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TP 기술산책] 반도체 분업화와 기술 경쟁력

전문가 칼럼입력 :2023/06/28 20:51    수정: 2023/06/28 22:03

방성식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팀장

 지난 5월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 시가 총액이 1조달러를 돌파했다. 챗GPT 이후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사이 AI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에 등극한 것이다. 기존에 시가총액 기준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은 대만의 TSMC였다. 세계 1위 기업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두 기업은 반도체 기업이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면이 있다.

엔비디아는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기업인 반면, TSMC는 반도체 위탁생산을 하는 파운드리 기업이다. 이처럼 반도체는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와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파운드리 기업으로 나뉜다. 물론 삼성전자나 인텔처럼 설계와 생산을 함께 하는 IDM(종합 반도체 회사, Integrated Devices Manufacturer)도 있다. 이처럼 반도체 산업은 밸류체인에 따라 분업화한 특징이 있다.

현재의 설계와 생산 분업은 2000년 이후...2014년 아이폰 덕분에 파운드리 급성장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반도체는 단일 산업 형태였다. 미·일 반도체 분쟁에서 어렵게 일본을 이긴 미국에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기존 반도체 기업들이 휘청하고 컴퓨터 등 전자산업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형태 반도체 기업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반도체 1위 기업인 엔비디아 역시 이때 등장했다. 그리고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20년간 근무하면서 반도체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던 모리스 창이 대만에서 TSMC를 1987년에 창업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전까지 파운드리와 팹리스는 일반적인 반도체 기업의 모습은 아니었다. 2000년대 전후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인 인텔, AMD, 삼성 등은 설계와 생산을 함께 하는 종합 반도체 회사였으며, 일반적인 반도체 기업의 모습이었다.

2000년대 이후 스마트폰의 보급이 확산되면서 스마트폰 반도체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기업들이 등장했다. 스마트폰 반도체 기업들은 설계만을 전문으로 하고 생산은 파운드리에 맡기는 방식으로 기업을 꾸려 나갔다. 특히 엔비디아와 퀄컴이 그래픽카드와 AP(스마트폰 중앙처리장치, application Processor)를 TSMC에 맡기며 본격적인 팹리스, 파운드리 산업의 분업화를 이끌었다. 2014년 애플이 아이폰의 AP를 TSMC에 위탁생산하면서 파운드리 산업은 급격히 성장했다.

분업화 원인은 규모의 경제와 공정 난이도

그래픽카드, AP 등의 시스템 반도체에서 팹리스와 파운드리가 분업화하는 동안에도 D램, 낸드(NAND) 등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분업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유는 규모의 경제에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소품종 대량생산을 통해 특정 규격을 갖는 상용제품을 제조하는 반면, 그래픽카드, AP 등의 시스템 반도체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특성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개별 칩마다 생산설비를 갖추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 크기가 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크기는 하지만, 시스템 반도체 내의 각 품목별 시장을 보면 팹을 건설해 수익을 낼 정도의 시장 규모는 아니다.

특정 반도체 분야에 신규로 진입하는 기업이 사업 초기에 반도체 설계와 팹 건설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최근에는 팹 건설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해 기존 업체들도 팹 증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반도체 공정에서 최고 수준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삼성과 TSMC이다. 이들 기업은 3나노(3nm) 공정을 통해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물 분자 크기가 0.2nm임을 고려하면, 최근의 반도체 기술이 얼마나 첨단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적 난이도 상승은 신규 파운드리 또는 반도체 산업 진입을 제한하는 요인이 된다. 미세 공정 수준을 10nm로 잡아도 이를 통해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세계적으로 삼성, TSMC, 인텔 등 3개 기업 뿐이다.

또한, 최근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하고 세분화함에 따라 패키징 등 OSAT(Outsourced Semiconductor Assembly & Test, 패키징과 테스트 공정) 중요성이 커지면서 반도체 공정 관련한 진입 장벽을 더욱 높이고 있다.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 경쟁력은 미국이 가장 뛰어나며, 파운드리 등 공정 분야는 대만과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갖고 있다. 특히, 대만의 경우 TSMC로 대표되는 파운드리와 함께 다양한 OSAT 업체를 보유하고 있어 강력한 반도체 제조 경쟁력을 갖고 있다.

반도체 설계기술 변화

데이터 처리량 급증으로 데이터센터 등에 반도체 사용이 확대됨에 따라 전력소비가 증가하고 스마트폰 등과 같은 무선기기 증가로 반도체 소모전력이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전력 소모가 낮은 반도체 구현에 대한 관심으로 ARM이라는 회사가 주목받고 있다. ARM은 반도체에 사용되는 설계 자산(IP, Intellectual Property)을 전문적으로 제공하고 로열티를 받는 기업이다.

ARM 기반의 반도체는 간결한 명령어 체계 기반으로 저전력 프로세서 구현이 가능하여 최근 ARM의 IP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스마트폰 AP, 노트북 CPU, GPU 등은 모두 저전력에 특화된 ARM의 IP를 활용해 설계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AI반도체 역시 ARM 기반 IP를 활용한 연구개발이 활발하다. ARM 기반 IP를 활용한 설계가 많아지면서 관련 설계 전문기업(팹리스)들의 창업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구글, 애플, 아마존, 테슬라 등 빅테크 기업들도 자체 칩을 설계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파운드리의 성장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성장과 설계 기술이 복잡화함에 따라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EDA, Electronic Design Automation)와 반도체 IP의 중요성도 부각됐다. 이처럼 반도체 산업은 ‘IP(설계자산) → EDA(설계 자동화 소프트웨어) → 팹리스 → 파운드리 → OSAT(패키징, 테스트)’의 복잡한 공급망으로 촘촘하게 엮여 있다. 여기에 반도체 생산을 위한 장비와 재료를 포함하면 더욱 복합한 글로벌 공급망을 형성한다. 미·중 반도체 갈등은 이처럼 복잡한 공급망 속에서 안정적인 반도체 확보를 위한 국가적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 확보와 반도체 기술 경쟁력

우리나라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파운드리와 메모리 분야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삼성과 SK하이닉스로 대표되는 메모리 분야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또한, 파운드리와 OSAT 분야의 경우도 대만 이외 대안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좋은 정답지가 될 수 있는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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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대만을 제외하고 3nm 공정을 통해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다. 지속적인 최첨단 선단 공정의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대만에 비해 취약한 파운드리 분야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EDA, IP, 팹리스 분야는 우리나라 경쟁력이 취약하며, 쉽게 진입하기도 어렵다. 다만, 팹리스의 경우 AI반도체가 우리나라 반도체 기술 경쟁력 성장의 새로운 교두보가 될 수 있다. 최근 AI 기술이 전 산업으로 확대되면서, AI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기업과 우리 정부도 R&D, 인재양성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관련 산업을 지원하고 있어 기대해 볼 만하다.

반도체 산업은 우리나라의 핵심 산업이자, 국가 경쟁력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더욱 향상시키고,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우리나라의 역할을 더욱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방성식 IITP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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