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 미래산업의 교두보, 헤리테크

헤리티지 테크놀로지&트렌드 컨퍼런스, 세계국가유산산업전

디지털경제입력 :2023/08/18 10:11    수정: 2023/08/18 11:35

내년 5월부터 문화재가 ‘국가유산’으로 확장된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 이래 ‘국가유산 기본법’이 신설되며 재화적 성격이 강한 문화재를 역사‧정신까지 아우르는 명칭인 유산(HERITAGE)으로 공식 변경하게 된다.

이와 함께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세부 분류해 국제기준인 유네스코(UNESCO) 체계와 부합하도록 하고, 이를 통틀어 국가유산이란 용어를 채택함으로써 문화재 체제를 국가유산 체제로 전환한다. 기존의 문화재 명칭이 재화‧사물‧과거에 머물렀다면, 이제 계승‧활용‧미래로 획기적 확대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활용‧진흥에 관한 내용을 명기됐다는 점에서 시대가 담겼다. 제4장에 국민 복지 증진, 유산정보 관리, 교육-홍보, 산업 육성이 구체적 적시되면서 우리 유산의 디지털 보존과 첨단 복원, ICT 활용 솔루션이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경주 신라왕경에 도입 검토 중인 디지털 유산관광 ‘XR-버스’ 시뮬레이션 이미지

지난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 5월 16일 공포된 국가유산 기본법(배현진 국회의원 대표발의)에 따라 문화재 관련 사업들의 명칭도 점진적 변경된다. 그중 2017년 제1회를 시작으로 7년째 이어져 오는 국제문화재산업전이 올해부터 ‘세계국가유산산업전’으로 개편, 9월 14일(목) 개막을 앞두고 있다.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박람회에서 93개 참가업체, 298개 전시부스, 4,654명 참관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된 산업전은 올해도 역대 최고의 참가업체 부스 조기 신청률을 기록하며 국가유산 산업 기업 및 기관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으며, 바이어를 포함해 5.000여 명의 참관객이 다녀갈 것이라고 한다.

1987년, 일본 오사카대학교 환경공학과 환경디자인 연구실에서 박사과정 당시 김동현 회장

▲ 헤리테크(HERI-TECH 2023)

디지털 혁명기, 산업전에서 주목할 프로그램이 있다. 작금의 화두가 되는 챗 GPT와 같은 거대생성 AI와 신기술융합콘텐츠, 메타버스, 미디어아트 등 미래 지향적 프로젝트를 공유하고 국가유산 관련 최신 기술과 동향을 파악해 볼 수 있는 컨퍼런스 ‘헤리테크’다. 헤리티지 테크놀로지 앤 트렌드 컨퍼런스(HERI-TECH 2023)로 산업전 기간 중 9월 15일(금) 경주 하이코(HICO)에서 10시 30분부터 열린다.

코로나 위기가 가져온 기술 대변혁의 시대에는 어느 국가가 문화자원과 디지털을 신속하고 실효적으로 발전시키는지에 따라 국가경쟁력이 좌우된다. 그래서 헤리테크는 국가유산 보존‧활용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시간이다. 어제를 통해 내일을 여는 유산산업의 교두보다.

헤리테크 컨퍼런스(HERI-TECH 2023)는 산업전 5년 차인 2021년 시작돼 올해 3회를 맞았다. 문화재청이 2021년 6월 발표한 ‘문화재 디지털 대전환 2030’을 계기로 매년 문화재 관련 디지털 기술 개발의 트렌드를 공유하고 전망하는 자리다.

과거에는 문화재를 돈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인식과 함께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으나 문화재와 디지털 기술이 융합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이제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여행을 떠날 수 있고 문화재 로봇의 안내를 받으며 옛사람들의 행위나 역사적 사실들을 체험해 볼 수 있게 됐다. 디지털 기술과 융화하면서는 후손에게 소중히 물려줘야 하는 유산을 지속가능한 새로운 가치 창출과 산업화까지 유발한다.

