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등 전세계가 '미래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기술과 생산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국 또한 파운드리와 팹리스 성장을 통해 시스템반도체 강국 도약을 목표로 합니다. 한국은 메모리 시장에서 70% 점유율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는 2~3% 점유율로 미비한 수준입니다.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1위인 TSMC와 2위인 삼성전자의 점유율 격차가 매우 큽니다. 따라서 산업의 체질 개선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이에 지디넷코리아가 시스템반도체 산업 현황을 점검하고 우리 반도체 산업이 나아갈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최근 몇년 사이 국내에 팹리스, 설계자산(IP) 등 시스템반도체 관련 스타트업이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한국 팹리스 2.0 시대'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 정부도 뒤늦게 시스템반도체 시장 성장을 위해 국가적인 정책 지원에 나서며 힘을 보태고 있다.
전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시스템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달한다. 시스템반도체는 5G,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가상현실, IoT 등 미래 산업 발전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기대되는 산업이다. 이 중 팹리스는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로 미래 먹거리를 위해 반드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고부가가치 산업 분야로 꼽힌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3% 점유율 수준이고, 팹리스 시장만 본다면 1% 점유율로 대만(21%)과 중국(9%)보다도 낮다. 한국 기업 중 상위 10개 팹리스 기업 매출 순위에 포함된 회사는 전무하다. LG그룹에서 계열분리된 LX세미콘이 20위에 속할 뿐이다. 그만큼 취약한 분야다. 국내 팹리스 시장은 기업 숫자면에서 2009년 200여개사를 정점으로 줄곧 내리막을 걸어오면서 100개 초반으로 줄었다. 그러다 최근 AI 반도체 스타트업 등이 늘면서 150여개로 늘어났다.
한국팹리스협회는 "국내 팹리스 업체는 매출 측면에서 고객을 다양하게 확보해야 하는데, 국내 대기업 위주의 매출에 주력하다 보니 글로벌적 매출 규모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실적이 어려워진 곳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또 국내서 시스템반도체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숙련된 인력 부족을 꼽았다.
익명을 요구한 팹리스 업계 한 관계자는 "산업이 성장하려면 좋은 인력들이 많이 있어야 하는데, 국내 시장은 메모리 중심으로 구축되다 보니, 똑똑한 사람들 대다수가 메모리 분야로 많이 갔고 팹리스 분야에서 3~4년 이상 경력을 쌓으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인력이 이동하게 된 영향도 컸다"고 말했다.
AI, 자율주행 분야에서 팹리스 증가 추세...'팹리스 2.0' 돌입
최근 국내 팹리스 스타트업이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과거 국내 팹리스 시장에서는 스마트폰, TV, 가전 등 세트 시장을 겨냥한 반도체를 만들어 국내 또는 중국에 공급했지만 신규 팹리스 업체들은 AI, 자동차, 데이터센터, IoT 등 신성장 산업 쪽으로 분야가 다양해졌고 글로벌 시장 공략을 1차 목표로 하고 있다.
AI 반도체 및 데이터센터 분야에서는 퓨리오사, 리벨리온, 모빌린트, 사피온, 딥엑스, 디퍼아이 등이 대표적이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보스반도체, 전력반도체에선 파워엘에스아이, 바이오 신호 처리 반도체를 만드는 네메시스, SSD 컨트롤러 업체 파두 등이 있다. 반도체 IP 분야에서도 스타트업 증가가 눈에 띈다. 오픈엣지테크놀로지, 퀄리타스반도체, 에임퓨처 등이 대표적인 IP 업체다.
아울러 기존 국내 팹리스 업체들도 자율주행 분야로 신규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면서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텔레칩스, LX세미콘, 어보브, 넥스트칩, 동운아나텍, 라닉스, 픽셀플러스 등이 꼽힌다.
국내 팹리스 업계 관계자는 "대만 미디어텍, 미국 퀄컴, 엔비디아 같은 글로벌 팹리스 기업들이 성장하기까지 사실 20년, 40년이 걸렸듯이 생태계가 활성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라며 "한국은 20년전 팹리스 기업이 늘었다, 줄어들었지만 최근 여러 스타트업이 생겨나면서 업계에서는 팹리스 2.0 시대에 돌입했다고 평가한다"고 전했다.
국내 반도체 디자인하우스(DSP) 업체는 "재작년과 비교해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라며 "지난해부터 반도체 설계를 맡기려고 의뢰하는 국내 팹리스 스타트업이 많아졌다는 것을 체감한다"며 "10년, 20년 지나면 한국에서도 팹리스 산업이 어느 정도 꽃을 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되기까지는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 팹리스 업체 대표는 "국내 대기업들이 외국 회사의 제품과 국내 팹리스 회사의 제품이 만약 비슷한 조건이라면 정책적으로 국내 기업 제품을 써주면 국내 팹리스 산업 육성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라며 "물론 나쁜 성능의 제품을 무조건 써달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대만에서는 기업이 자국 팹리스 업체의 제품을 정책적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많았듯이 한국도 도입이 필요하다"며 "팹리스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팹리스 기업만 잘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 지원, 파운드리 3박자가 어울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팹리스-파운드리-IP로 이어지는 가치사슬 육성에 발 벗고 나서야
최근 정부도 팹리스 육성을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6일 2035년까지 매출 10조원 팹리스 기업 10개 육성을 목표로 유망 분야의 스타 팹리스를 매년 선정해 연구개발(R&D)과 설계툴-IP-개발-시제품-판로 등을 일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팹리스의 비용 부담이 높은 첨단공정 시제품 제작 시 기존 일반공정 대비 2배 수준을 지원할 계획이다. 또 미래기술로 꼽히는 전력반도체, AI 반도체, 차량용 반도체 3대 기술 분야에 3조2천억원 규모의 연구개발 지원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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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자동차·가전·전력 분야의 수요 대기업과 팹리스 간 구매 조건부 공동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기업과 팹리스가 계획 수립부터 구매 조건부로 반도체를 개발하는 대규모 수요연계 프로젝트에 건당 50~80억원을 신규 지원할 계획이다. 연구개발(R&D), 시제품, 인력 등 파운드리-소부장-팹리스 생태계 혁신 협력에 민간 주도로 2조원을 투자한다.
산업부는 "우리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반도체 설계 분야 기술·기업, 후공정, 전문인력 등 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라며 "특히 경기 변동의 영향이 적고 인공지능·전기차 등 미래 시장 성장성이 높은 시스템반도체 수출·투자에 대한 지원이 시급하다고 판단해 생태계 강화를 위한 전략을 마련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