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움보다는 다양함을···300만 년 인류 생존 이끈 비결

IBS 기후물리 연구단 논문 '사이언스'에 게재

과학입력 :2023/05/12 03:00

단조로움보다는 다양성을 좋아한 것이 오늘의 우리를 만든 것일까? 다양성을 지닌 생태 환경을 선호한 인류 조상의 특징이 수백만 년에 걸친 혹독한 기후 변화를 이긴 원동력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노도영) 기후물리 연구단 악셀 팀머만 단장 연구팀이 슈퍼컴퓨터로 300만 년에 걸친 지구 고기후 변화 과정을 시뮬레이션해 방대한 고고학 유물과 결합한 결과다.

호미닌이 선호한 다양한 자연환경 서식지. 왼쪽부터 사바나, 초원, 아열대 지역이 함께 있는 환경을 나타낸다. (자료=IBS)

초기 인류가 영역을 확장해 나간 과정을 식량 자원의 근간이 되는 식생 환경의 변화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규명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 연구는 학술지 '사이언스'에 11일(현지시간) 실렸다.

슈퍼컴으로 인류 살아온 식생 환경 찾아 내

호모종은 지난 300만 년 동안 여러 차례 빙하기와 간빙기를 겪으며 진화해 왔다. 그러나 초기 인류가 기후 변화와 이에 따른 자연 환경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 왔는지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작년 4월 과거 200만 년에 걸친 기후를 시뮬레이션하고, 인류 조상이 살았던 서식지를 시대별로 추정한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연구에선 IBS의 슈퍼컴퓨터 '알레프'를 활용, 과거 300만 년 간의 기온과 강수량 등 기후 자료를 생성해 기후 기반 식생 모델을 구축했다.

호모종 진화와 식생 (자료=IBS)

이 시뮬레이션 정보를 아프리카와 유럽, 아시아의 유적지와 화석 등 3천 232개의 고고학 자료에 대입, 호모종이 그간 살아 온 생물 군계를 찾아냈다. 연구진은 이들 군계를 11가지로 분류했다. 생물 군계란 기후 조건에 따라 지역을 구분할 때, 그 기후 지역에 분포하는 식물과 동물 군집을 모두 포함하는 최상위 생물 군집을 말한다. 열대우림, 아열대, 사바나, 초원 등으로 구분된다.

호모 사피엔스, 높은 적응력으로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

우리 조상이 어떤 환경의 거주지를 더 선호했는지를 밝힐 근거를 제시한 것이다. 기존 연구가 긴 시간에 걸친 기후의 변화에 인류가 어떻게 적응했는지를 주로 다뤘다면, 이 연구는 인류가 '선호'를 쫓아 공간적으로 확장한 방식에 주목했다.

팀머만 단장은 "인류학에 기후-식생 모델링 연구를 접목한 덕분에 세계 최초로 자연 환경에 대한 인류 조상의 거주지 선호도를 대륙 규모로 입증했다"라며 "호모종에 대한 '다양성 선택 가설'을 새롭게 제안했다는데 의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악셀 팀머만 IBS 기후물리 연구단장( (자료=IBS)

호모 에르가스터나 호모 하빌리스 등 200만~3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출현한 초창기 호모종은 초원과 건조 관목지대 등 개방된 환경에서만 살았다.

하지만 약 18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나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등은 유라시아로 이주하면서 온대림과 냉대림을 포함한 다양한 생물 군계에 대한 적응력을 키웠고, 이 과정에서 여러 사회적 기술들을 개발했다

다양한 생물 군계에 대해 높은 적응력을 가진 덕분에 우리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이동성, 유연성, 경쟁성 등 다양한 부분에서 이전 어떤 호모종 보다 유능해졌다. 이에 따라 다른 호모종이 개척하지 못한 사막과 툰드라 같은 가혹한 환경에서도 살 수 있었다.

모자이크처럼 다양성 높은 곳 선호 

나아가 호모종이 선호하는 환경 특성을 면밀히 살펴본 결과, 생물 군계의 다양성이 큰 지역에 거주지가 밀집한 것을 발견했다. 즉, 호모종이 사막과 사바나, 초원, 열대우림 등 다양한 식생이 한 번에 밀집해 있어 다양한 식물과 동물 자원이 가까이 있는 모자이크식 자연환경을 선호했다는 것이다.

다양성을 추구한 이러한 선택이 도구 개발과 인지 능력에 영향을 주어 극한의 변화에 대한 호모종의 회복력과 적응력을 높였음을  시사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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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머만 단장은 "호모 사피엔스 이전 인류는 특정 지역에 맞춰 사는 스페셜리스트인 반면, 우리는 제네럴리스트"라며 "마치 오늘날 우리가 점심을 먹을 때 차를 몰고 이웃 도시로 가는 것보다는 다양한 종류의 식당이 있는 지역 안에서 해결하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인류 조상은 더 다양한 생태가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라고 말했다.

엘크 젤러 IBS 기후물리 연구단 학생연구원 (자료=IBS)

부산대 박사 과정에 재학하며 이번 연구를 이끈 엘크 젤러 연구원은 "다양한 자연 환경과 식생이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이자, 사회 문화적 발전을 위한 잠재적 원동력임을 확인했다"라며 "초기 인류의 생존 전략에 대한 전례 없는 견해를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