한국인이 수행한 한국 최초의 문화유산 디지털 복원이자 일본 최초의 문화유산 디지털 복원 작업이었던 일본 나라시대 도성 평성경 남문인 주작문의 3D디지털 결과물

헤리테크 컨퍼런스는 세계국가유산산업전으로의 도약과 함께 연사들도 단연 디지털 헤리티지 분야 국내 최고의 독보적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2명의 기조연설과 10명의 전문가 발표가 진행된다.

먼저 가상현실콘텐츠산업협회의 김동현 명예회장이 ‘디지털 헤리티지의 태동과 미래기술 전망’으로 첫 기조연설을 한다. 우리나라 디지털 헤리티지의 시원으로 1986년부터 1987년에 걸쳐 수행된 일본 평성경 주작문 3D 디지털 복원과 1991년 백제 미륵사 서탑 3D 디지털 복원 작업 사례를 통해 초창기 시도되었던 한국 디지털 헤리티지 프로젝트의 연원을 밝힌다.

두 번째 기조연설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유동환 교수가 ‘디지털 헤리티지, 기술과 콘텐츠 융합 ‧혁신의 미래’를 주제로 단상에 오른다. 디지털 헤리티지 발전과정에 있어서 기술과 콘텐츠가 어떻게 상호 융합하면 발전해 왔는지 살펴보며, 그 과정을 통해 디지털 헤리티지 콘텐츠의 미래 전망을 짚어 본다.

오후 1시부터는 디지털 헤리티지와 관련하여 최근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전문가들의 발표가 이어진다. 최인화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장, 안형기 재단법인 한국고고환경연구소 디지털콘텐츠실장, 신강준 시공테크 전무, 이용규 한국폴리텍대학 교수, 유정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정성혁 충북대학교 교수, 문준석 펀잇 대표, 최정환 스코넥 부사장, 이권수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정보원 문화빅데이터부장, 박진호 고려대학교 버추얼 스마트시티 시각화시스템 융합교육연구단 연구교수 순으로 진행된다.

일본 평성경 주작문의 컴퓨터 캐드 프로그램을 통한 설계 이미지

▲ 디지털 헤리티지의 시원

기조연설을 하는 김동현 회장은 1986년 일본 오사카 대학교 박사과정 당시, 일본 나라문화재연구소의 요청으로 일본 나라시대(AD 710∼794) 도성이었던 평성경 남문인 주작문릏 3D 디지털 복원한 장본인이다.

회고에 따르면, 1986년 일본의 나라문화재연구소에서는 AD 8세기 일본 나라·아스카 시대 수도였던 평성경의 입구였던 주작문을 실물 복원하려 했다. 그러나 당장 실물 복원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고 사전 점검 없이 복원하기에는 부담이 컸다고 한다. 

1986년 일본 나라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오사카 대학에 실물 복원을 위한 시뮬레이션을 요청했고, 마침 이때 한국에서 유학 온 김동현 박사의 주도로 7세기 당시 일본 평성경 도성에 있었던 주작문을 1986년 12월 3D디지털 복원 작업을 완료하게 됐다고 한다. 그로부터 12년 뒤인 1998년에 실질적으로 일본 정부는 주작문 실물 복원에 이르게 됐다.

나라문화재연구소의 공식 요청으로 당시 일본오사카대학교 환경공학과 환경디자인 연구실에 있었던 김동현 박사는 AD 8세기 건축이었던 일본 평성경 남문인 주작문을 디지털 복원하게 되었는데, 이는 일본 디지털 헤리티지 역사상 첫 시도였다. 그 주역이 한국인 김동현이었다는 사실이 역사에 남게 됐다.

1998년 일본 나라 평성경 유적지에 실제 주작문을 재건했던 당시 모습

1987년 당시, 일본 디지털 헤리티지의 첫 삽을 뜬 김동현 박사는 오사카 유학을 마치고 1991년 대전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키스트) 시스템공학연구소로 자리를 잡게 되는데, 이곳에서 한국 디지털 헤리티지의 또 다른 역사가 이루어지게 된다.

