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가해자 찾아가 소리친 엄마가 '아동학대죄'?

생활입력 :2023/02/22 10:18

온라인이슈팀

중학생 딸을 괴롭힌 가해 학생을 찾아가 소리를 지른 어머니가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자,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분노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고 성인이 아닌 가해 학생에게 해를 끼쳐선 안 된다는 판단인데, 현행 제도가 피해자들을 적시에 구조하지 못한다는 비판 등이 맞서고 있다. 이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절차를 정비해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도 높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서부지원 형사3단독은 임효랑 판사는 최근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된 학부모 A씨에게 벌금 10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021년 9월 중학생 딸의 같은 반 학생 B양이 다니는 학원을 찾아가 "내 딸이랑 친하게 지내지 말고 말도 걸지 말라했지. 그동안은 동네 친구라서 말로 넘어갔는데 이제는 참지 않을 거다"고 소리를 치며 위협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B양의 학원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차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마라. 내 딸한테 말도 걸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소리를 쳤다고 한다. 당시 학원 강사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이 당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안 B양의 부모는 A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다.

A씨는 "정서적 학대행위에 해당하지 않고, 괴롭힘을 당하는 딸과 만나지 말라는 취지로 이야기한 것이어서 위법성도 없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다.

B양은 그해 8월부터 10월까지 A씨의 딸을 괴롭힌 것으로 조사돼 학폭위로부터 서면 사과와 사회봉사 조치가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아동학대 혐의가 있다고 보고 A씨를 재판에 넘겼고, 법원 역시 같은 판단을 내렸다.

법원은 "A씨의 행동은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에 해당한다"며 "딸에 대한 추가적 피해를 막기 위해 한 행동이라는 점은 인정되나 그 사정만으로 정당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법조계에서도 A씨의 행위가 '사적 제재'에 해당해 형사 처벌 대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적 제재보다는 법적인 구제절차를 밟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대규 변호사는 "형법 23조의 '자구행위' 요건은 법률적인 절차를 밟을 수 없는 긴급한 상황이어야 한다. 예컨대 무전취식을 하고 도망가는 손님을 식당 주인이 잡는 경우"라며 "이처럼 위법성 조각 사유가 있지 않는 상황에서의 자구행위는 유죄를 피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더욱이 A씨의 경우는 성인인 학부모가 가해 아동에게 직접적으로 위협적인 행동을 한 것이라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따고 한다. 강 변호사는 "만약 대등한 성인에게 소리만 질렀다면 처벌까지 가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피해를 입은 상대방이 아동인 만큼 아동학대가 적용될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다만 법원 판단을 바라보는 여론은 싸늘하다.

온라인 상에서는 "판결이 과한 것 같다"는 반응부터 "법이 가해자에게만 관대하다", "내 애를 괴롭히면 당연히 눈이 돌아가는데 왜 유죄냐"는 등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학교폭력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사회 전반적으로 높아진 가운데, 정해진 절차를 통해 피해를 구제 받기 쉽지 않다는 불신이 강하게 작용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국회 교육위원회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학폭위 심의 건수 1만63건 중 29.9%(3004건)가 정해진 기한을 넘겨서 열렸다. 특히 서울은 전체 1204건 중 70.9%(854건)이 제 때 열리지 못 했다.

학폭위는 교육부 가이드라인 상 21일 이내, 늦어도 28일(4주) 안에는 열려야 한다.

학폭 관련 절차가 늦어지면서 피해자들은 또 다른 고통을 호소하게 되고, 일부는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기도 하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트위터를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심부름센터의 광고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최근 방영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 피해자인 문동은(송혜교 분)이 자신을 괴롭힌 주모자의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돼 직접 복수를 준비해가는 내용을 담아 큰 호응을 얻었다.

서울 강서구에서 초등학생 두 자녀를 키우는 이모(44)씨는 "피해 학부모 입장에선 전체 학폭위 소집까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후 조치가 좀더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며 "가시적인 조치가 없는 한 학교당국에 대한 불신이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뉴시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