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근의 헤디트] 세계가 주목할 철의 왕국

미디어아트로 경험하는 함안 말이산 고분군

전문가 칼럼입력 :2023/02/03 11:05

이창근 헤리티지랩 디렉터‧박사(Ph.D.)

올가을 가야고분군에서 미디어아트로 재탄생한 ‘철의 왕국’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역사의 현장에서 경험하는 1500년 전의 디지털 헤리티지다. 그 장소는 경남의 ‘함안 말이산 고분군’이다. 가야고분군 중 최초의 첨단 야외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이다.

가야고분군은 오는 9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릴 제45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 등재 결정 심사를 앞두고 있다. 그 대상은 3개 광역자치단체에 분포한 7개 가야고분군이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경남), 합천 옥전 고분군(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군(경남),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경남), 고령 지산동 고분군(경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전북)으로, 등재가 결정되면 한국의 16번째 세계유산이 된다.

지난해 아라가야문화제에서 함안말이산고분군 야경을 즐기는 시민들

이중 함안 말이산 고분군이 7개 지역 중 유일하게 문화유산 미디어아트를 유치했다. 지난해 7~9월 문화재청의 국비공모사업에 응모한 함안군이 전문가들의 높은 평가를 받으며, 정부 사업에 선정된 결실이다. 총사업비 12억 2000만 원 규모로 9월에 개막한다.

함안군 문화유산관광담당관실에 따르면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말이산 고분군 발굴조사로 별자리와 봉황 장식 금동관을 비롯하여 보물로 지정된 상형도기와 중국 남조의 청자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중요 역사적 자료들이 확보됐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미디어아트 공모 신청 준비와 기획, 발표까지 국비 확보의 주역으로 올해 본격적 사업 실무를 총괄하는 조신규 가야사계장(학예연구사)은 “출토유물을 바탕으로 말이산 고분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 역사성과 더불어 더 큰 국가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했던 아라가야의 모습을 1500년 전으로 시간여행으로 아라가야의 특별한 디지털 경험 축제로 만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함안말이산고분군 45호분 출토 상형도기. 사진=(재)두류문화연구원

함안 말이산고분군은 아라가야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이 조성된 고분군으로, 아라가야의 대표적 유적이다. 말이산(末伊山)은 ‘머리+산’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우두머리의 산’을 의미하는데, 이를 보아 말이산의 어원이 아라가야의 왕과 관련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본래 함안 도항리 고분군과 함안 말산리 고분군으로 분리되어 있던 것을 2011년 7월, 역사적 특성을 고려하여 같은 산자락에 걸쳐 있는 두 고분군을 통합하여 사적 함안 말이산 고분군으로 재지정한 것이다. 아라가야 왕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37기의 대형 고분들이 높은 곳에 열을 지어 위치하여 있는 이 고분군은 일제강점기 때 처음 조사됐는데, 당시 34호분(현 4호분)은 봉토의 지름이 39.3m, 높이가 9.7m나 되는 큰 규모의 무덤이다. 최근에는 8호분 조사를 통해 다섯 사람의 순장 인골이 확인됐다. 면적은 525,221㎡로 가야시대 고분유적으로서는 최대 규모다.

함안말이산고분군 드론사진 (2017. 10. 27. 촬영)

말이산의 북쪽 일대에는 아라가야의 전신인 삼한시대 안야국(安邪國)의 목관묘와 목곽묘가 밀집 분포하고 있다. 따라서 말이산고분군은 기원 전후부터 아라가야 멸망 때까지 약 550년간의 고분들이 누대로 조영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출토유물은 토기 2,010점, 철기 2,479점, 장신구 3,381점, 기타 91점 등 총 7,961점의 다종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는 아라가야가 독자적으로 형성, 발전시켰던 찬란한 문화상을 보여줌과 동시에 고대 한반도 남부의 일원으로서 주변 국가와의 교류, 갈등, 정복 등의 관계상을 잘 반영하고 있어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문화유산 미디어아트’를 가야고분군에서도 만나게 된다. 이 사업은 2021년부터 시작된 문화재 활용사업의 하나다. 지역별 유산의 특성에 맞게 ICT 워킹 투어, 프로젝션맵핑 미디어파사드, 융복합 미디어퍼포먼스, 실감형 콘텐츠, 인터랙티브 아트 등 첨단기술로 구성된 야외 디지털 페스티벌이다. 문화재가 예술, 디지털과 융화하여 시민들이 문화유산을 새롭게 경험하도록 하고 관광객을 지역에 방문하도록 하는 체류형 야간관광 프로그램이다.

좌측부터 함안말이산고분군의 4호분, 9호분, 11호분, 13호분 드론사진 (2017. 10. 31. 촬영)

지난해 전국 8개 지역에서 개최된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은 우리 문화재를 재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특히 문화재의 고유성을 훼손하지 않고 정체성을 담아내 우리 국민에게 위로의 예술작품을 선사했다. 더불어 침체한 관광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했다. 미디어아트가 열리는 문화재 인근은 야간관광지로 발돋움했고,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주변 상권의 불빛을 밝혔다. 특히 한류 열풍과 맞물려 한국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전하며 방한 관광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기도 했다.

함안군은 그동안 가야사 사업을 통해 축적된 연구 성과와 발굴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아라가야 역사의 극적인 장면을 흥미로운 스토리로 구성하고 이를 프로젝션맵핑, 인터랙티브 아트, AR, 홀로그램 등 다양한 ICT 기술을 통해 문화재 원형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그 가치를 대중에게 실감형으로 향유하도록 할 계획이다.

