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문화재 야행 장소로 친숙한 강릉대도호부관아에서 올해 ‘문화유산 미디어아트’가 대규모로 개최된다. 이는 지난해 강릉시와 강릉문화원이 문화재청의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국비 8억 7천만 원(총사업비 17억 4천만 원)을 유치한 결실이다.
미디어아트가 열리는 장소이자 역사적 배경이 되는 강릉대도호부관아에는 국보 ‘강릉 임영관 삼문’과 보물 ‘강릉 칠사당’이 소재한다. 이곳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관청이다. 조선시대에는 정3품의 부사가 파견됐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고려 태조 19년(936)에 세워져 83칸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객사 문만 남아 있다. 객사문은 고려시대 건축물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건물 가운데 하나로, 공민왕이 쓴 ‘임영관’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1993년에 강릉시청 건립계획에 따라 시행한 발굴 조사 결과, 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관아 성격의 건물터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는 자리임이 확인됐다. 조선시대 『임영지』의 기록을 통해서도 이 유적의 중요성과 옛 강릉부의 역사문화를 알려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문화유산 미디어아트’를 강릉에서도 만나게 된다. 이 사업은 2021년부터 시작된 문화재 활용사업의 하나다. 지역별 유산의 특성에 맞게 ICT 워킹 투어, 프로젝션맵핑 미디어파사드, 융복합 미디어퍼포먼스, 실감형 콘텐츠, 인터랙티브 아트 등 첨단기술로 구성된 야외 디지털 페스티벌이다. 문화재가 예술, 디지털과 융화하여 시민들이 문화유산을 새롭게 경험하도록 하고 관광객을 지역에 방문하도록 하는 체류형 야간관광 프로그램이다.
일반인에게 강릉은 최근 미디어아트 도시로 주목받는다. 2021년 12월 개관한 ‘아르떼뮤지엄 강릉’이 국내 최대 규모, 최고 기술의 실감형 미디어아트 전시를 선보이며 2030 세대에게 핫플레이스로 이목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자연’을 주제로 관동팔경의 으뜸이자 백두대간의 중추인 강릉의 지역적 특성과 역사문화를 반영, 높고 낮은 지형의 속성을 모티브로 한 ‘밸리(VALLEY)’를 테마로 12개 미디어아트를 상시 운영하고 있다.
실내 전시와 달리 문화재 현장에서 진행되는 강릉대도호부관아 미디어아트는 ‘신화의 도시, 천년의 기록’을 주제로 국보 임영관 삼문, 보물 칠사당, 사적 강릉대도호부관아를 활용, 제작하여 9월 개막한다. 김홍규 강릉시장은 “시민과 함께하는 창의적 문화예술교육도시 실현을 위해 기존의 문화재 관람 형태를 넘어 미디어아트 기술을 접목한 문화유산의 활용 방법에 대한 발상 전환을 도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전국 8개 지역에서 개최된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은 우리 문화재를 재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특히 문화재의 고유성을 훼손하지 않고 정체성을 담아내 우리 국민에게 위로의 예술작품을 선사했다. 더불어 침체한 관광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미디어아트가 열리는 문화재 주변 상권은 야간관광지로 발돋움했고,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골목상권의 불빛을 밝혔다. 특히 한류 열풍과 맞물려 한국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전하며 방한 관광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기도 했다.
강릉시 문화유산과 문화유산활용팀에 따르면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을 통해 야간까지 확장된 관광콘텐츠 경쟁력 제고와 구도심 경제 활성화까지 도모할 수 있게 됐다”며 “수도권 대비 비교적 야간콘텐츠가 부족한 지역의 한계를 극복하고, 미디어아트와 문화유산을 접목한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할 것”이라고 한다.
