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시대에도 ‘롱테일의 법칙’이 통할까

[이균성의 溫技]챗GPT 플러그인 생태계

데스크 칼럼입력 :2023/03/28 13:59    수정: 2023/04/07 13:55

챗GPT가 출시된 후 이것이 플랫폼이 될 것인지 솔루션이 될 것인지 매우 궁금했다. 솔루션은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나 파워포인트 그리고 팀스 같은 협력 툴이 그런 예다. 플랫폼은 다양한 종류의 솔루션이나 콘텐츠를 담는 그릇이다. 네이버 같은 포털이나 애플의 앱스토어가 대표적이다. 플랫폼은 각종 서비스를 위한 관문이기도 하면서 종합전시장이기도 하다.

챗GPT의 경우 처음엔 솔루션 강화 툴로 여겨졌다. 워드나 파워포인트 같이 지식 노동을 위한 솔루션을 더 쉽게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챗GPT가 쓰일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에 거금을 투자한 것도 그 때문으로 생각됐다. 이미 보유하고 있는 업무용 솔루션의 입지를 더 강화하기 위해 챗GPT를 붙였다고 본 것이다. 특히 검색 솔루션을 강화하기 위해.

챗GPT

챗GPT가 솔루션을 강화하는 툴인 것은 분명하다. 챗GPT를 이용할 경우 해당 솔루션 사용 효과가 크게 높아지기 때문이다.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것이 챗GPT가 솔루션의 보조 수단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챗GPT가 솔루션을 보조한다기보다 챗GPT가 솔루션을 부린다고 보는 게 옳을 듯하다. 이 점에서 새로운 형식의 플랫폼이 출현한 거다.

나는 그것을 ‘명령형 플랫폼’이라 불러본다. ‘프롬프트 플랫폼’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이 플랫폼은 과거의 플랫폼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과거의 플랫폼은 종합전시장 개념이다. 전시장을 둘러보다 눈에 띄는 것을 고를 수도 있지만 대개는 검색을 통해 원하는 것을 찾는다. 플랫폼과 검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검색을 한 뒤에는 원하는 것을 찾아 그곳에서 필요한 작업을 하게 되는 거다.

‘명령형 플랫폼’의 특징은 과정을 생략한다는 데 있다. 검색할 필요도 없고 원하는 솔루션을 찾아 직접 건드릴 필요도 없다. 원하는 작업을 명령만 하면 챗GPT가 필요한 솔루션을 찾아 그것을 기반으로 결과를 내준다. 이때 챗GPT와 각종 솔루션의 관계가 정립된다. 이 둘의 관계는 인간의 명령을 위한 구체적 작업 지시와 수행으로 재편된다. 각 솔루션은 챗GPT의 구체적 지시에 복종하게 된다.

오픈AI가 챗GPT 플러그인 정책을 발표한 것은 ‘검색형 플랫폼’의 시대가 지나고 ‘명령형 플랫폼’ 혹은 ‘프롬프트 플랫폼’ 시대가 열렸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챗GPT에 꽂히게 될 플러그인 솔루션들은 챗GPT의 지시에 따른 수행자들이다. 따라서 각 솔루션들은 챗GPT의 지시에 충실할 수 있도록 모두 다 인공지능 기반이 될 터이고 그것들은 인간의 언어로 서로 소통하게 될 것이다.

이 변화는 각종 인터넷 서비스를 중대기로에 서게 만들 수 있다. 1990년대 말에 월드와이드웹(WWW)이 대중화한 뒤 나타난 특징은 아주 많지만 그중에서 ‘한편으로 집중되면서도 한편으로 다양성이 확대되는 것’도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다. 그것은 검색과 플랫폼의 특징이기도 하다. 정보와 관심이 한 곳으로 쏠리기도 하지만 끝없이 새로운 게 생겨나고 생긴 게 존재할 토대가 되기도 했던 거다.

그 대표적인 현상이 이른바 롱테일(Long Tail)의 법칙이다. 알고 보면 지금 유명세를 떨치는 많은 서비스 또한 가우스 정규분포곡선으로 볼 때 꼬리 끝자락에서 출발한 곳들이다. 이들의 뜻밖의 성공이 있었기에 인터넷 분야가 창업의 산실이 된 것이기도 하다. 궁금한 점은 ‘명령형 플랫폼’ 그러니까 ‘프롬프트 플랫폼’ 시대에도 여전히 ‘롱테일(Long Tail)의 법칙’이 작동할 수 있을지 그 여부이다.

챗GPT 또한 ‘롱테일(Long Tail)의 법칙’의 산물이다. 그런데 어쩌면 챗GPT가 그 마지막 수혜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 든다. 빛을 본 롱테일은 지속된 패턴(pattern)을 전복시키면서 대중의 공감을 받을 때 탄생한다. 패턴이 지나치게 도식화해 더 이상 참신하지 않고 생산적이지 않을 때 롱테일은 꼬리를 꿈틀거리며 나타난다. 그 꿈틀거림을 인간이 알아볼 때 롱테일은 비로소 빛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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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그 꿈틀거림을 어떻게 알아보는가. 지적 생산물을 만들기 위한 ‘과정’을 통해서다. 검색도 그 과정의 하나다. 기우일 테지만 과정이 사라진다는 건 꿈틀거리는 꼬리를 알아볼 기회를 상실하는 쪽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과정을 대체할 때 인간은 패턴에 더 익숙해지고 패턴의 파괴자 노릇을 하기 힘들어진다. 긴 꼬리들이 사라지고 몸통만 존재하는 새 법칙이 나올지도 모른다.

인터넷 경제에서 인간의 행위는 결국 ‘관심’과 ‘선택’이다. 그런데 이제 관심은 남되 선택은 사라지게 된다. 아니 정확하게는 선택을 챗GPT에게 맡기게 된다. 인간 대신 인공지능이 선택하는 시대에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은 어디에 소구해야 할 것인가. 흥미롭지 않은가. 감정을 가진 인간 대신 확률에만 의존하는 인공지능이 선택한다면 긴 꼬리 인터넷 사업자의 생존 양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