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대표엔 나쁜 짓을 덜 할 사람이 낫다

[이균성의 溫技] 힘 있는 사람보다

데스크 칼럼입력 :2023/03/06 13:22    수정: 2023/04/07 13:58

전문경영인이 창업 오너와 다른 유일한 사실 하나는 지분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경영이 잘 못 돼도 크게 잃을 게 없다는 뜻이다. 명예에 손상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모든 재산을 잃는 것과 비교될 수 없다. 모든 전문 경영인은 그래서 회사의 미래 혹은 지속가능성보다 자신의 재임 기간 숫자로 표현된 성적표에 더 관심이 많다. 미래의 숫자를 앞당겨 기록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한다.

창업 오너가 자신을 대리할 전문경영인을 선택할 때 능력을 최우선 가치로 판단할 것이라는 게 일반인 생각이다. 그의 능력에 따라 회사 미래가 달라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통념은 그런데 과연 진실한 것인지 의심해볼 수도 있다. 왜 그런가. 능력을 객관화하기가 어렵다는 게 첫 번째 이유이고, 후보 선상에 오른 사람들이라면 그들 사이의 능력 차이를 구별하기가 어렵다는 게 두 번째 이유다.

KT 사옥.

능력은 필요조건일 뿐이지 충분조건은 아닌 셈이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국내 유력 한 대기업의 경우 최고경영자(CEO)를 뽑을 때 점쟁이를 뒤에 두고 그 사람을 평가하게 했다는 풍문이 있었다. 이 풍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 풍문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중요하다. 챗GPT가 일상 속으로 파고들 만큼 문명이 발달한 상황에서도 왜 이와 같은 미신이 여전히 통하는 것일까.

모든 재산을 걸어놓고 있는 창업 오너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을 키우는 것보다 그것을 잃지 않는 것이다. 기업이라는 유기체는 성장하지 않으면 결국 망한다는 속설도 있지만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망할 수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성장이 진짜 지속가능함을 담보하는 내용의 것인지 아니면 미래의 숫자를 앞당겨 적어놓은 것에 불과한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건 시간만이 대답해준다.

이는 그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능력 부족으로 시대에 뒤쳐져 망한 기업도 많지만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다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기업도 부지기수다. 능력이 부족한 전문경영인은 없다. 왜 그런가. 그런 사람은 아예 단 한 명도 후보에 오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문경영인의 문제는 능력의 유무가 아니다. 그 능력을 어디에 어떻게 쓰려하는 지야말로 진짜 문제가 되는 거다.

풍문의 그 대기업 오너가 뒤에 점쟁이를 놓고 보려 했던 게 바로 그것 아니겠나.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 대기업 오너가 알려 한 것은 그 사람이 나쁜 짓을 얼마나 할 사람인지 여부다. 그의 눈에 착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눈에 착한 사람이란 자기와 똑같은 마음으로 자기의 모든 재산을 영원히 지켜줄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나쁜 짓을 덜할 사람을 찾는 거다.

KT 대표 자리를 놓고 그야말로 꼴불견이 계속되고 있다. 정치권이 개입한 탓이다. 처음엔 국민연금을 통해 ‘투명성과 공정성’을 이야기 하더니, 이제 정치권이 직접 나서 ‘혁신’까지 이야기하는 판국이다. 좋은 말을 썼지만 사실은 사심이 가득 배어 있다는 걸 보통사람은 그냥 알 수 있는 일이다. KT에 창업 오너가 있다면 한 마디로 가관이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모두 해고 1순위에 오를 거다.

‘그들은 왜 KT 대표 자리를 탐내는 것일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무슨 자리든 그 자리를 맡는 순간 잃을 게 많은 사람이 그 자리에 앉는 게 바람직하다.’고 적은 바 있다. 왜 그런가. 풍문의 대기업 오너가 전문경영인을 영입할 때 점쟁이까지 뒤에 두면서 알려 했던 게 바로 그 점이기 때문이다. 모든 재산을 잃을 상황에 있는 사람의 판단이 꼭 옳은 것은 아니지만 절실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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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대표 자리와 선임 과정을 그런 절실함으로 바라보는 존재가 누구이겠는가. 임기가 있는 국민연금 고위간부이겠는가, 혹은 여당 의원이겠는가. 아니면 자신의 돈으로 투자한 KT 일반주주이겠는가, 혹은 자기의 생업이 걸린 KT 임직원이겠는가. 절실함이 늘 옳은 것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절실함조차 없다면 무엇을 위해 그 많은 절실한 자들의 작은 목소리를 그렇게 하찮게 취급해야 하는가.

KT 대표 선임 과정에 참여한 사람은 지금 무척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비교적 잘 해온 듯하다. 앞으로도 그러길 바란다. 다른 기준은 다 잊어도, 모든 재산을 건 창업 오너의 심정으로 후보들을 바라보는 걸 잊지 않기 바란다. 대표가 되면 잃을 게 많아 가능한 한 나쁜 짓을 덜할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모든 지성을 발동하기 바란다. 추상적이고 헛된 용어들에 마음을 뺏기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