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거래상지위 남용 건과 관련한 최종 동의의결안을 기각하기로 결정했다. 브로드컴이 제출한 최종동의의결안이 삼성전자에 대한 피해보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브로드컴 갑질'로 국내 업체 수천억대 피해
브로드컴은 스마트폰ㆍ셋톱박스 같은 전자제품에 필수로 들어가는 와이파이, 위성항법시스템(GNSS) 등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다.
브로드컴은 고객사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국내 기업에 3년간 '거래 갑질' 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내 업체는 브로드컴의 요구에 따라 ▲장기간 다른 경쟁사 부품을 이용하지 못하고 ▲할당량을 채우려고 부품을 과다 구매했으며 ▲남은 부품은 악성 재고가 되는 등 수천억원대로 추산되는 피해를 봤다.
특히 삼성전자는 브로드컴의 요구에 따라 2021년 1월 1일부터 2023년 12월 31일까지 3년간 브로드컴의 스마트기기 부품을 매년 미화 7.6억 달러 이상 구매하고, 실제 구매 금액이 7.6억 달러에 미달하는 경우 그 차액만큼을 브로드컴에게 배상해야만 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브로드컴이 삼성전자에 스마트기기 부품공급에 관한 장기계약(Long Term Agreement, 이하 LTA) 체결을 강제한 혐의로 2021년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7월 브로드컴이 동의의결 개시를 신청했다.
동의의결제란 사업자가 스스로 원상회복, 소비자 또는 거래상대방 피해구제 등 타당한 시정방안을 제안하고, 공정위가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수렴을 거쳐 그 타당성을 인정하는 경우 위법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다. 다만, 해당 사업자가 과징금 같은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돼 '면죄부' 논란도 일어날 수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8월 26일, 31일 2차례 전원회의를 개최해 브로드컴이 동의의결 개시신청 당시 제출한 시정방안에 대한 브로드컴의 개선·보완 의지를 확인하고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브로드컴, 200억원 상생기금 조성...공정위 "피해보상으로 적절치 못해"
브로드컴은 피해업체를 위해 200억원 상생기금을 조성했고, 삼성전자에 대한 품질보증 및 기술지원 확대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지난 7일 전원회의 심의 결과, 최종 동의의결안에 대해 동의의결 인용요건인 거래질서 회복이나 다른 사업자 보호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기각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전자 등 국내 업계의 수천억원대 피해를 실질적으로 구제하는 내용이 동의의결안에 담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정위는 "최종동의의결안에 담겨있는 삼성전자에 대한 품질보증·기술지원 확대 등은 그 내용·정도 등에 있어 피해보상으로 적절하지 아니하고, 동의의결 대상행위의 유일한 거래상대방인 삼성전자도 시정방안에 대해 수긍하고 있지 않다"며 "최종동의의결안의 시정방안이 개시 결정 당시 평가했던 브로드컴의 개선·보완 의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기각은 삼성전자의 이익을 보고 결정한 것이 아니라, 동의의결 인용 요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하며 "브로드컴은 삼성전자에 품질보증, 기술지원 1년에서 3년으로 확대 두가지를 제안했으나, 이는 무상으로 지원한다는 부분이 아니라 유상으로 받겠다는 의미어서 피해보상으로 보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또 해당 기술지원은 신청인들이 합리적으로 기술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제공된다는 것도 브로드컴이 제공 여부를 결정한다는 의미고, 2020년 3월 이전 출시된 스마트기기에 탑재된 부품에 대해서만 기술지원한다고 했으나, 이 제품은 곧 생산이 종료될 예정이다. 즉, 당시 구매했던 부품에 대해 전체 기술지원이 아니라 일부분에 대해 기술지원한다는 의미다"고 꼬집었다. 이어 "지원대상도 2020년 3월 이전 출시제품이 아니라 좀 더 넓혀서 보자고 심의관이 제안했는데 그런 부분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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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컴은 심의과정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피해보상, 기술지원 확대 등 위원들의 제안사항에 대해 수용할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밝혔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동의의결 최종안을 기각하기로 결정했다.
공정위는 조속히 전원회의를 개최해 브로드컴의 법 위반 여부, 제재 수준 등을 결정하기 위한 본안 심의를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