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갈림길, 골든타임] 우리나라 응급의료 체계의 문제

②안성환 조선대의대 신경과 교수

헬스케어입력 :2023/05/30 09:05    수정: 2023/05/30 15:23

안성환 조선대의대 신경과 교수

지디넷코리아는 ‘생사 갈림길, 골든타임’ 연재를 시작합니다. 관련 국내 전문가들이 직접 필자로 참여해 우리나라 응급심뇌혈관 치료 시스템의 문제와 분석,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중증 의료체계와 관련하여 일명 ‘구급차 뺑뺑이’ 혹은 ‘응급실 뺑뺑이’라는 안타까운 뉴스들이 해마다 계속되고 있다. 평소 수준 높은 의료 선진국이라고 불리며,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의료체계가 훌륭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우리나라인데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도대체 우리나라 응급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상급종합병원의 응급실은 환자들로 언제나 북적거린다. 외래진료로 예약하려면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진료를 응급실로 가면 바로 진찰과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집 근처 병원보다 시설이나 의료진들이 많아 신뢰감도 높다. 

그래픽=이희정

환자 입장에서는 휴일이나 야간에 갈 수 있는 곳은 종합병원 응급실뿐이고, 자신의 증상이 경증인지 중증인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환자 탓만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병원 입장에서는 정당한 사유 없이 임의로 환자 수용을 거부할 수 없으므로 경증 환자가 왔다고 바로 돌려보낼 수는 없다.

한편, 응급실에서 입원이 결정되었다고 바로 입원이 가능하지도 않은데, 중환자실 병상 부족으로 하루 이상 응급실에서 대기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응급실에 병상이 없다.

‘의사가 없어서 중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분노한다. 그런데 중증 환자일수록 의사 한 명으로는 환자 한 명도 치료할 수 없다. 중증 환자의 수술이나 시술하려면 집도하는 의사와 도와주는 의사, 마취과 의사, 수술실 간호사, 의료기사들까지 최소 10여 명의 의료진이 24시간 365일 가능하도록 대기해야 한다.

2013년부터 전문의가 될 전공의 숫자를 20%를 줄인 데다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되어 전문의 연령이 증가하였고, 당직이 많고 중환자 스트레스가 많은 과를 기피하는 경향이 늘어나면서 실제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인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각 상급종합병원에 중증 질환별 담당 전문의사는 1~2명인 경우가 많고, 지방으로 갈수록 이 상황은 훨씬 더 열악하다.

안타깝게도 중증 담당 의사가 지금 다른 수술을 하고 있다면 ‘의사가 없다’라는 상황이 된다. 더 많이 뽑으면 될 것 같지만 지원 자리도 줄었고, 지원자도 없다. 병원 입장에서는 중증환자 치료에 필요한 의료인력의 인건비조차도 나오지 않은 의료수가 구조이고 시설과 장비 유지하는 비용은 수가 책정에 들어가 있지도 않기 때문에 중증질환 진료를 위한 인력과 시스템을 구축 하는데 적극적일 수 없다. 

그래서 응급실에 의사가 없다.

단순하게 응급의료 체계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기형적이고 저렴한 수가제도와 의학교육-수련 교육 시스템이 크게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당장 실현할 수 있는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해 본다.

북미나 유럽에는 ‘긴급 의료센터(Urgent center)’라는 비응급 진료를 하는 병원이 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은 시각까지 진료하며 휴일 진료도 하고 있다. 가벼운 열상이나 골절, 발열, 설사, 두드러기, 소아 환자 진료 등 촌각을 다투는 환자가 아니라면 이곳에서 업무시간 외에도 진료와 처방을 받을 수 있다.

우리도 비슷한 시범사업으로 소아 환자 진료를 위해 10년간 ‘달빛어린이병원 사업’을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참여 병원이 낮은 이유를 정부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라면 지역응급의료센터나 2차 병원에서 비 중증 응급서비스 정도는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데, 왜 활성화가 되지 않을까? 언제나 논쟁거리가 될 때만 반짝하고, 지속 가능한 충분한 지원체계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3대 중증 응급질환 중에서 중증 외상이나 심정지는 당장 활력징후를 유지해야 하므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응급의료 이송체계는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성환 조선대의대 신경과 교수

그러나 뇌졸중의 경우, 신속히 이송해야 것은 비슷하나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이 되었는가에 따라 환자의 예후가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타 중증응급질환과 달리 뇌졸중이 의심된다면 119 구급대가 행정구역보다도,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바로 이송할 수 있는 전문적인 트리아지(Triage)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각 병원의 시술이나 수술이 가능한 장비·시설·인력이 당장 가능한지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즉시 시술이나 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현재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 지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가 이런 기능을 담당하기를 기대하고 설치되었지만 지금 현 상태로는 필요한 자원 부족으로 트리아지 기능까지 하기에는 힘들다. 

특히 권역 내에 필요한 시술 및 수술이 가능한 곳이 없을 때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하므로 언제든지 환자가 와도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전용 병상을 만들고, 24시간 시술·수술이 필요한 장비·시설·인력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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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결국 투자이다. 우리가 중증 응급환자들이 병원을 찾다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를 줄이고자 한다면 과감한 투자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단순히 의료계만 짜내어 해결할 수 없다. 

의료는 상당히 비싼 서비스이며 내가 가벼운 증상으로 가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저렴하게 이용하고자 한다면, 다른 중증 환자가 치료받을 기회를 뺏을 수도 있는 한정된 자원이다. 하나의 수술실에서 동시에 2명의 환자를 수술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