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기술에 힘입어 보건의료 영역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전 세계는 디지털 헬스케어(Digital Healthcare)를 통한 신종 감염병, 초고령화 시대, 지역 간 건강격차 해소 등 우리 앞에 놓인 적대적 환경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디넷코리아는 내년을 디지털 헬스케어 원년으로 규정하며 새로운 ‘미래의료’ 연재를 선보인다. 이를 통해 국내·외 디지털 헬스케어의 산업 동향과 가능성 및 역작용을 분석, 가장 정확한 전망을 제시할 것이다. [편집자 주]
디지털 헬스케어 발전을 위한 보건의료 빅데이터(이하 의료데이터) 활용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지만, 데이터 소유 주체에 대한 이견도 좁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10월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디지털 헬스케어 진흥 및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안’에 담긴 다음의 구절은 산업 측면에서 디지털 헬스케어와 의료데이터의 연관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
“잠재가치가 높은 방대한 보건의료데이터를 우리나라의 ICT 역량과 결합한다면 보건의료서비스의 혁신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의약품 등 디지털·바이오헬스 산업 전반의 혁신과 성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에도 관련 내용이 있다. 보건의료 빅데이터 구축 및 개방, 바이오 디지털 활용 인공지능 개발 등 데이터 기반 연구개발을 확대하고 정밀의료를 촉진하겠다는 것.
보건복지부는 디지털 헬스케어 신시장을 창출하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 디지털 헬스케어‧보건의료데이터 법 제정이 추진 중이다. 정은영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올해 의료 분야의 디지털 전환 등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성화 대책을 중점적으로 시행했다”고 말했다.
의료데이터 활용, 아직은 먼 길
의료데이터의 활용을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 기조에는 공감하지만 현재의 논의 수준은 아직 낮다고 본다. 의료데이터의 정의조차 아직 법적으로 규정된 것이 없다.
곽환희 법무법인 오른하늘 변호사에 따르면, 법적으로 데이터는 주체를 규정할 수 없는 특성을 갖고 있다. 법적으로 데이터는 물건이 아니어서 침해가 발생하면 부정경쟁행위로써 처벌이 이뤄질 뿐이다. 때문에 의료데이터 소유권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법적으로 환자는 제공자이며, 병원은 수집자, 이후 데이터 결합 등을 시행하는 측은 가공자다. 곽 변호사는 “데이터 제공자나 가공자 사이의 소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주한 서울대의대 교수는 이를 ‘데이터 혼란’으로 빗댄다. 김 교수의 말이다. “데이터 혼란은 지속되고 있다. 보건의료 데이터 정의는 포괄적이고 복잡하기 때문에 1, 2차 데이터로 구분해 바라봐야 한다. 1차 데이터는 진료 목적으로 취득된 정보이고, 이를 연구 등 목적으로 가공한 게 2차 데이터다. 20여 년 전부터 2차 데이터 사용을 위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현재가지 이어지고 있다.”
유승찬 연세대의대 교수는 1, 2차 데이터의 소유에 대해 모순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의료인과 의료기관이 환자를 통해 의료데이터를 생성·관리 및 보안의 의무를 지지만 권리는 없다”며 “권리 없이 의무만 존재하는 모순이 존재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유 교수가 지적한 모순이란 현행 데이터 연구 윤리 기준과 관련이 깊다. 즉, 연구 등의 목적으로 의료데이터를 활용하려면 IRB 등의 허가를 득한 후 데이터 열람이 가능하고, 연구 후에는 즉각 폐기해야 한다.
김종엽 건양대의대 교수는 이러한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데이터 연구 윤리 기준이 기존 연구 윤리와는 달라야 한다고 본다. 김 교수는 “데이터는 개인 민감 정보 활용 과정에서 유일하게 문제가 생긴다”며 “민감 데이터 노출은 문제이지만, 환자 몸에 직접적인 위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언제까지 환자·의료기관·의료인 중 누구에게 의료데이터 소유권이 있는지를 두고 싸울 것이냐”며 “후손들에게 이 데이터를 줘야한다. 이미 환자단체들은 데이터를 연구해 더 나은 치료법을 개발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황희 카카오헬스케어 대표는 정부가 개입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는 “데이터의 기본 소유는 환자에게 있지만, 정제되고 의료적으로 의미 있게 가공한 의료기관의 역할이나 기여에 대해선 주목하지 않는다”며 “데이터 활성화를 위해 소유에 대한 정립부터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데이터 사용으로 인해 이익이 발생하면 배분 구조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렇듯 의료데이터 소유와 정의도 모호한 상황에서 규제는 의료데이터 접근에 어려움을 준다. 이러한 환경은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류재준 네이버클라우드 이사도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들은 쉽게 구해질 수 있는 데이터만 갖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사용자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정은영 국장은 “보건의료 분야는 갈등이 많고 여러 이익단체가 많다”며 “논의의 주체가 돼야 할 의료계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그러면서 “안정적이며 산업 발전으로 활용이 가능한 어려운 과제를 달성할 수 있는 법 제정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