국보 ‘강릉 임영관 삼문’은 고려 말에 지어진 객사의 정문으로, 객사는 관리나 사신이 지방을 여행할 때 숙소로 사용했던 관청이다. 왕이 파견한 중앙관리나 사신들이 묵기도 했다. 현재 전해지는 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려 말에 지어졌으며 강원도에 있는 건축물 중에서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다. 현재 객사 건물은 없어지고 이 문만 남아 있다. 간결하고 소박하지만 건축 재료에서 보이는 세련된 조각 솜씨는 고려시대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물 ‘강릉 칠사당’은 강릉대도호부관아 구역 내에 있으며, 조선시대 지방 수령의 집무실로 사용되어 온 건물로, 칠사당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수령의 주요 업무가 칠사(七事)로 규정되었던 데서 연유하여 명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칠사란 농사, 호구, 교육 병무, 세금, 재판, 풍속을 말한다. 강릉 칠사당은 시대적 배경, 역사적 인물과 사건이 기록으로 남아있는 점, 관아 건물로 마루의 높낮이를 달리하여 공간의 변화와 위계를 구분하고 있는 평면 형태와 구성, 바닷가에 있는 지리적 특성을 나타내는 물고기 모양 화반과 삼익공의 공포 형식 등의 특징을 고려할 때 건축사적으로 그 가치가 크다.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을 강릉시와 함께 준비하는 강릉문화원은 문화재 활용에 대한 노하우가 풍부하다. 강릉 문화재 야행을 2016년부터 시작하여 올해까지 8년 연속 운영하고 있다. 2017년, 2019년, 2021년에는 전문가 평가단으로부터 전국 최우수 야행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는 문화재 야행의 프로그램으로 미디어파사드와 드론라이트쇼를 추진한 경험도 있다.
올해 강릉시가 처음 추진하는 대규모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도면밀한 설계가 관건이다. 주제와 시나리오 개발, 장소별 프로그래밍, 하드웨어 시뮬레이션과 파일럿 테스트까지 프리 프로덕션이 사업의 반이다. 이와 함께 관람서비스, 홍보전략, 관광마케팅, 군중동선관리, 비상안전대책을 포함한 페스티벌로서의 마스터플랜을 완성하는 것도 사업 초반부에 기초를 잡아야 한다.
프리 프로덕션과 마스터플랜은 공사의 설계도처럼 프로젝트 성공의 시금석이 된다. 문화기술(CT) 분야의 디렉터 선임, 제작그룹 가동 등 민간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프로덕션 전체의 초석을 잘 다져야 한다. 시나리오 구성과 스토리보드 디자인을 비롯한 프리 프로덕션이 선행되면 미디어아티스트들과 함께 메인 프로덕션인 3D 모델링 등 콘텐츠 제작 전반을 마치고 후반작업 엣지블랜딩, 리허설을 거쳐 안정적으로 개막할 수 있는 추진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문화유산 미디어아트’는 현대미술이나 영상예술로서의 일반적 미디어아트와 달리 대상 문화재의 고유한 가치와 특성, 장소성을 공감력 있는 스토리로 풀어내 동시대성의 예술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그것의 현장 전시를 위해 대상 문화재의 건축적 특성과 경관적 요소를 전방위적 고려한 하드웨어 설계가 핵심이다. 궁극적으로 한 편의 공연물과 같은 아트쇼, 낭만적 디지털 야행으로 구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기승전결의 감동적 스토리 개발, 몰임감 있는 콘텐츠 제작, 최첨단 하드웨어를 통한 웅장한 디지털 연출로 대중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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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공지능(AI), 혼합현실(MR), 확장현실(XR), 메타버스까지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다. 문화예술 현장에서도 이런 변화를 급격하게 맞이하고 있다. 최신의 첨단기술이 실감형 공연‧전시 연출과 융합해 이미 ‘아트&테크놀로지’라는 장르를 만들어냈다. 2003년 유네스코가 『디지털 유산 보존에 관한 헌장』을 통해 제시한 ‘디지털 헤리티지’도 마찬가지다. 잘 만든 미디어아트 콘텐츠는 덩그러니 남아있는 건축물만 바라보던 방식에서 문화재가 캔버스이자 피사체가 되어, 역사의 현장을 대중과 소통하도록 연결한다.
올해부터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가 추진하는 ‘2023-2024 한국방문의 해’다. 이와 연계하여 강릉의 밤하늘을 K-미디어아트로 수놓을 헤리티지 미디어아트가 강릉관광의 희망등불이 되길 바란다. 관광마케팅 아이디어를 한가지 제언한다면, 이미 잘 알려진 아르떼뮤지엄과 티켓 할인과 관광코스 연계 등의 서비스 제휴를 통해 시너지효과를 창출하는 것도 효과적 방법이 되리라 본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