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조국·정순신…"'부모찬스' 반복에 체념"

공정 중시하는 MZ세대가 어쩌다 '체념'에 이르렀을까

생활입력 :2023/03/01 08:18

온라인이슈팀

"좋은 부모 만나는 것도 능력인 세상인데, 어쩔 수 없지."

지난 토요일 동갑내기 지인인 A씨(28)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라곤 전혀 없었지요. A씨는 역시 힘없는 목소리로 "대한민국에서 부와 권력은 세습되는 게 아니라 유전되는 거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퇴진·김건희 여사 특검 촉구 촛불승리전환행동 집회에서 한 시민이 아들 학교 폭력 논란에 휩싸인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에 내정된 정 변호사는 아들 학폭 논란으로 임명 하루 만인 이날 사퇴했다. 2023.2.25/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아들의 '학교폭력(학폭)'과 '부모찬스' 논란으로 정순신 변호사가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하루 만에 사퇴한 뉴스를 접한 그의 반응은 이처럼 '체념'에 가까웠습니다.

공정을 중시한다는 MZ세대가 어쩌다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된 걸까요?

◇"우리 아빠 아는 사람 많은데"…"능력 없으면 너네 부모 원망해"

정 변호사 아들 사례는 많은 언론 보도를 통해 접했을 것입니다.

그의 아들은 2017년 자립형사립고 재학 시절 수개월간 동급생에게 언어폭력을 가한 사실이 인정돼 강제 전학 조치를 받았지요. 피해 학생은 정신적 고통으로 극단 선택을 시도하는 등 정상적인 학업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 News1 DB

그러나 정씨는 이후 징계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습니다. 정씨의 소송에는 법 전문가이자 부친인 정순신 변호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짙습니다.

실제로 판결문에는 정씨가 당시 검사였던 정 변호사를 두고 "아빠가 아는 사람이 많은데 판사랑 친하면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여당 소속인 천하람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는 "(정 변호사는) 아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면하게 하려고 검사 출신 법조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지요.

이 대목에서 기시감을 느끼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국정농단 장본인 최순실(현재 최서원으로 개명)의 딸 정모씨는 2014년 12월 3일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에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이란 글을 썼지요.

이 글은 약 1개월10개월 뒤 국정농단이 밝혀지면서 재조명됐습니다. 정씨는 이화여대 입시·학사 특혜 의혹으로 자퇴서를 냈으나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부모찬스'에 분노한 이대생들이 거세게 문제제기를 했지요. 이것은 대통령 탄핵으로 귀결된 국정농단 사건의 공론화에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정치학자들이 "부모찬스의 불공정함에 분노한 젊은이들이 박근혜 정부를 교체했다"고 평할 정도였습니다.

◇조국 사태만 해도 ‘부모찬스’에 분노했지만

이쯤에서 또 하나의 부모찬스를 떠올리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비리 의혹이죠. 조 전 장관과 그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 전 교수는 지위를 이용해 인턴 확인서와 표창장을 위조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조 전 장관은 지난달 입시비리 등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정 전 교수는 올해 1월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이 확정됐습니다.

'윤석열 정부 탄생의 일등 공신은 조 전 장관'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죠. 지난 대선을 앞두고 조국 사태에 분노한 20·30대 남성 중심으로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렸습니다.

언론에서는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MZ세대는 불공정에 민감하다'는 보도가 이어졌죠. 이 분석은 틀린 게 아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부모찬스는 분노의 대상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정순신 변호사 아들 사건 이후 다소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제 주변 반응 등을 종합하면 "또 부모찬스네. 어쩔 수없지"라는 반응이 눈에 띄고 있지요.

반복되는 부모찬스에 분노하는 것도 지쳐 이제 체념하는 수준에 이른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부과 권력은 유전된다'는 체념

분노는 그래도 무언가 바뀔 수 있다는 기대감을 전제합니다.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목청껏 소리내면 부조리함의 견고한 벽에 균열이 생길 것이라는 믿음을 품고 있지요.

반면 체념은 사전적으로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함'을 의미합니다. 바뀔 수 있다는 기대를 접어 자포자기한 마음이 이어지는 상태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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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 정권 교체에도 부모찬스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는 체념, 공정을 아무리 외쳐도 사회는 공정하지 않을 것 같은 체념, 그리고 '부와 권력은 유전된다는 체념'이 MZ세대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습니다.

제공=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