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터로만 남아있는 신라왕경이 첨단기술로 복원된다. 신라왕경의 중심이며 불국사의 10배 규모에 달했던 황룡사의 옛 모습까지 디지털로 만나게 된다. 천년 도읍지 경주의 K-관광 매력이 한층 더 높아진다.
문화재청과 경주시가 올해부터 2025년까지 ‘신라왕경 디지털 복원’을 추진한다. 신라왕경 천 년 역사를 디지털로 재현해 문화유산과 역사인물‧이야기를 가상공간에서 시간여행 하듯이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신라왕경의 모습을 실제가 아닌 XR(확장현실)이지만, 실물 복원 전에 우리 국민이 접할 수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본다.
‘역사도시 디지털 복원 사업’은 우리나라 대표 문화유산의 디지털 복원과 콘텐츠 보급‧확산 기반 조성이다. 이미 1단계 사업이었던 한양도성을 마무리했고, 올해부터 2단계로 신라왕경을 추진한다. 3단계는 백제왕도를 대상으로 진행되고, 차후에는 고구려, 가야, 마한, 탐라, 중원, 예맥, 후백제 역사문화권까지 계속된다.
살아 숨 쉬는 황룡사 9층 목탑
웅장한 신라시대의 유물 역시 디지털로 재현된다.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MR(혼합현실)로 문화재를 복원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무한한 상상력의 예술인 미디어아트라면 오히려 수월하다. 하지만 디지털 복원은 정교함이 요구되며 적확해야 한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건축유적을 실물 복원과 마찬가지로 유적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라왕경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황룡사는 553년(신라 진흥왕 14년) 창건을 시작한 이후 오랜 시간 변화를 거듭하여 신라 최대의 사찰이 됐다. 9층 목탑은 645년(신라 선덕여왕 14년)에 완공됐다. 하지만 1238년(고려 고종 25년) 몽골 침입으로 모두 불타 없어져 현재는 ‘경주 황룡사지(사적)’라는 이름으로 그 흔적만 남았다.
국내에서 실물이 사라진 문화재를 디지털 기술로 복원, 구현한 것은 2000년 9월 1일이 시초다. 당시 ‘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00’ 주제영상관에서는 1300년 전 서라벌의 모습이 복원된 바 있다. 황룡사는 동양 최대의 사찰이었다. 경내 면적은 불국사의 8배(3만 평)로 황룡사 중금당만 따지고 본다면 서울 숭례문(남대문)의 6배 규모다. 황룡사는 진흥왕부터 선덕여왕까지 4대에 걸쳐 9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조성된 국가사찰이었다.
문화유산의 디지털 복원과 재현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사는 우리 일상에 디지털 가속화에 따라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지능정보기술이 도래했다. 사람, 데이터, 사물이 네트워크로 소통하는 작금의 사회는 그야말로 초연결사회다.
문화재 디지털 복원 전문가 박진호 박사(고려대 교수)에 따르면 “황룡사 9층 목탑을 되살리는 방법은 디지털 복원이다. 건물이나 목탑의 모양, 건축 양식에 대한 증거와 자료가 부족해 3차원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대상이 없을 때는 ‘가상 추정’ 복원을 진행한다”며 “문화재의 고증과 복원에 가장 근접한 학계의 정설에 기반해 3D 모델링을 하게 된다. 만약 문화재를 고증하는 근거인 이론이나 정설이 바뀐다면 언제든지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 또한 디지털 복원의 장점”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진호 교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문화유산 중에는 멀쩡히 남아 있는 것보다 훼손되고 망실된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현재는 가상 추정을 통해 디지털 문화재 복원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며 문화유산 디지털 복원의 현실적 방법론을 제시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콘텐츠의 소비 취향이 세분화, 다양화되고 시공간을 초월한 신기술 융합 체험 콘텐츠의 활성화, 쌍방향적 소비를 지원하는 상호작용형 매체 활용 확대 등 문화유산의 향유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역사를 책과 사진으로만 접해서는 그 당시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기는 쉽지 않다. 문화재 디지털 복원 작업은 역사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는 일종의 ‘디지털 타임머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신라왕경 복원 정비사업은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재현, 수요자 중심의 복원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와 스토리가 있는 의미 있는 복원사업이 되도록 추진돼야 한다.
현실로 다가올 ‘서라벌 천년 시간여행’
문화유산의 과거 모습을 가상공간에 구현하여 보존·복원 기초연구로 활용하고, 국민들이 간접 체험을 통해 역사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증이 어려운 중요 건축물에 대하여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체험 콘텐츠 제작을 통해 신개념의 문화 향유 서비스가 필요하다.