1991년 당시 문화부장관은 이어령 교수였다. 이어령 장관은 외국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이 문화재도 복원한다는데 우리나라에서도 해야하지 않겠냐며 당시 김진현 과학기술처 장관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김진현 장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이를 수행할 수 있는지 알아보게 되고, 마침 키스트 산하 시스템공학연구소에 근무하던 김동현 박사가 발탁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디지털 헤리티지 프로젝트는 익산 미륵사지 서탑을 대상으로 디지털 복원 작업을 실시했다. 당시는 지금 같은 PC가 전무했던 시절이기 때문에 미국 휴렛팩커스사의 대당 5억짜리 워크스테이션 장비로 미륵사 서탑 디지털 복원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고 한다. 이 백제 미륵사 서탑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는 1991년 8월 시작해 1991년 11월 완료됐다.

허물어진 익산 미륵사지 서탑을 대상으로 미륵사 서탑 9층 설과 7층 설을 각각 검증하기 위해 두 가지 모두 가상 시뮬레이션을 통해 재현했다. 그리하여 이 두 가지 결과물을 역사학자들이 몇 층이 맞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근거자료로 제공했다. 그 결과, 비례관계 등을 고려할 때 9층 설이 타당하다는 것이 정설이 됐다.

익산 미륵사 서탑에 대한 가상 시뮬레이션 복원의 한 장면

1991년은 한국 디지털 헤리티지 역사에 획기적인 시기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디지털 헤리티지 작업인 바로 미륵사 서탑 시뮬레이션 프로젝트였다. 2005년에야 비로소 정립된 ‘디지털 헤리티지’ 개념을 1987년 일본이나, 1991년 한국 실정에 디지털 헤리티지 잣대를 들이대긴 어렵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컴퓨터를 이용해 문화재에 적용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없었던 시기였다.

유럽에서 디지털 헤리티지는 1990년대 버추얼 아키올로지(Virtual Archaelogy)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본격적인 디지털 헤리티지 프로젝트는 1999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미켈란젤로 작품을 3D스캔하는 ‘미켈란젤로 프로젝트’가 가장 대표적인 디지털 헤리티지 프로젝트로 손꼽는다. 일본 최초의 컴퓨터를 이용한 실물 건축 복원을 위한 사전 3D Simulation이 한국인의 손에 의해 오사카 대학에서 이루어졌고, 일본에서 첫 디지털 복원 작업을 수행했던 김동현 박사에 의해 1991년에는 익산 미륵사지 서탑도 3D Simulation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동현 회장의 이번 기조연설은 한국 디지털 헤리티지의 기원과 그 앞서서 이루어진 일본 디지털 헤리티지의 시작을 고찰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인도 석굴 사원과 이집트사원 내부를 3차원 스캔을 바탕으로 재현한 모습

▲ 국가유산과 디지털 기술

전문가 발표의 첫 순서는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최인화 소장이다. 최근 단행본 <디지털 고고학 개론>을 출간했는데 ‘해외 디지털 고고학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유럽의 최신 디지털 헤리티지 사례를 공유한다. 이어 한국고고환경연구소 안형기 실장(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겸임교수)은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는 역사도시 관련 디지털 헤리티지 현황과 발전 방향에 대해 제시한다.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신라왕경 디지털 복원’에 대한 내용도 이날 일반에 최초 공개된다. 시공테크 신강준 전무가 ‘서라벌 천년 디지털 헤리티지 실감콘텐츠’를 주제로 ‘서라벌 천년 시간여행’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올해부터 2025년까지 3년간 270억 원을 투입해 신라왕경 14개 핵심유적과 7~8세기 천년 신라의 문화유산과 역사인물, 이야기를 가상공간에서 시간여행 하듯 체험할 수 있는 문화유산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인데, 헤리테크 컨퍼런스에서 사업의 전모를 밝힐 예정이다.

한국폴리텍대학의 이용규 교수는 조선시대 인골의 3D 스캔을 바탕으로 디지털 휴먼의 재현과 활용방안에 대해 발표하며, 한국전통문화대학교의 유정민 교수는 ‘메타버스로 재현된 조선시대 진찬연 실감콘텐츠’를 주제로 발표한다. 수원화성에서 열린 조선시대 봉수당진찬연의 궁중 기록화 및 고문헌 사료를 분석·고증하여 건축, 복식, 인물 등을 3D에셋을 제작하고 이를 메타버스로 구현한 전시 실감콘텐츠를 소개한다.

