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사미된 반도체특별법..."당장 5년뒤 위기 온다"

[이슈진단+] 탈 많은 국회 반도체특별법..."세액공제율 낮아 경쟁력 없어" 한 목소리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22/12/28 13:56    수정: 2022/12/28 16:39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추진된 반도체 특별법(K칩스법)이 용두사미로 전락하면서 한국이 경쟁력을 잃고 후퇴할 가능성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대로라면 당장 5년 뒤에 한국 반도체 산업에 위기가 닥칠 것이라며 탄식을 쏟아내고 있다.

국회는 지난 23일 본회의에서 반도체 특별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의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8%, 중견기업 8%, 중소기업 16%로 의결했다. 결과적으로 기존 세액공제율과 비교해 대기업만 6%에서 8%로 2%p(포인트) 상향하는 데 그쳤으며,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은 기존과 동일하다. 

이는 당초 논의됐던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2030년까지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20%, 중견기업 25%, 중소기업 30%로 높이자는 입장을 내놨지만 더불어빈주당(야당)은 대기업 특혜라는 이유로 반대하며 대기업 10%, 중견기업 15% 방안을 제안한데 따른 결과다. 이에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양향자 의원은 "차라리 부결시켜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전세계가 반도체 산업에 최대 25% 이상의 세액공제뿐 아니라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파격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한국만 제자리걸음으로 전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6월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보고 있다.(사진=대통령실=뉴스1)

반도체 70년 역사상 가장 치열한 경쟁…"한국만 상황 파악 못했다"

세계 각국이 반도체 패권경쟁에 돌입한 가운데, 반도체 업계에서는 반도체 특별법에 대해 한국만 아직 상황 파악을 못했다고 꼬집었다. 이번 법안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단절시키는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정부와 정치인들이 엄중한 기술 경쟁 상황에 대해 인식을 아직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번 법안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우위 경쟁력을 상실하게 하는 조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 사업은 70년 역사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 한국 기업들이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고 있다"라며 "이번 반도체특별법으로 인해 결과가 달라질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당장 5년 뒤가 크게 걱정된다"라며 "미국에서 짓고 있는 파운드리 공장은 3년 후에 칩 생산을 시작하는데, 이는 3년 뒤 본격적인 경쟁구도에 돌입한다는 의미다"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메모리 시장에서 중국 등 추격자들이 따라오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한국이 1위를 지키려면 엄청난 연구개발과 시설투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서도 많은 시설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특별법은 기업이 시설투자를 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법이라는 의견이다.

유재희 반도체공학회 부회장겸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경기 민감도가 높은 메모리에만 의존하는 한국은 비교적 열세인 비메모리 반도체의 경쟁력 향상과 우세에 있는 메모리 분야의 경쟁력 유지, 인재 양성을 위한 투자가 절실하다"라며 "하지만 최근 결정된 반도체 특별법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반도체 기업에만 특혜를 준다거나, 부자 감세나 지역 불균형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국내 정치 논리가 글로벌 경제 논리보다 앞서게 됐다"며 "궁극적으로 벌써 시작되고 있는 고용 창출이나 영업이익 측면의 감소로 세수 감소뿐 아니라 오히려 약자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김 사업단장은 "파운드리는 5나노, 3나노 칩 양산에 이어 최근에는 2나노, 1.4나노 기술을 개발하면서 시설투자 비용이 많이 늘어났다"라며 "예전에는 1라인 생산시설 구축에 약 6~7조원이 들었다면, 첨단 공정에서 극자외선(EUV) 장비를 사용하게 되면서 투자 비용이 증가했는데 이런 투자를 정부지원 없이 기업이 오로지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미국·유럽·일본은 25% 세금감면에 보조금도 지급하는데…한국은 후퇴 중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1년 4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관한 최고경영자(CEO) 화상 회의에 참석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사진=AP통신)

한국과 달리 해외 경쟁국은 반도체 산업 육성에 자국 기업은 물론 해외 기업 유치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액공제뿐 아니라 보조금 지원까지 해준다. 반면 한국 정부만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의견이 다수다.

미국은 지난 8월 공포된 반도체과학법(칩스법)을 통해 자국 내 설비투자하는 기업에 세액을 최대 25% 감면해주고 있다. 여기에는 해외 기업도 포함된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가 미국 내 반도체 팹을 건설 중인 것도 칩스법을 통해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데 따른 결정이다.

유럽은 지난 11월 430억 유로를 지원하는 반도체법에 합의했다. 이에 일환으로 독일은 인텔 신규 공장 투자 비용의 40%를 지원해주기로 결정했고, TSMC의 신규 공장 건설에 보조금 지원을 논의하고 있다.

대만은 현지 기업의 R&D(연구개발)·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기존 15%에서 25%로 높이는 개정안을 최근 발의했다. 중국은 향후 5년간 현지 반도체 기업에 1조위안(약 183조원)을 지원하는 패키지를 내년 1월 시행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 예산 법안을 통해 반도체 분야의 진흥 및 지원에 약 1조3천억 엔(12조3천억 원)을 배정했다. 일례로 일본은 지난 11월 토요타, 소니, 키오시아, NTT, 소프트뱅크, NEC, 덴소, 미쓰비시UFJ은행 등 8개사가 설립한 반도체 회사 '라피더스'에 700억엔(약 6천569억원)을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또 일본은 TSMC가 일본 구마모토에 공장을 짓는 1조2천억엔(약 11조5천억원) 비용의 40%를 지원한다. 더불어 인도 또한 반도체 투자에 30~50% 투자비용을 지원해주겠다는 방침이다.

그래픽=지디넷코리아

김형준 사업단장은 "해외에서는 자국 내 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에 세금 감면뿐 아니라 시설투자비 보조금을 지원해준다고 할 정도"라며 "다른 국가에서는 해외 반도체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인데, 우리나라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양향자 의원은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에 관한 글로벌 스탠다드(세계적 표준)는 25%다. 미국 25%, 대만 25%, 중국은 무려 100%”라며 “한국 8%, 경쟁력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벌써 미국으로 빠져나간 투자금만 300조원에 달한다. 코리아 엑소더스(대탈출) 규모는 이제 더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2공장을 건설 중이며, SK하이닉스는 지난 7월 미국에 150억달러(약 19조원)를 첨단 패키징 제조시설 및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국내 기업, 해외로 생산시설 이전 우려…반도체 생태계 비상

반도체 특별법의 낮은 세제공제율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기업이 제조시설을 해외로 옮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장기적으로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후공정(OSAT) 업체의 생태계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2021년 11월 미국 테일러 반도체 공장에 17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왼쪽부터) 존 코닌 상원의원, 그랙 애벗 텍사스 주지사,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삼성전자)

유재희 부회장은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이며, 글로벌한 기술 교류를 위한 해외 기업도 한국에서 발길을 돌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중국에 비해 열세인 후공정, 미국과 일본 등에 비하여 열세인 반도체 장비 중소기업은 세계 일류 기술을 따라가기 위한 투자할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못하게 되면서 대기업보다 투자 여력 측면에서 여러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관련기사

김형준 단장은 "삼성전자가 TSMC에 비해 불리한 부분은 국내에 반도체 에코 시스템이 형성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반면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팹리스, 패키징 기업들의 에코시스템이 잘 형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런 점 때문에 삼성 혼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TSMC를 따라가기가 힘들 것"이라며 "그런 에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에 특별 조세 감면이 있어야 투자를 할 것이다"고 조언했다.

안기현 전무는 "국내 반도체 대기업이 해외로 이전할지 여부는 지금 알 수 없지만, 만약 가게 된다면 국내 소부장 업체들의 시장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