디지털 재현에 대해 안형기 박사(한국고고환경연구소 디지털콘텐츠실장)는 “문화유산의 본질과 당시 사람들의 이야기, 더 나아가 지형을 포함한 당시의 세계관을 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단순한 영상콘텐츠에서 탈피하여 생활상 복원과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대중에게 소구력 있는 디지털 헤리티지 콘텐츠로 탄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라 서라벌은 과거의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당나라 장안성 그리고 이슬람 제국의 수도였던 바그다드와 함께 세계적인 고대(古代) 4대 도시다. 오늘날의 경주는 풍부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대표 디지털 복원 대상지로 최적지다. 실체적 복원 완성도 향상과 데이터 활용을 통한 원형 보존, 관광자원화, 연관 산업 육성 등 미래 먹거리산업의 디딤돌이다.
올해부터 3개년에 걸쳐 ‘서라벌 천년 시간여행’ 사업이 시작된다. 디지털 콘텐츠 개발이 그 핵심내용이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1차연도인 올해 월성, 동궁과 월지, 동부사적지대, 천관사지가 그 대상이다. 2차연도(2024년)는 인왕동사지, 춘양‧월정교지, 대릉원, 황룡사지다. 마지막 3차연도(2025년)는 분황사지, 구황동원지유적, 남산일원, 사천왕사지, 첨성대, 미탄사지까지 디지털로 복원한다. 우리가 역사책에서만 봤던 천년 신라의 모습이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
국가적 프로젝트로 채택돼 진행되는 이 사업은 궁극적으로 문화유산의 원천자료를 확보하여 국민들에게 멸실 문화유산의 간접 체험을 제공, 역사‧문화 인식 제고와 문화유산 향유권을 신장하는 것이다. 또, 지역 특화 디지털 콘텐츠 제작․전시를 통해 지역 경제‧관광 활성화와 디지털 문화유산 복원 관련 산업의 민간 육성, 전문인력 양성과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는 주춧돌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건축 유적을 실물 복원과 마찬가지로 유적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디지털 혁명기, 건축유적 복원의 새로운 방법으로 문화유산의 가치 회복에 이바지하리라 본다.
디지털 헤리티지 효과
문화재가 주는 전통 그대로의 고즈넉한 모습과 세월에서 느껴지는 벅차오르는 감동은 우리 가슴 속의 카타르시스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로운 매체를 통해 작금의 우리에게 향유하도록 하는 것 또한 무수한 세월을 쌓아온 문화재가 새로운 역사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2003년 유네스코(UNESCO)가 『디지털 유산 보존에 관한 헌장』에서 제시한 ‘디지털 헤리티지’가 그 기본정신이다.
따라서 신라왕경의 실체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복원돼야 한다. 하지만 실물 복원에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디지털이 항상 과거의 유산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디지털 복원은 언제든지 새로운 이론이나 고증 자료가 나오면 쉽게 수정할 수 있어서 실제 신라왕경 디지털 복원에 나서기 전에 우선하여 주효한 작업이다.
일찍이 로마는 유럽의 대표적 고도(古都)로서 매년 수백만의 관광객들이 전 세계에서 몰린다. 아날로그 유적이 많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그 문화유산만으로도 매혹적인 콘텐츠가 된다. 아직 신라 경주는 유럽의 로마처럼 전 세계에 잘 알려진 고도는 아니다. 그러나 ‘서라벌 천년 시간여행’ 콘텐츠를 통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아주 매력적인 ‘디지털 가상관광’으로, 즉 ‘K-문화유산’으로서 활용 가능성이 무한하리라 본다.
전 세계는 관광산업 재도약을 위한 경쟁 국면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한국관광의 킬러 콘텐츠는 K-컬처라는 소프트파워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매력적 K-관광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속가능한 방한 관광의 파급력을 얻을 수 있다. 더 자주 더 오래 머무는 한국관광 실현을 위해서 특색있는 관광콘텐츠 확충이 시급하다. 또, K-콘텐츠로 문화유산을 통한 산업화에 활력이 되도록 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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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가 로마시대 잘 남아있는 문화유산으로 ‘아날로그 고도’를 이루었다면 우리는 신라왕경 디지털 프로젝트를 통해 ‘디지털 고도’를 이룰 수 있다. 경주가 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와 3년 뒤 탄생할 신라왕경 디지털 콘텐츠가 서로 잘 융화된다면 ‘K-고도’까지 기대해볼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경주는 전 세계인이 방문하고 싶은 관광명소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