에 어떤 대기업이 ERP를 만든다고 했는데 결국 지금은 쑥 들어갔다. 건강관리를 위해 지금도 국선도 수련을 하고 근력이 있어야 한다기에 최근에는 걷는 것도 많이 하고 있다."
-그래서 ERP가 쉬운게 아니라고 말하는 건가
"그렇다. 회사가 천양지차다. 여기에 예외적인 경우도 많다. 회계장부처리에서 시작한 회사와 우리는 차원이 다르다. 거기는 아직도 통합 등에 문제가 있다. ERP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회사 설립 30년인데 쥬니어 후배나 업계 후배에 한 말씀 해달라
"여태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아직 은퇴할 생각이 없나보다(읏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