미디어아트가 열리는 장소이자 역사적 배경이 되는 말이산 고분군에서는 ‘철의 왕국’이라 일컬어지는 아라가야답게 수준 높은 철기들이 출토됐다. 둥근고리큰칼을 비롯하여 쇠창, 화살촉 등 무기와 투구, 판갑옷, 비늘갑옷, 말투구와 말갑옷 그리고 새모양장식을 붙여 만든 미늘쇠 등이다. 특히 대형봉분에만 부장되는 덩이쇠는 풍부한 철을 바탕으로 고대 국가로 성장한 아라가야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각종 말띠드리개나 말띠꾸미개 등에는 금‧은을 활용한 장식적 요소들이 가미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지배층의 화려한 면모도 엿볼 수 있다. 또 아라가야의 대외교류를 가늠할 수 있고 불꽃무늬토기는 아라가야의 상징적 문화상을 엿볼 수 있다.

인구 6만 명의 조용했던 도시 함안군이 올해 처음 추진하는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매력적인 콘텐츠 개발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제와 시나리오 개발, 장소별 프로그래밍, 시스템 시뮬레이션과 파일럿 테스트까지 프리 프로덕션이 사업의 반이다. 이와 함께 관람서비스, 홍보전략, 관광마케팅, 군중동선관리, 문화재보호대책, 안전관리를 포함한 문화유산관광 페스티벌로서의 마스터플랜을 완성하는 것도 사업 초반부에 기초를 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담당 공무원이 행정가로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PD 역할이 돼야 한다. 꼭 방송을 만들고 공연을 만드는 프로듀서가 아니라 문화기술(CT) 연구개발자, 문화재 활용 기획자로서의 PD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프리 프로덕션과 마스터플랜은 공사의 설계도처럼 프로젝트 성공의 척도가 된다. 문화기술(CT) 분야 감독 선임, 연출단 가동 등 민간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프로덕션 전체의 초석을 잘 다져야 한다. 콘티 구성과 스토리보드 아트워크를 비롯한 프리 프로덕션이 선행되면 미디어아티스트들과 함께 메인 프로덕션으로 3D 모델링, 모션그래픽 디자인 등 콘텐츠 창‧제작 전반을 마치고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인 인스톨레이션과 엣지블랜딩을 통한 보정, 마지막 리허설을 거쳐 안정적으로 개막할 수 있는 추진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래서 휴먼웨어(사람)다.

함안말이산고분군의 석양

‘문화유산 미디어아트’는 현대미술이나 영상예술로서의 일반적 미디어아트와 달리 대상 문화재의 고유한 가치와 특성, 장소성을 공감력 있는 스토리로 풀어내 동시대성의 예술작품으로 감상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그것의 현장 전시를 위해 대상 문화재의 건축적 특성과 경관적 요소를 최적화한 하드웨어 설계가 핵심이다. 궁극적으로는 한 편의 공연물로서 아트쇼, 비엔날레 같은 작품전, 낭만적 디지털 야행으로 구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기승전결 서사의 황홀한 스토리, 몰입감 있는 콘텐츠, 최첨단 장비의 웅장한 연출로 대중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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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공지능(AI), 혼합현실(MR), 확장현실(XR), 메타버스까지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다. 문화예술 현장에서도 이런 변화를 급격하게 맞이하고 있다. 최신의 첨단기술이 실감형 공연‧전시 연출과 융합해 이미 ‘아트&테크놀로지’라는 장르를 만들어냈다. 2003년 유네스코가 『디지털 유산 보존에 관한 헌장』을 통해 제시한 ‘디지털 헤리티지’도 마찬가지다. 잘 만든 미디어아트 콘텐츠는 덩그러니 남아있는 건축물만 바라보던 방식에서 문화재가 캔버스이자 피사체가 돼, 역사의 현장을 대중과 교감하도록 매개한다.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9월 10일부터 25일까지 2년 만에 개최되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가야고분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 전 세계인이 한국을 주목한다. 미디어아트가 열리는 함안 말이산고분군은 외래 관광객에게 한국 방문의 최대 관심 지역이 된다. 함안의 야경이 K-미디어아트로 대한민국의 관광매력을 한층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되리라 본다. 2023년은 함안 관광‧경제의 획기적 전환점이다. 헤리티지 미디어아트를 통한 지역 발전 효과를 위해 주도면밀한 마스터플래닝이 현안이다. 소프트웨어(콘텐츠)와 하드웨어(장소)는 어느 정도 갖춰졌다. 이제 휴먼웨어다. 준비하는 함안 공직자들의 마케팅적 리더십과 PD 마인드가 중요한 시점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창근 헤리티지랩 디렉터‧박사(Ph.D.)

예술경영학박사(Ph.D.). ICT 칼럼니스트이자 Media-Art 디렉터로 헤리티지랩 소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정보원 이사, 충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 이사를 겸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좋은빛위원, 세종특별자치시 경관위원, 제5차 유네스코 학습도시 국제회의 프로그램디렉터 등을 지냈다. 현재 인천광역시 공공디자인위원, 천안시 도시계획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5월부터 ZDNET Korea의 칼럼니스트로 오피니언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한다.
* 헤디트(HEDIT): 헤리티지(Heritage)+디지털(Digital)+아트(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