정성혁 충북대 교수(테라픽스 대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3차원 기록과 활용’을 주제로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해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3차원 아카이빙으로 획득하고 이를 XR 등 첨단 미디어까지 확장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펀잇의 문준석 대표는 K-Museum의 주요 사례로 최근 태국에 구축한 ‘태국방콕국립박물관 실감콘텐츠 사례’를 발표한다.

스코넥의 최정환 부사장은 ‘메타버스 헤리티지를 통한 시간여행’을 발표하는데, 최근 세계 최초의 로켓 무기인 ‘신기전’을 비롯해 조선시대 군수물자 제조를 담당했던 중앙관청인 ‘군기시(軍器寺)’가 140여 년 만에 디지털로 복원된 과정을 소개한다. ‘군기시 프로젝트’는 2019년 조선시대 돈의문(서대문) 디지털 복원에 이은 ‘헤리티지 메타버스(Heritage Universe)’ 구축 작업의 연장선으로 서울특별시와 콘텐츠 제작사 간의 민관협력 프로젝트다. 한국문화정보원의 이권수 부장은 ‘메타버스로 재탄생하는 K-콘텐츠 구축 전략’을 주제로 메타버스를 비롯한 신기술 진화에 발맞추어 우리나라 전통문화 원천콘텐츠를 창조적 소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 에셋으로 개발, 서비스하여 K-콘텐츠의 지속적 성장을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2022년 9월 25일 방영된 JTBC의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K-클라스’ 고려대 박진호 교수 강연 시 등장했던 독립운동가들

마지막 발표자는 문화재 디지털 복원가 고려대 박진호 교수다. 문화유산에 인공지능 접목을 선구적으로 시도하고 있으며, 2022년 9월 25일 방송된 JTBC <차이나는 K-클라스>에 출연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칭기즈칸 프로젝트 - 칭기즈칸 역사인물 디지털 휴먼 복원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표한다. 디지털 휴먼을 화두로 지난 6년간 연구한 결과물이다. 박진호 교수에 따르면, 디지털 휴먼을 ‘인간과 같은 외형과 사고를 지닌 디지털 공간 속의 가상인간’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이번 발표에서 디지털 휴먼의 종류를 세분하고 과거 위인의 재현을 ‘역사인물형’ 디지털 휴먼으로 분류한다고 한다.

박진호 교수는 “역사인물은 대개 문헌 기록 또는 유무형의 자료가 현재까지 남아있는지 또한 과거에 살았던 인물이 그 당시 대담한 능력을 통해 인류에게 봉사한 것은 무엇인지에 해당하는 속성을 가진 인물을 재현하게 된다”며 “이번 헤리테크에서 지난해 컨퍼런스의 연사였던 몽골국립대학교 엔크바야르(Enkhbayar Altantsetseg) 교수의 CG Lab과 협력, 징기스칸 AI 디지털 복원 과정과 AI 전시 계획을 밝히고 3D복원 결과물을 전격 공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지금 우리는 디지털이 단순한 일상의 변화와 기술, 산업의 발전을 넘어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혁신의 기본이 되는 새로운 체제에 직면하고 있다. 새로운 대변혁이고 과거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과 20세기 후반 미국의 정보화혁명을 이은 ‘디지털 혁명’의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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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체제도 이제 이제 계승‧활용‧미래의 국가유산 체제로 대전환한다. 이러한 대변혁의 시점에서 변화와 위기에 대한 해법으로 디지털이 부상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 유산의 미래가치 창출이다. 새로운 산업영역 개척,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의 관광콘텐츠, 미디어 예술작품으로의 향유 증진 등 혁신을 견인하는 원동력이다. 이를 위해 문화재청(향후 국가유산청) 차원의 디지털 헤리티지 플랫폼 구축이 당면 과제다. 헤리테크 컨퍼런스 또한 지속해서 사람과 기술, 유산을 연결하는 국제적 네트워크로 성장하리라 본다.

글 = 이창근 ICT 칼럼니스트, 헤리티지랩 소장‧예술경영학박사(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