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자금세탁' 규제 문턱 넘을 코인 있긴 한가

페이코인 아니어도 '미꾸라지' 신세 면치 못할 가능성 커

기자수첩입력 :2023/01/11 16:23    수정: 2023/01/11 16:33

가상자산 기반 결제 서비스 '페이코인'이 특정금융정보법 상 규제를 충족하지 못하면서 결국 한 달짜리 시한부 신세가 됐다. 규제 준수에 필요한 은행 실명계좌를 당국이 제시한 기한 내로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코인 프로젝트 중 하나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업계는 안타까워하고 있다. 동시에 "예상대로"라는 목소리도 많다. 특금법 상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수리 절차를 밟은 업체들은 대부분 은행 실명계좌를 얻기 위해 이리 저리 뛰어본 '선배'들이다. 그럼에도 은행과 계약을 맺지 못한 경우가 상당수다. 은행 입장에선 실익 적은 계약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페이코인이 실명계좌를 얻기 위해 받은 시간은 공식적으론 2개월 정도였다.

업계에서 일찍이 이런 결과를 예견했던 이유가 또 있다. 가상자산을 실생활에서 결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 당국이 간접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쳐왔다는 것이다. "그간 간담회 자리 등에서 당국이 페이코인에 대해 예의주시하는 인상을 받아왔다"고 털어놓는 업계 관계자도 있었다. 때문에 마찬가지로 당국 규제를 받는 은행도 이런 분위기를 무시하기 어렵다고 봤다.

오히려 그래서 페이코인의 책임이 크다는 시선도 있다. 경쟁사들은 이런 분위기를 읽고 가만히 있었던 반면, 페이코인은 알면서도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해왔다는 것. "다들 알 정도의 '그림자 규제'를 어기면서 사업을 하다가 현행법에 근거한 제재를 받은 건데, 당국 잘못으로 볼 수 있나"라는 반응이다.

금융위원회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당국의 이번 결정은 아쉬움이 남는다. 페이코인이 비교적 큰 잡음 없이 운영돼온 몇 안 되는 가상자산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가상자산이 단순히 투기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서비스 운영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다른 코인들보다도 먼저 페이코인이 국내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커졌다. 투자자들도 피해를 면하기 어렵게 됐다.

페이코인 같은 '얌전한' 서비스마저 할 수 없다면, 코인을 어떤 수단으로 내놓는 건 시기상조라고 업계는 해석한다. 답답함이 더해지는 건 이런 이유다. 가상자산의 쓸모를 증명하고 싶어도 그 시도조차 제한되고, 쓸모가 증명된 적이 없기에 투기꾼만 뛰어드는 시장이라는 편견도 심화된다. 편견이 심화되는 까닭에 규제도 쉽사리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 가상자산에 신기술, 신산업으로서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정부의 현 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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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금법은 자금세탁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들을 다룬다. 고객확인(KYC) 제도와 트래블룰 시스템이 업계에 안착한 현재로선 은행 실명계좌를 절대적으로 요구해야 할 이유도 남지 않았다. 페이코인에 따르면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수리 과정에서 은행 실명계좌를 확보하지 못한 점 외 다른 결격 사유는 없었다.

정부가 가상자산 산업 육성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 자체는 필요한 수순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다만 자금세탁 방지 규제가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가상자산 산업을 쥐고 흔드는 그림자 규제 수단으로 오해받는 건 지양해야 한다. 당위가 명확한 정책이 동반될 때 당국의 전문성과 위상도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