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작가들은 왜 '생성 AI'와 싸우나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창작자의 권리 vs 혁신

데스크 칼럼입력 :2023/07/19 18:56    수정: 2023/07/20 11:19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생성 인공지능(AI) 열풍이 미국 할리우드까지 뒤흔들고 있다. 작가조합에 이어 할리우드 배우들까지 파업에 동참하면서 영화·TV 방송 제작에 비상이 걸렸다. 

물론 배우나 작가들이 파업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파업은 ‘AI 혁명’의 한 단면을 건드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탐욕스럽게 학습하는 AI로부터 인간 창작자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목소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는 작가조합이 18일(현지시간) 내놓은 공개 서한에 잘 담겨 있다. 오픈AI, 알파벳, 메타, IBM 등 생성 인공지능(AI) 기술 경쟁을 선도하고 있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대상으로 한 이 서한에는 작가 8천 명이 서명했다.

■ 작가조합, 공개 서한 통해 세 가지 조건 요구 

이 서한에서 작가들은 “대용량 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한 생성 AI 기술은 작가들의 작품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생성 AI 기술들이 (작가들의) 언어, 이야기, 스타일, 아이디어를 흉내내고, 그대로 되뇌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저작권이 있는 수 백만권의 책, 논문, 에세이, 시 작품들이 AI 시스템의 ‘먹이’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생성 AI 개발자들이 대가 한 푼 내지 않으면서 그들의 작품을 탐욕스럽게 삼키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조합은 “AI 기술 개발을 위해 수 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 글을 사용한 대가를 지불할 때에만 공정한 작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작가조합은 서한 마지막 부분에 작가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세 가지 요구 조건을 제시했다.

작가조합원들이 생성 AI의 무차별 도용에 항의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작가조합 영상 캡처)

첫째. 생성 AI 프로그램에 저작물을 사용할 때는 허락을 받도록 하라.

둘째. 생성 AI 개발에 작품을 사용했거나, 사용하고 있을 때는 작가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라.

셋째. AI 작업물에 작가들의 작품을 사용할 경우엔 (그 AI 작업물이) 현행법을 침해했는지 여부에 관계 없이 작가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라.

이번 파업은 최근 전 세계의 관심사로 떠오른 생성 AI의 핵심을 건드렸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잘 아는 것처럼, 똑똑한 생성 AI를 개발하기 위해선 ‘학습 자료’가 꼭 필요하다. 문제는 ‘똑똑한 학습 자료’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 동안 적지 않은 AI 프로그램이 인종적 편견이나 비속어 논란에 휘말린 것도 따지고 보면 오염된 ‘학습 자료’를 사용한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생성 AI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많은 기업들은 학습 자료를 확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용도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제대로 된 학습 자료를 찾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챗GPT를 개발한 오픈AI는 ‘무단 도용’ 문제로 여러 건의 소송에 휘말려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인 만큼 AI 학습을 위한 자료로 작가들이 쓴 작품만한 것도 많지 않다. 작가들 입장에선 당연히 '정당한 대가'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 생성 AI 시대, 작가와 작품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눈에 드러나는 ‘저작권 침해’ 뿐만이 아니다. LLM 기술이 발달할 경우 전 세계의 방대한 '작품 DB’를 학습한 뒤 다양한 유형의 작품을 무더기로 쏟아낼 수도 있다. 

물론 생성 AI가 등장하기 전에도 다른 작품에서 모티브를 가져오는 경우는 적지 않았다. 조금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모티브'나 '플롯' 같은 중요한 문학적 장치는 이전 작품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알게 모르게 선배 작가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기 고유 영역을 만들어 왔다.

예를 들어보자. '반지의 제왕'은 이후에 나온 수 많은 판타지 소설의 원형이 됐다. 많은 작가들이 '반지의 제왕'의 모티브를 기반으로 새로운 작품을 창작했다. 그런데 '반지의 제왕' 역시 그 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됐던 '성배'를 찾는다는 기독교적 모티브와 만나게 된다. 이 모티브는 수 많은 현대 작품의 기본 골격이 됐다. 인기 영화 '인디애나 존스'도 그런 작품 중 하나다. 

그런데 생성 AI는 '모티브 활용' 영역을 훨신 넘어가 버릴 수도 있다. 개별 작가들의 작품은 방대한 DB의 기본 자료로 활용하면서 비슷한 유형의 작품을 쏟아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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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작가조합이 생성 AI의 공세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합법적 활용'과 '무차별 표절'의 경계를 허물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엔 시나리오 작가라는 직업 자체가 유명무실해지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AI 작업물에 작품을 사용했을 경우엔, 현행법을 위반했을 때 뿐 아니라, 위반하지 않았을 때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다분히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챗GPT나 바드 같은 똑똑한 생성 AI가 계속 등장하면서 인간 고유의 영역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미국 할리우드 작가들의 이번 공개 서한은 그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계속 논란이 될 것 같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