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대 여성 A씨는 몇 년 전부터 항상 몸이 춥고 숨이 차는 증상이 나타났다. 의원에서 혈액검사 시 혈액이 깨져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재검 요청을 받아 원인 미상의 빈혈로 진단됐다. 별다른 관리를 받지 못하면서 증상이 악화됐고 여러 과를 방문했지만 별다를 효과를 보지 못했다. 대학병원에서 한랭응집소병으로 진단됐지만 다양한 검사에도 약 처방도 없고 예후에 대한 정확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
‘한랭응집소병’(old agglutinin disease, CAD)은 적혈구 파괴가 지속·반복되는 극희귀 자가면역 혈액질환이다.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빈혈 및 혈전성 합병증을 유발하는 것이 특징이며, 진단 후 5년간 사망률이 3배 증가하고 생존여명은 8.5년에 그친다.
상황이 이렇지만 우리나라는 한랭응집소병에 대한 질병코드가 없어 환자수 집계조차 어렵다. 학계에서는 인구 100만명 당 1명에게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는데 환자수가 적은 만큼 진단부터 치료까지 과정도 쉽지 않다.
한랭응집소병은 정상체온 아래에서 보체가 활성화되면서 한랭응집소라는 자가 항체가 적혈구에 결합하며 발생하는데 이는 비이상적으로 적혈구가 파괴되는 현상인 ‘용혈’을 촉발한다. 적혈구는 우리 몸에 산소를 운반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용혈 현상이 지속·반복되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 빈혈, 호흡곤란, 혈색소뇨증 등 다양한 증상으로 고통받는다.
“두꺼운 양말을 신기 위해 항상 한 치수 큰 신발을 신어요”
한랭응집소병 환자들의 삶은 ‘온도 감옥’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체온보다 조금만 낮은 온도에서도 암 환자 수준의 피로 및 신체·사회·심리적 고통을 받아 일상생활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여름에도 털장갑을 끼고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하며,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곳은 가지도 못하지만 질환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주위의 불편한 시선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삶의 질도 크게 낮은데 한 연구에서 극심한 피로감으로 직장생활이 어렵고, 우울 및 좌절감 등 경제·심리적 측면에서도 부담을 겪게 돼 ‘암’ 등과 비슷하거나 낮은 삶의 질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장준호 교수는 “한랭응집소병 환자는 국내에 약 100명 정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환자는 주로 빈혈, 극심한 피로, 호흡곤란, 혈색소뇨증과 같은 용혈 증상 및 한랭에 의한 말단 청색증, 레이노 현상, 망상피반 등의 다양한 증상을 겪는다. 하지만 유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된 허가받은 치료법은 부재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즉 몸속에 만들어지는 적혈구를 외부침입으로 인식해 자가항체가 붙어 파괴되면서 극심한 빈혈과 피로 등이 유발되는 것이다.
이어 “국내에 환자가 100~150여명 밖에 없고 5년 내 40%가 사망할 수 있으며 고통도 큰 데 암은 아니라고 한다. 이처럼 희귀질환의 문제는 본인도, 의료진도 잘 모른다는 것이다”라며 “의심하지 않으면 진단하기도 쉽지 않고, 인터넷에서도 정보를 찾기 어렵다. 그렇다보니 진단이 지연되거나, 진단 전까지 여러번 병원을 방문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 주위에서도 단순 빈혈인데 유난이다 등의 불편한 시선도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질병코드도, 치료법도 없어…약 개발돼도 도입 어려워
한랭응집소 진단은 ▲만성적인 용혈(임상적 또는 실험실적 용혈 근거) ▲다특이 직접 항글로불린 검사 양성 ▲C3d 단특이 직접 항글로불린 검사 강한 양성 ▲IgG 단득이 직접 항글로불린 검사 응섬 또는 약한 양성 ▲한랭응집소 검사(4℃)≥1:64, 다른 기저질환 부재(학성 종양 및 염증) 등이다.
무엇보다 국내 허가된 치료법이 없다는 점에 환자 고통이 크다. 때문에 대증적 치료로 관리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추위와 냉기 피하기’로 치료라 표현하기도 힘들다.
또 중증 빈혈로 인해 일시적이라도 완화하기 위해 수혈을 반복적으로 한다. 하지만 따듯한 피를 수혈해야하는 어려움, 타인의 혈액을 투여받는데 따른 부담, 최근의 혈액부족 사태 등으로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외에도 항체에 대응하기 위해 B세포 표적치료도 있는데 정식으로 연구되지 않은 미허가 제제로 치료 효과가 불충분하고 항암화학요법과 병용시 독성 및 감염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장준호 교수는 ”용혈의 원인인 고식적 보체 경로를 표적하는 치료가 연구중이지만 치료제가 개발돼도 들어올 수가 없다. 질병코드도 없고 환자 특성, 현황 등 근거자료 부족 등 패스트트랙 적용 방법도 없어 다양한 방법을 고민 중이다“라며 ”이를 위해 질환의 인식이 달라져야 하고, 교육과 홍보도 절실하다. 또 희귀질환을 위한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 조직적인 관리도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