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中 배제 공급망 구축 정답 아닐 수있다

광물 정·제련 시장 독점 中 배제 어려워…미·중 사이 절묘한 운영의 묘 찾아야

기자수첩입력 :2023/09/12 17:01    수정: 2023/09/12 18:20

강대국 사이에 놓인 중소국가의 설움은 늘 존재했다.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 놓였던 조선이 그랬고 미국과 소련 사이에 놓인 대한민국이 그랬다. 15세기 조선은 명과 청 사이에서 병자호란을 겪었고 70년 전의 한국은 미소 냉전 사이에서 6.25라는 비극을 겪었다.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나올법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건 다름아니다. 현재 한국 산업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미중 신냉전이라는 파고가 전세계에 들이치면서 산업계에서도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한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그렇다. 겉으로는 친환경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속내는 미국 자국 역내에서 중국 산업을 노골적으로 배제하기 위함이다.

IRA 입법 당시 국내 산업계는 탈중국 공급망을 기치로 내걸었다. 중국 중심의 원자재 수급 질서에서 벗어나 전 세계 각지에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입법 당시 취지와는 다르게 IRA가 시행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중국 중심의 공급망은 여전하다.

국내 배터리, 이차전지 기업은 중국 기업과 합작형태로 국내에 새로운 공장을 짓거나 기술 개발에 나섰고 제3국에 공급망을 구축했지만 이 역시 중국 기업에서 자유롭지 않다. 실제 SK온, LG화학이 각각 중국의 거린메이, 화유코발트와 합작을 진행하고 있고 인도네시아에 공급망을 구축한 에코프로는 중국 거린메이가 운영하는 QMB라는 제련소를 통해 원자재를 공급받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백악관 홈페이지)

중국 공급망을 벗어나지 못하는 국내 기업의 한계일까. 그렇지 않다. 중국은 광물 정제련 시장에서 리튬 60%, 니켈 65%, 코발트 82% 등 배터리 자원을 거의 독식하다시피하는 수준이다. 제3국에 공급망을 구축하더라도 중국 기업이 정·제련을 장악하다보니 중국을 배제하기란 극도로 어려운 노릇이다. 더욱이 중국의 광물 채굴 비중은 약 20%에 불과하지만 전체 광종 정제련 과정에서 90%에 달할 정도의 절대적인 위상을 갖추고 있다.

미국 역시도 이를 의식했을까. 해외우려집단(FEOC) 세부사항 발표도 미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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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부는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을 FEOC로 지정했지만 어떤 기업을 어떤 형식으로 제제할지 구체적 규정이 없는 상태다. 앞서 지난 6월 FEOC조항이 발표될 것으로 관측됐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어떠한 소식도 없다.

설령 FEOC 가이드라인이 구체화되더라도 미·중 사이에 놓인 국내 기업들은 절묘한 운영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500년 전 조선처럼, 70년 전 한국처럼 어느 한쪽을 배제하는 것은 정답이 아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