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더워서 문 좀 열어놓으려고 하면 (벌레들이) 불빛을 보고 달려들어서 방충망에 다닥다닥해. 방충망 구멍으로 곰실곰실 기어들어 오더라고. 문도 못 열지. 방이 푹푹 쪄."
서울 은평구 연신내역 인근에서 구두수선점을 하는 최모(74)씨는 요즘 잠을 설친다.
창문을 여는 게 방의 온도를 낮추는 유일한 방법이지만, 최근 '러브버그(사랑벌레)'가 은평구를 중심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마저도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최씨는 "(방충망에 난 구멍을) 휴지로 막고 테이프로 붙여도 집이 오래돼서 어디선가 조금씩 들어온다. 날씨가 더 더워지면 힘들 것 같다"고 토로했다.
뉴시스 취재진이 22일 서울 은평구 일대를 돌아본 결과, 인근 주민들은 지난주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러브버그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고 있었다.
지하철 계단과 차량, 인근 가게들의 유리창 가릴 것 없이 러브버그가 빼곡히 달라붙어 있었고 시민들은 날아다니는 벌레를 피하려고 몸을 급히 숙이거나 머리와 몸을 손으로 털며 걷기도 했다.
가게 앞에 서서 파리채로 러브버그를 잡는 이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연신내역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최모씨는 "카페 분위기가 밝고 유리창이 커서 러브버그가 붙어 있는 게 유독 눈에 띈다"며 "눈에 보이는 대로 족족 잡고 있다. 아침부터 50마리는 잡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님들이 벌레를 보고 가게에 안 들어올까 봐 걱정이다"고 했다.
은평구 주민인 김모(29)씨는 좋아하던 산책도 최근 포기했다고 푸념했다. 김씨는 "요즘처럼 밤 날씨가 선선할 때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데 벌레 때문에 산책도 포기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러브버그가 사람 쪽으로 날아오는 경우가 많아서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가만히 서 있기가 무서워 계속 움직인다"며 "벌레가 많이 보이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집까지 뛰어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거동이 불편해 방충망 등 수리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은 오래된 집 안까지 들어오는 러브버그에 불편을 호소했다.
은평구 구산동에 사는 정모(81)씨는 "집이 오래돼서 (러브버그가) 조금씩 기어들어 온다"며 "방충망이나 문을 고칠 줄 몰라서 문을 닫아 놓고 선풍기만 틀어 놓는다"고 했다.
같은 지역 주민인 김모(78)씨도 "밤에는 (벌레가) 방충망에 빼곡히 붙어서 창문을 잘 못 연다"며 "너무 더워서 창문을 열고 싶을 때는 창문 앞에 모기향을 피운다"고 했다.
지자체에는 러브버그를 방역해달라는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이날 은평구청에 따르면 지난 17일부터 전날 오후까지 접수된 러브버그 관련 민원은 1100여건에 달했다. 인접한 서대문구청 역시 지난주 2~3건에 불과했던 러브버그 관련 민원이 이번 주부터 폭증해 250여건의 민원이 접수됐다고 이날 밝혔다.
이에 따라 은평구청은 최근 보건소 방역반과 주민들로 이뤄진 자율방역단 등을 동원해 방역에 나섰다. 관내 산림의 산책로와 주택가와 인접한 도로변 등에 연무 등을 이용한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 살충제를 뿌리는 분무기를 시민에 대여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러브버그 방재가 생태계 교란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박선재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은 "화학적 방재를 하면 눈앞에서 바로 없어지니까 문제가 쉽게 해결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천적도 같이 죽으면서 추후에 다른 곤충이 대량 발생하는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러브버그는 유충기에 썩은 식물과 낙엽을 먹고 분해하는 '지렁이' 같은 역할을 한다. 성충이 되면 꽃의 꿀을 먹어 화분 매개자의 역할도 한다"며 "자연 생태계에서 익충의 역할을 하는 만큼 방재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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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러브버그의 정식 명칭은 파리목 털파리과 '붉은등우단털파리'로 보통 암수가 쌍으로 다녀 '러브버그'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주로 중국 남부 지역이나 일본 오키나와 등지에 서식하지만, 지난해 여름 서울 서북권 등지에 출몰해 불편을 호소하는 주민들의 민원이 폭주한 바 있다.
제공=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