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해 잠시 졸았는데…부축하던 남성의 두 얼굴

생활입력 :2023/07/08 10:49

온라인이슈팀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A씨도 술을 과하게 마시면 몹시 피곤함을 느낀다. 그날 밤이 마침 그랬다. 잠깐 밖에서 바람을 쐬다 들어가려 했지만, 술집 외벽에 몸을 기대니 깜짝 잠이 들었다.

자고 있던 A씨에게 건장한 남성이 접근했다. 몇 번 부르더니 A씨를 일으켜 세웠다. 남성은 A씨를 부축해 큰길로 데려갔다.

서울 서초구 일대 유흥가에서 장모씨(왼쪽)가 만취객을 부축하는 척 CCTV 사각지대로 끌고 가고 있다(강남경찰서 제공)

A씨를 부축해 한참을 걸었던 남성은 인적이 드문 골목에 들어섰다. A씨는 여전히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남성은 A씨의 손가락을 그의 스마트폰에 대 잠금을 해제했다.

그때부터 남성의 손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A씨의 신용카드 앱을 실행해 대출을 받았다. 요즘은 10분이면 카드론을 받을 수 있다. 남성은 그렇게 A씨의 명의로 3000여만원의 대출을 받고, 그중 1000만원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했다.

A씨가 잠에서 깬 건 술집 인근에 있는 그의 사무실이었다. 시간은 새벽 3시. 어쩌다 사무실까지 왔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휴대폰도 종적을 감춘 상태였다. 사무실 전화기로 연락해 봐도 받지 않았다.

PC 메신저를 실행해 보니 카드사에서 '대출 승인' 메시지가 와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카드사 고객센터에서는 "고객님이 직접 카드론을 받아 본인의 계좌로 돈을 보냈다"며 "고객님의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간 건 저희 카드사의 책임이 아니다"라고 했다.

돈이 입금된 곳은 모 저축은행. A씨는 즉시 저축은행에 전화를 걸어 입금된 계좌에 대한 지급정지를 신청했다.

다음 날 아침 A씨의 휴대폰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남성 목소리였다. 그는 다짜고짜 A씨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A씨가 술에 취해 자신의 아내를 끌어안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돈 또한 그래서 보냈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기가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A씨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미 경찰엔 A씨와 유사한 사건이 다수 접수된 상태였다.

경찰은 그간의 폐쇄회로(CC) TV 분석을 통해 남성을 30대 장모씨로 특정하고, 지난달 30일 그를 강남구 선릉역 인근에서 검거했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지난 1년간 A씨 같은 취객을 범행 대상으로 삼고 돈을 갈취해 왔다. 취객을 부축해 폐쇄회로(CC) TV 사각지대로 이동한 후, 취객의 지문으로 스마트폰 잠금장치를 풀어 자신의 계좌로 돈을 이체하는 식이다. A씨 외에 피해자가 10명이나 더 있었다. 피해액만 5500만원에 달한다.

A씨에게 했던 것처럼 범행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피해자를 찾아가 "당신이 임신한 나의 아내를 쳐서 넘어뜨렸다"며 추가로 돈을 뜯어내기도 했다. 돈이 부족하면 피해자의 명의로 대출까지 받는 대범함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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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찰은 장씨를 강도·절도·공갈·컴퓨터사용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 수사하고 있다.

제공=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