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의 ‘무제한 휴가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균성의 溫技] 챗GPT 시대의 행동과 책임

데스크 칼럼입력 :2023/01/16 08:49    수정: 2023/01/16 10:47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가 16일부터 ‘무제한 휴가제’를 도입키로 했다. 미국 내에서 일하는 정규직 직원 대상이다. 이들은 원할 때 날짜에 상관없이 휴가를 갈 수 있다. MS 최고인사책임자인 캐슬린 호건은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우리가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 시기, 장소가 극적으로 변했고, 이에 맞춰 휴가 정책을 더욱 유연하게 현대화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취지로 이 사실을 알렸다.

국내 대부분의 직장인에겐 한 마디로 꿈같은 이야기다. ‘무제한 휴가’는커녕 법적으로 정해진 휴가도 다 못 쓰거나 쓰더라도 눈치를 봐야 하는 경험을 해본 직장인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근로기준법 제60조 1항은 ‘사용자는 1년간 80%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60조4항에서는 근로 연수에 따라 연간 25일 한도 내에서 가산휴가를 주도록 정하고 있다.

최근 ‘무제한 휴가제’를 도입하고 있는 한 스타트업을 취재한 적이 있다. 이 회사 대표는 특별한 사원복지를 묻는 질문에 무제한 휴가제를 꼽았다. 그는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직원들은 필요할 때 일수에 제한 없이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휴가를 쓴 직원이 있었느냐고 다시 물었다. “한 명이 있었다”고 한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 회사 임직원은 현재 약 90명이다.

MS 연례 컨퍼런스인 '마이크로소프트 이그나이트 2022' 장면

어떤 언론은 ‘무제한 휴가제’ 기사에서 “직장인들에겐 꿈같은 얘기 같지만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고 썼다. 무제한 휴가제가 도입되어도 일반 직원으로서는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고 각자 얼마나 쉬어도 될지 잘 몰라 맘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스타트업 대표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않은 까닭도 이런 현실을 들춰내 무안을 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무제한 휴가제가 '빛 좋은 개살구'라면 기업은 직원을 대상으로 쇼를 하고 있는 셈이 된다. 특히 ‘그림의 떡’인 걸 뻔히 알면서도 진짜 떡인 것처럼 말한다면 그것은 기만이다. 공약(公約)이되 공약(空約)이다. 불법은 아니겠지만 조삼모사의 간악한 술수다. 이런 생각과 판단은 그런데 언제나 참인 것일까. 그렇다고 대답하려면 최소한 ‘MS가 직원을 기만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입증해야만 한다.

MS가 직원을 기만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 시기, 장소가 극적으로 변했고, 이에 맞춰 휴가 정책을 더욱 유연하게 현대화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최고인사책임자의 발언은 그냥 꾸며낸 헛소리이고 진짜 속셈은 따로 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딴 속셈을 모르겠다. 직원을 기만하는 행위는 회사 존속을 위협하는 이른바 ‘테일 리스크’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모든 직원을 속이는 회사가 어떻게 지속가능할 수 있겠는가. 처음에 한두 번 속이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그 많은 눈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본인은 속이면서 다른 사람은 신의성실의 원칙을 다할 것으로 믿는 건 더 우매하다. MS 경영진이 그렇게 우매하다는 데는 눈곱만큼도 동의할 수 없다. 그보다는 MS 최고인사책임자의 발언에 우리가 아직 모르는 진실이 숨어 있다는 쪽이 더 믿음직하다.

KOTRA의 우은정 로스앤젤레스무역관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기업들이 유념할 美 고용시장의 변화’라는 글에서 블룸버그의 보도를 인용해 “미국 주요 기업 10개 중 1개가 ‘무제한 유급 휴가제’를 도입하고 있다”며 “재택근무의 확장이나 보다 유연한 휴가제도의 마련 등은 매우 좋은 솔루션이 될 수 있다”고 권고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MZ세대 등장으로 고용시장 및 근무 문화가 변했다는 것이다.

일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는 어쩌면 시기나 장소보다 일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사무적인 일을 척척 대신해주는 걸로 알려지면서 열풍을 몰고 온 인공지능 챗봇 ‘챗GPT'를 생각해보라. ‘챗GPT’가 보기에 인간의 사무 노동은 얼마나 팍팍한 것이겠는가. 옆에 있는 트랙터를 놔두고 호미로 황무지를 개간하는 일과 비슷하지 않겠는가. 트랙터가 있는데 왜 그런 일을 시켜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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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가 ‘챗GPT’ 개발회사인 오픈AI에 12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뉴스와 ‘무제한 휴가제’를 도입하겠다는 뉴스는 그래서 별도의 기사로 읽히지 않는다. 호미로만 땅을 팔줄 알고 그것만이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트랙터의 괴력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 시기, 장소가 극적으로 변했다.” 이것은 그냥 수사가 아닐 수 있다. 그 말은 세상의 변화를 전하는 진실일 수 있다.

호미로 땅을 파며 챗GPT와 경쟁하려는 직원을 둘 것인가, 챗GPT를 다룰 줄 아는 새로운 유형의 직원을 길러낼 것인가. MS의 ‘무제한 휴가제’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다가 나온 방법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물론 ‘무제한 휴가제’가 유지되려면, 나심 탈레브 식으로 말하자면, ‘행동에 따르는 책임의 균형’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또 이를 가능하게 할 새로운 평가 제도가 병행되어야 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