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 다 돌렸는데 파혼 통보…法 응징 가능할까

法 "정당한 이유 없이 혼인 거절·시기 늦추는 경우 …파기 책임 있어"

생활입력 :2023/04/30 11:15

온라인이슈팀

# 그날도 예비신부 강연지씨(가명·32·여)는 친구들과 함께 청첩장 모임을 하고 있었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결혼식에 들떠 있던 연지씨는 약혼자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 심장이 멎는 듯 했다. 그는 "아직은 결혼할 때가 아닌 것 같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며 갑작스레 파혼을 통보했다.

연지씨는 약혼남에게 무슨 이유인지 솔직하게 알려달라고 했지만 "헤어지자"는 말만 되돌아왔다. 다음날 연지씨의 집 앞으로는 약혼남이 보낸 커플링이 도착했다. 연지씨는 이유라도 알고 싶어서 약혼자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래픽=뉴스1

연지씨에게는 예단을 준비하기 위해 낸 카드빚, 짝을 잃은 커플링, 결혼식장 위약금 등만이 남았다. 홀로 빚을 갚아나가던 연지씨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했고,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가 '채무조정' 상담을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그러던 중 연지씨는 약혼남을 상대로 '약혼해제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고,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민법 801조에 따르면 '약혼'이란 혼인의 예약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즉 장차 결혼할 당사자간의 의견 합치로 이뤄진 계약, 합의, 약정을 뜻한다.

판례에 따르면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약혼의 상태는 연지씨처럼 청첩장을 만들고 주변 사람에게 결혼사실을 알리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양가 부모 상견례를 마치고 예식장을 예약한 경우, 신혼집을 마련한 경우, 가구 등 혼수 준비를 시작할 경우, 부모가 결혼을 반대한 상황에서 동거를 한 경우, 이혼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결혼의 당사자 일방이 다른 상대방과 결혼을 약속하는 경우 등이다.

반면 연애를 하면서 고가의 커플링이나 명품시계를 선물한 경우, 수개월 간 연애 중 여성이 임신한 경우, 출산은 했지만 상견례는 하지 않은 경우 등은 약혼 관계로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연지씨는 약혼남에게 약혼 파기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민법 804조에 따르면 연지씨의 사례는 '정당한 이유 없이 혼인을 거절하거나 그 시기를 늦추는 경우'에 해당해 가능하다.

민법상 약혼 파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때는 △약혼 후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약혼 후 성년후견개시나 한정후견개시의 심판을 받은 경우 △성병, 불치의 정신병, 그 밖의 불치병이 있는 경우 △약혼 후 다른 사람과 약혼이나 혼인을 한 경우 △약혼 후 1년 이상 생사가 불명한 경우 △약혼 후 다른 사람과 간음한 경우 등이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학력, 직업 사칭, 재산상태에 대한 기망, 중대한 모욕, 폭행 및 폭언 애정 상실, 시부모님의 폭언, 혼수갈등 등도 해당한다.

일례로 지난 2016년 법원은 A씨가 약혼남 B씨를 상대로 "과거 이혼 여부, 전과, 직업 등을 모두 속이고 약혼을 했다"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법원은 "A씨에게 모든 사실 관계를 속여 결혼의 성립자체를 어렵게 한 B씨에게 주된 책임이 있다"며 "위자료 20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상대방의 부당행위로 약혼이 해제된 경우 정신상 손해배상(위자료)을 청구할 수 있다. 또 약혼식 비용, 청첩장 제작비, 상견례 비용, 신혼여행이나 결혼식 비용 등 결혼 취소로 발생한 위약금, 혼인을 예상하고 사직한 비용 등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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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보통 연인 사이에 주고 받은 선물은 '증여'로 간주돼 한 번 준 선물은 돌려받을 수가 없다. 그러나 파혼이 확정된다면 부당이득 법리에 따라 유책 당사자는 상대방에게 받은 예물을 반환해야 한다. 예물의 경우는 '부담부증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즉 상대방에게 특정 의무(혼인)를 이행하는 조건으로 증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돌려받을 수 있다.

제공=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