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학교폭력 사건으로 스스로 세상을 등진 고(故) 박주원양의 어머니 이기철씨가 딸의 영정 사진을 들고 참석했던 2018년 은광여고 졸업식에 대한 기억을 털어놨다. 박양은 최근 논란을 불렀던 권경애 변호사의 소송 불출석으로 패소한 학폭 사건의 피해자다.
12일 이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영혼이 참석했던 은광여고 졸업식"이란 글을 올렸다. 이씨는 학폭 사건을 은폐하기에 급급했으며 사과 한마디 없던 학교 측으로부터 사과를 받고, 졸업식에서 발언하기 위해 학교를 찾았다고 했다.
이씨에 따르면 당시 그가 학교에 나타나자 '인성부장'이라는 교사가 나와 떨떠름한 얼굴로 이씨에게 "어떻게 오셨냐. 같이 온 사람들은 누구냐. 명예 졸업장 요청한 건 들었지만 졸업장이 준비될지는 잘 모르겠다"며 "어머니가 원하시는 게 뭐냐"고 물었다.
이씨가 "나는 졸업식에 참석해서 발언을 할 것이다. 학교 차원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주원이와 남은 가족들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하자 인성부장은 헛웃음을 짓고 "그건 뭐…"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씨가 "은광여고는 학폭위, 재심, 행정심판을 거치는 내내 드러나는 증거와는 달리 '가해자, 피해자 없음'으로만 대응했는데 가해 학생들이 스스로 자퇴를 했다면 자신들의 잘못을 알기에 도망간 것 아니냐"며 "이제라도 학교는 공식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라"고 재차 강조하자 인성부장은 그저 헛웃음으로 대응할 뿐이었다.
이씨가 강당 입구에 도달하자 사태 수습을 위해 나선 교장은 "어머니, 졸업식 참석하시고 발언도 하시라. 명예 졸업장도 드리겠다"며 이씨를 진정시키려 했다.
상복 차림으로 영정사진을 들고 나타난 이씨를 보고 사람들은 뜨악한 눈초리를 보냈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한 여교사는 영정사진을 쳐다보며 "저건 또 뭐야"라고 내뱉었다.
교장은 이씨에게 단상에 함께 자리를 하라고 했지만, 식이 시작되자 박양이 학폭 피해로 투신 사망해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 이유는 뚝 떼어내고 단순히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된 아이의 어머니가 졸업식에 참석했다"며 이씨에게 급조된 명예 졸업장을 줬다.
또 발언 시간을 주겠다는 처음 말과는 달리 식순은 이씨를 배제한 채 차곡차곡 진행됐다. 이씨가 교장에게 "내 발언 차례는 언제냐"고 묻자 교장은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러냐"며 걱정을 내비쳤다.
식순의 끝인 교가 제창까지도 이씨에게 발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곧 폐회식을 알리는 멘트가 나왔고 이씨는 발 빠르게 마이크로 향했다. 그제야 교장은 어쩔 수 없이 "주원이 어머니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시니 들어보자"며 강당을 나가려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말했다.
이씨는 결코 격앙되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고 했다. 이씨는 "쉽지 않은 발걸음이었지만 여러분이 보고 싶어서 왔고, 여러분에게 나의 말을 전하기 위해서 왔으니 잠시만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아까 교장 선생님께서 주원이와 저를 소개할 때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아이'라고 단순히 말씀하셨지만 주원이는 학교폭력 왕따 사건으로 시달리다 하늘나라로 간 아이이고, 은광여고는 사건에 대해 '가해자, 피해자 없음'으로 처리했다. 학교는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으며 주원이 장례식조차도 숨긴 채 나중에서야 1학년 9반 아이들을 모아놓고 '주원이는 중학교 때 학교폭력으로 힘들어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일축해 버렸다"며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이씨는 이어 "여러분의 졸업식을 망치려고 온 게 아니라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단상에 앉아 모든 졸업생을 한 명, 한 명 바라봤다. 내 자식도 소중하지만 여러분도 소중한 우리 모두의 딸들이다. 403명 중에 단 한 명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여러분 모두가 사회로 나가 시련이 생긴다 해도 실망하지 말고, 주원이처럼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외면하지 말고 손잡아 주고, 어른들의 비겁함을 배우지 말고, 젊은 여러분이 희망이니 사람답게 함께 사는 세상, 스스로에게 주인이 되어 만들어 주시길 부탁한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졸업을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다.
이씨는 졸업생들과 학부모들이 강당을 빠져나가지 않은 채 그대로 멈춰 서서 자신의 말을 집중해서 들어줬으며 일부 학부모는 박수도 쳤다고 했다.
이씨는 "사죄도 용기가 필요한 건데 그날도 은광여고는 용기가 없는 비겁함을 보였다"며 "단상 위에서 발언하는 나를 꼼짝 않고 시선 마주치고 공감하며 들어주던 아이의 모습들이 그나마 가슴에 남는 하루였다. 이래서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낫다"고 했다.
박양이 희생당한 학폭 사건은 지난 5일 소송 변호인을 맡은 권경애 변호사가 재판에 잇따라 불출석해 원고 패소 판결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며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권 변호사는 '조국흑서'의 공동저자로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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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변호사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자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10일 상임이사회를 열고 권씨의 징계 절차에 돌입했지만, 이씨는 이에 대해 "단순히 꼬리 자르기다. 빠져나갈 구멍이 만들어져 있는 징계다. 중징계해 봐야 고작 변호사직 정직 3년이고 그 뒤엔 다시 할 수 있는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권씨를 영구제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제공=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