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민건강보험 재정 효율화를 추진한다. 절감된 재정은 필수의료와 재난적 의료비에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 공청회를 열고 이 같이 밝혔다. 공청회는 시작 전부터 인파가 몰려들어 이번 발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복지부가 하려는 것은 건강보험 재정에 악영향 미치는 부분을 확인해 지출을 줄인다, 그렇게 절감한 돈으로 필수의료와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부터 문케어에 대해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해왔다. 이러한 인식은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다. 여기에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필수의료 지원 문제와 건보재정 문제가 결부되면서 관련 대책을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모든 정책에는 장단점이 존재한다. 건보 보장성 강화 추진 주체였던 복지부는 문케어가 의료접근성을 높이고 환자 부담을 감소했음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현재는 문케어가 과잉 진료를 유발시켜 건보 재정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복지부는 감사원의 지난 7월 감사보고서를 근거로 든다. 해당 보고서에는 건보 급여 항목 확대 이후 ▲적정 규모 대비 과다 보상 ▲지출관리 미흡 ▲과잉진료 유발 등이 있었다는 발표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날 “자기공명영상(MRI)‧초음파 검사 진료비가 지난 2018년 1천891억 원에서 2021년 1조 8476억 원으로 급증했다”며 “재정지출 급증에 따라 건강보험료 부담이 증가하고 있지만자격도용 및 외국인의 무임승차 등 재정 누수에 대한 관리대책은 미흡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 ▲필수의료 지원 미비 ▲환자가 타 지역에서 진료 받는 사례 증가 등도 거론했다.
정리하면 건보 급여 항목 확대가 건보 재정을 악화시켰으니 다시 재정건정성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복지부의 이른바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방안’의 골자는 ▲자기공명영상(MRI)‧초음파 검사 등 급여 항목·기준 재점검 ▲공정한 건강보험 자격관리 ▲합리적 의료이용 유도 ▲재정누수 점검과 비급여 관리 등이다. 관련해 현재 건강보험 재정은 지난해 연말 기준 누적 준비금 20조2천억 원이다.
■ "의료 이용 후퇴 아냐"
세부적으로 보면, 복지부가 하겠다는 보장성 강화 항목·계획 재점검은 의료계와 환자단체 등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물린 사안으로 논란이 예상된다. 복지부는 일률적인 급여화 때문에 뇌‧뇌혈관 MRI 등 일부 항목을 중심으로 의학적 필요가 불명확한 검사가 시행되며 과잉 의료이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남용이 의심되는 항목의 경우, 급여기준을 구체적으로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당장 급여화가 예정됐던 근골격계 초음파·MRI의 경우, 의료적 필요도와 이용량 등에 따라 제한적 급여화로 방향이 틀어질 전망이다.
또 ▲약제 재평가·위험분담제 적용 통한 고가약 관리 강화 ▲치료재료 실거래가 조사방식 개선 ▲요양병원 기능 재정립·성과-보상 연계 강화 등도 추진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복지부는 건강보험 자격제도·기준 등에 대한 손도 볼 계획이다. 우선 외국인 피부양자가 입국 직후 고액 진료를 받거나 타인의 건강보험 자격을 도용해 진료 받는 이른바 ‘건보 무임승차’ 차단을 위해 외국인 피부양자와 장기간 해외 체류 중인 영주권자가 지역가입자로 입국할 시 6개월이 경과한 시점부터 건강보험을 이용토록 했다.
이밖에도 요양기관의 건강보험 자격확인 의무화를 추진하며, 자격 도용 적발 시에는 부당이득 환수액을 현재의 1배에서 5배로 증액된다.
과다 의료이용자 관리 강화 방안도 나왔다. 복지부는 과다 외래의료 이용자의 건강보험 본인부담률을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중증질환 등 불가피한 예외 사례에 대한 논의도 병행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산정특례 대상 질환과 관련성이 낮은 경증질환 등은 특례가 적용되는 합병증 범주에서 제외되도록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소득 상위계층의 경우 소득수준에 비해 본인부담상한제를 적용받는 기준 금액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때문에 종합병원의 경증질환 진료비까지 본인부담상한제를 적용해 왔다. 앞으로는 소득상위 30%에 해당하는 5~7구간의 상한액이 상향 조정된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외래로 진료 받는 경증질환 105개는 본인부담상한제 적용 질환에서 제외한다.
아울러 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 지킴이 신고센터를 통한 신고 활성화를 위한 포상금도 지급한다. 건강보험과 실손보험 간의 연계와 풍선효과를 유발하는 급여-비급여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비급여 관련 소비자의 알 권리가 확대될 전망이다.
도덕적 해이와 의료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는 중점 관리 비급여를 대상으로 질과 안전성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금융당국과 불법·부당 사례에 대한 합동 점검·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실손보험 구조 개편 논의도 시작될 예정이다.
내년으로 예정된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도 이런 방향성이 더 심화돼 반영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지출을 줄여 마련한 재원은 어떻게 사용될지 관심이 쏠린다. 복지부는 “지원이 필요한 필수의료 분야를 지속 발굴해 추가 대책을 마련하고, 의료전달체계 개편 등 중장기 보건의료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보건의료 발전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정윤순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은 “이용하던 서비스 후퇴는 아니”라며 “재정 누수를 점검해 효율화하겠다는 의미”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