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에 첫 제재를 가하며 반격에 나서자 미국 의회에서는 중국에 맞서기 위해 동맹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이 나왔다. 동시에 이번 조치로 인한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한국 기업이 채워서는 안 된다고 요구했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겨냥한 발언이다. 미국과 중국 모두 글로벌 주요 시장으로 삼고 있는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양자택일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 하원 미·중 전략경쟁특별위원회의 마이크 갤러거 위원장은 "미국 기업이나 동맹에 대한 경제적 강압을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중국에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 상무부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미국의 수출 허가가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는 데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최근 몇 년간 중국의 경제적 강압을 직접 경험한 동맹국인 한국도 (한국 기업이 마이크론의) 빈자리 채우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갤러거 위원장은 "미 상무부가 중국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인 창신메모리(CXMT)를 블랙리스트에 추가해야 한다"며 "어떤 미국 기술도 수준과 무관하게 CXMT나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다른 중국 기업에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4월 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은 중국이 마이크론 제재시 한국 기업이 그 빈자리를 채우지 않게 해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국 의회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반격에 다른 국가도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척 슈머 미 상원 원내대표는 "우리는 마이크론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제한 조치를 해결하기 위해 동맹국 및 파트너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비즈니스 커뮤니티와 협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인 마이클 맥콜 공화당 의원은 로이터 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미국 회사, 미국과 그 파트너 및 동맹국은 이 경제적 침략에 맞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지난 21일 마이크론의 제품에서 보안 문제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주요 수요처의 구매를 중단시켰다.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기업을 표적 삼아 제재를 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분쟁 중에 중국이 본격 반격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마이크론에게 중국은 미국·대만에 이어 세번째로 큰 시장이며, 전체 매출에서 10% 가량을 차지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美‧中 모두 핵심 시장...'딜레마'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마이크론의 중국 물량을 채울 가능성은 미국 정부의 반대로 어려워 보인다. 최악의 경우 중국이 반도체 견제 대상을 한국 기업으로 확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다. 국내 반도체 수출 물량의 60%는 중국과 홍콩으로 수출돼 중국 공장에서 전자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공장을, 쑤저우에 패키징 공장을 가동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우시에 D램 공장이, 충칭엔 패키징 공장이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낸드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0%·낸드 20%를 중국에서 만든다. 투자금도 상당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까지 각각 중국에 33조원, 35조원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20조원이 넘는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SK하이닉도 미국에 첨단 패키징 공장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첨단 반도체 장비 및 기술을 공급받고 있고, 미국 또한 중요한 반도체 시장이기에 미국 정부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지난 22일(현지시간)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마이크론과 경쟁하고 있는 한국의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이번 조치를 기회로 삼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WSJ은 "미국의 대중 압박이 심해질수록 한국 반도체 업체들 역시 고통스러울 것"이라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중국의 마이크론 금지 조치가 성공할지 아니면 미국과 동맹의 공급망과 격차가 벌어질지 결정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의 중국 제재에 따라 중국 공장에 반도체 장비 반입에 대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미국 정부는 자국의 기술과 부품을 사용한 첨단 반도체 장비의 대중(對中)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1년 유예 허가를 받았고, 오는 10월 다시 1년 유예를 받을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지난 22일 출입 기자 간담회에서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에 따른 우리 정부 대응에 대해 "(정부가 기업에) 이래라 저래라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고 기업이 판단할 문제"라며 "기본적으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글로벌 사업을 하니 양쪽을 감안해서 잘 판단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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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가에서는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로 인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 보다는 중국 메모리 업체가 수혜를 볼 것으로 내다봤다.
도현우 NH투자증권 반도체 담당 연구원은 "장기적으로는 중국 기업 YMTC, 창신 메모리 등이 외산 제품을 대체하며 수혜를 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