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범법자”…환자 돌보다 불법 내몰린 PA간호사 현실

복지부 방관·의사 부족 이유로 간호사 불법 업무 내몰려

헬스케어입력 :2023/05/25 10:57

“수십 년간 의료법을 어긴 나는 범법자다.”

수십년동안 상급종합병원에서 일한 간호사의 증언이다. 간호 업무를 넘어서서 의사의 업무까지 맡고 있는 PA 간호사들은 국내 어느 한, 두 곳의 병원이 아닌 대부분의 의료기관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은 이날 오전 서울 당산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건의료인력 3대 핵심문제인 ▲직종 업무 범위 명확화 ▲PA간호사 불법의료근절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5 등에 정부가 해결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특히 이날 의료기관 소속 PA 간호사 및 방사선사들이 가면을 쓰고 실태를 폭로했다.

사진=김양균 기자

참고로 진료 보조 간호사로도 불리는 일명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는 의료법상 ‘의료인’ 분류에 존재하는 않는 ‘투명인간’이다. 때문에 간호사가 PA로써 의사 업무를 대리하는 건 불법이다. 하지만 수술장 등지에서 간호사들은 의사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사실상 PA로써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만약 이 과정에서 의료사고 등이 발생할 시 책임은 오롯이 해당 역할을 담당한 간호사가 감당해야 한다.

이날 현장 발언에 나선 13년차 대학병원 소속의 PA간호사는 “여러 불법 행위를 PA간호사가 맡고 있다”며 “돌아오는 것은 책임전가이고 문제발생시 보호는 전혀 없기 때문에 쉬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명확한 법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인 의료행위를 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또 민간중소병원 소속 29년차 PA간호사는 “중소병원에서는 환자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서로의 일을 나눠서 해왔고, 환자 대부분은 지역주민으로, 환자를 모른 척 할 수 없는 간호사들이 불법행위를 고발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며 “민간중소병원은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지원자가 적어 어쩔 수 없이 간호사가 그동안 해온 일이 불법으로 낙인이 찍히고 의료인력간 갈등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그러면서 “의료인력간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자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이냐”고 하소연했다.

대학병원에서 20년차 방사선사로 PA업무를 맡고 있다는 “병원은 환자 한 명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인력이 일하고 있고, 바쁘다는 이유로 업무 범위를 넘어서는 일을 맡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CT·MRI 검사 시 조형제 주입이 필요한데 위험한 약품의 설명을 의사가 없고 바쁘다는 이유로 방사선사가 설명하고 의사이름으로 동의서를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 “침습적 행위를 의사와 간호사가 부족해 방사선사가 방사선 동위원소를 주입하는 등의 업무 범위를 벗어난 업무를 맡고 있다”며 “지방 중소병원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사진=김양균 기자

마지막으로 대학병원 27년차 간호사의 증언도 이어졌다. 이 간호사는 “저는 범법자로 수십 년간 의료법을 어기고 일하고 있다”며 “복지부 방관아래 병원에서 직역간 업무분장은 엉망진창으로, 일은 닥치는 대로 이뤄진다”고 폭로했다.

이어 “의사 수 부족으로 의사의 업무 모두를 간호사가 맡아야 한다”며 “환자 피해가 있어도 의사가 할 때까지 기다리면 되지만, 이를 보다 못한 간호사가 업무에 나서면서 위법 사례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간호사는 “간호사들이 법을 지키며 일하면 병원 운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우리나라 대부분의 병원에서 수십 년간 범법이 자행되고 있고, 일상이 불법이 되어버린 간호사의 삶이 후회스럽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어느 나라가 불법을 강요하고 방관하느냐”고 반문했다.

관련해 지난 15일 조규홍 보건복지부장관은 ▲고령화 시대 대비 새로운 의료·요양·돌봄 시스템 구축 ▲지역완결적 필수의료체계 강화 및 간호·요양·돌봄서비스 ▲간호인력지원 종합대책 이행 ▲의료 현장과의 소통 ▲간호사 처우개선 등을 발언한 바 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복지부는 간호법 제정 과정에서 도출된 문제를 직시하고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며 “직종 간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하고, 미래 지향적 보건의료체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모든 직종 대표가 참여하는 ‘업무범위조정위원회’를 설치, 논의에 착수할 것을 요구했다. 나 위원장은 “의사의 부족으로 의사 업무가 타 직종에 전가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의사 증원은 더는 늦출 수 없다”고 요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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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도 “현재 간호사 1명이 환자 20명 가량을 돌보고 있는 실정”이라며 “1대5 비율만 현실화돼도 간호인력 이탈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간호법 문제를 넘어서 실질적인 간호인력 문제 해결과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위한 실질적인 계획들을 정부가 마련하길 희망한다”며 “정부는 말뿐인 공허한 대책이 아닌 실질적인 간호인력 수급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