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림 사장이 KT 차기 대표이사 후보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회사 안팎에서 제기됐던 경영 공백 장기화 우려를 피하지 못하기 힘들 전망이다.
KT 이사회가 차기 후보로 낙점했던 구현모 대표의 연임 포기에 이어, 재공모를 거쳐 차기 대표 후보자로 꼽힌 윤경림 사장마저 지명 보름 만에 “못 버티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이사회는 윤 사장의 대표 후보자 사퇴를 만류했지만, 사의 뜻을 굽히지 않음에 따라 KT는 31일 정기 주주총회까지 임기를 남겨둔 구현모 대표 이후 CEO 공백을 피할 수 없게 됐다.
CEO 선임 없이 주총 진행...대표 대행 체제로
KT 이사회가 윤 사장의 대표 후보직 사의를 공식 수용하게 되면 정기 주총에서 대표이사 선임 안건은 폐기될 전망이다. 구현모 사장이 정기 주총을 진행하면서 대표 임기 마지막 업무를 보게 되고, 차기 대표직은 공석으로 두는 형식이 된다.
재무제표 승인을 위해 주총은 열려야 하고, 상법에 따라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일정도 없는 상황이다. KT 대표이사 임기를 주총까지 정해두고 있는 터라 CEO 공백 상태를 피하기 힘들게 됐다.
KT 정관에 따르면, 대표이사 유고 시 직제규정이 정하는 순서에 따른 사내이사가 대표 직무를 대행하게 된다. 하지만 현재 KT 사내이사가 구현모 대표와 윤경림 사장 둘 뿐이다. 둘은 이번 주총을 끝으로 임기를 마치게 된다.
서창석 KT 네트워크부문장과 송경민 KT SAT 대표가 이번 주총에서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 이름을 올렸는데, 이 안건이 주총을 통과해야 둘 중 한 명이 KT 대표이사 대행 직무를 수행할 수 있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다. 윤 사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되지 못하면 그가 추천한 사내이사 후보 추천도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서창석 부사장과 송경민 부사장의 사내이사 선임도 이뤄지지 않으면 '사내이사 전원 유고'라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이 경우에는 사장급인 박종욱 경영기획부문장이 대표 대행을 맡거나, 상법 등에 따라 구 대표가 새로운 대표이사를 정하기 전까지 대표직을 수행하게 될 수도 있다.
외풍에 흔들린 KT...정치권 외압에 검찰 수사
KT는 지난해 말부터 차기 대표이사 후보자 선정을 시작한 뒤 여러 외압을 견뎠다. 국민연금이 KT를 사례로 들면서 지배구조 문제를 제기했고, 구현모 사장은 연임 적격 판정에도 이사회에 공모에 따른 경선을 제안한 뒤 경쟁을 통해 차기 대표 후보자 타이틀을 쥐었다.
이를 두고 '깜깜이식 비공개 공모'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외부 자문단 인선을 포함한 공개 공모를 진행했고, 구현모 대표가 후보자 군에서 빠지겠다며 연임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과정 끝에 윤 사장을 비롯해 사내 후보 2인, KT 사장 출신의 사외 후보 2인으로 면접 대상 후보가 꾸려졌다. 그러자 이번엔 여당이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그들만의 리그'라며 압박했고, 대통령실이 이에 화답하는 형태로 민간 회사의 정치권 외압 논란이 더욱 불거졌다.
윤 사장이 최종 단수 후보자로 압축된 이후에는 한 시민단체가 구 대표와 윤 사장을 검찰에 배임 혐의로 고발하고 수사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난항을 맞이했다.
공석 CEO 재공모 진행도 난항
이같은 과정을 거치고도 윤 사장이 사퇴 의사를 밝힘에 따라 이사회는 또 다시 재공모를 고민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재공모 방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사회 재구성이 우선이란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10명으로 꾸려진 KT 이사회에서 이미 이강철 사외이사와 벤자민 홍 사외이사가 일신상의 사유를 들어 사퇴해 8명만 남아있다. 또 구 대표와 윤 사장의 사내이사 2명과 사외이사 3명은 이번 주총으로 임기가 끝난다.
강충구 이사회 의장을 비롯한 사외이사 3명은 주총 재선임 안건에 올랐지만,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글래스루이스가 찬성을 추천한 반면에 ISS는 반대 입장을 냈다. 정치권의 외압도 차기 대표 후보로 낙점된 인물보다 이사회 구성 문제로 시작된 만큼 주총 통과 여부가 미지수다.
사외이사 전원으로 꾸려지는 이사회 내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를 구성해야 재공모 논의가 가능한데 이마저 여의치 않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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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윤 사장의 후보 사퇴를 수용하면 이사회가 면접 심사를 진행한 당시 임헌문 전 사장, 박윤영 전 사장, 신수정 부사장 등에서 차점자를 후보로 추천할 수 있다고 보고 있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여권 내부에서 가장 비판하는 점이 이사회가 짜고 치는 형태로 대표 후보자를 선정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계속 문제삼을 것을 고려하면 새로운 이사회 진용에서 처음부터 공모하는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