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발견은 선거 주기에 맞춰 일어나지 않습니다. 정책은 4-5년마다 바뀌지만, 기초 연구는 훨씬 호흡이 깁니다."
신소재 2차원 물질 그래핀을 발견해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맨체스터대학 교수는 2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노벨 프라이즈 다이얼로그 서울 2023' 행사에서 "최근 한국의 연구개발(R&D) 예산이 삭감된 것은 한국 과학에 어느 정도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벨 프라이즈 다이얼로그는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매년 12월 스웨덴 현지에서 개최되는 학술행사인 '노벨위크 다이얼로그'의 해외 특별 행사로 노벨상 수상자와 세계적 과학자, 정책 담당자 등이 글로벌 이슈에 대해 대중과 소통하는 행사다. 올해 행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노벨재단 산하 노벨프라이즈아웃리치 공동 주최로 서울에서 열렸다.
이날 참석한 5명의 노벨상 수상자 등은 기초 과학에 대한 장기적 전망의 지원과 국제 네트워크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컴퓨팅 기술을 생물학에 도입한 공로로 2013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마이클 레빗 스탠포드대학 교수는 "제한된 예산과 과학적 성과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정책은 과학보다 어려울 수 있다"라면서도 "과학과 교육에 대한 투자보다 미래에 중요한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우주 배경복사에 대한 연구로 200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조지 스무트 홍콩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30년 전 한국을 처음 방문해 기초 과학 연구와 이의 상용화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통해 과학의 최전선에 설 필요하다고 조언했고, 10년 전 한국 정부가 해외 과학자들을 초빙하며 기초 과학에 대대적으로 투자할 때 이화여대에서 가르친 경험이 있다"라며 한국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그는 "한국은 기초과학 분야 연구성과를 빠르게 상용화해 세계 평판 디스플레이 산업을 주도한 바 있다"라며 "기초 과학 성과를 산업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한데, 어떤 분야가 발전하고 새로 나타날지는 해당 분야에서 직접 연구하며 알아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비다 헬게센 노벨재단 총재는 세계 과학계의 자유로운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과학의 발전은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교환과 도전에 의존한다"라며 "과학 네트워크에 대한 지원도 연구개발 지원 못지 않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노벨상 수상자들 역시 더 큰 지식 네트워크의 일부라는 설명이다. 또 헬게센 총재는 "기후위기나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기술의 급속한 발전 등 시급한 글로벌 문제들이 있다"라며 "포퓰리즘과 양극화가 심해지는 세상이기에 더 많은 과학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노벨재단이 과학문화 활동에 나서는 이유다.
노보셀로프 교수도 "과학에 대한 지원 정책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문제"라며 "이번 행사 같은 기회를 통해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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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적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저온전자현미경을 통해 생화학 연구를 혁신해 2017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요아힘 프랭크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가 과학자들에게 특정 방향으로 연구하라는 압력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라며 "가설을 제시하고 검증하는 가설 기반 과학에 대한 지원이 정부가 과학을 지원할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단백질 구조에 대한 연구로 1988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하르트무트 미헬 막스플랑크연구소장은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저명 학술지에 실리려면 주류 연구를 해야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비주류 연구들이 중요한 성과를 가져올 수 있다"라며 "논문 수로 연구를 평가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