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강남 주택가 납치 사건' 발생지인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낮 20도를 넘긴 포근한 봄 날씨로 옷차림은 가벼워졌지만 이곳 학부모들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인근 아파트에서 만난 주부 김모씨(45·여)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2~3개월 전부터 납치범들이 동네를 오가고 사전에 범행을 공모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불안감을 호소했다.
김씨는 "강남이든 어디든 '치안공백'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실감했다"며 "사건 당일 어린 학생이 눈앞에서 범행을 목격했다면, 그 학생이 행여나 피해를 봤을까 봐 한숨이 나온다"고 털어놨다.
50대 학부형 이모씨는 당분간 중학생 딸의 학원 등하원을 함께 하기로 했다.
이씨는 "서울 다른 지역과 달리 역삼동 길거리는 학원 수업 후 걸어서 귀가하는 아이들로 밤 11시까지 북적거린다"며 "수업이 조금 늦게 끝나거나, 독서실에서 좀 더 공부했다면 (범행 시간과) 비슷한 시간에 길을 걷다가 납치범들을 마주쳤을지 모른다"고 당혹스러워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후 11시46분쯤 귀가 중이던 40대 중반 여성 피해자가 강남구 역삼동의 한 아파트 앞에서 차량으로 납치됐다.
경찰은 "남성 2명이 여성을 폭행하고 차에 태웠다"는 112 신고 접수 후 7분 만인 11시53분쯤 현장에 도착했다. 이후 일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차량 번호와 소유주를 확인했다.
서울경찰청은 신고 접수 3분 만인 11시49분쯤 출동 최고 수준 단계인 코드제로를 발령하기도 했다. 이후 서울경찰청·경기남부청·대전청·충북청 등 인력 172명이 수사에 동원됐다.
그러나 피해자는 첫 신고 후 41시간 만인 지난달 31일 오후 5시35분쯤 대전시 대청댐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날 A씨(30·무직)와 B씨(36·주류사 직원), C씨(35·법률사무소 직원)를 검거했으며 1일 강도살인과 사체유기 등 혐의로 이들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피해자의 가상자산을 노리고 범죄를 저질렀다'는 피의자 진술이 있었다"며 "이들 피의자는 범행 2∼3개월 전부터 피해자를 미행하고 도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과 주민들은 치안 공백을 해소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사건 발생 현장은 역삼동 소재 아파트 출입문 바로 앞이었다. 인근 100m 이내에는 학원가와 24시간 독서실, 대학병원, 초·중·고등학교 등이 밀집돼 있다.
고등학생 딸을 둔 50대 학부모 박모씨는 "수사기관이 우범지역을 미리 알려야 한다"며 "일대가 학생이 많이 거주하는 곳인 만큼 야간 순찰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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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삼동에서 15년 이상 거주한 30대 직장인 김모씨도 "강남 한복판에서 납치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경찰의 초동 조치가 잘 됐다는 뉴스를 접했지만 결국 피해자는 사망하지 않았는가. 이제는 길에서 납치당해도 살 길이 없는 건가"라고 우려했다.
제공=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