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삶의 이정표이자 동력이다. 꿈은 곧 미래의 삶이다. 꿈은 그래서 소중하다. 꿈은 사람마다 다르고 다른 만큼 다채롭다. 스타트업이 꾸는 꿈도 그럴 것이다. 소중하고 다채롭다. ‘이균성의 스타트업 스토리’는 누군가의 꿈 이야기다. 꿈꾸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른 꿈꾸는 사람을 소개하는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된다. [편집자주]
‘디지털 역량 강화’를 통한 기업 혁신의 동반자
김재원 엘리스 대표의 화두는 ‘데이터’다. 그에게 데이터는 세상을 보는 출발점이고, 세상의 문제를 푸는 열쇠이며, 세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고 있는 이정표처럼 보인다. 세상의 처음이자 끝이 곧 데이터인 셈이다. 김 대표의 꿈은 ‘세상에서 데이터를 가장 잘 이해하고 다루는 사람’이 되는 것일지 모른다.
그의 일은 ‘데이터를 다루는 것’이다. 그 일에 얼마나 몰입했는지, ‘일하지 않을 때 가장 즐기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잠자거나 일하거나, 요즘은 그 두 가지만 하고 있습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 마디로 워커홀릭이다. 인간은 뭔가에 중독되게 마련일 텐데, 김 대표가 중독된 것은 ‘데이터’라 할 수 있다.
엘리스는 ‘국내 코딩 교육 1위’라는 표어로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는 김 대표와 엘리스가 지향하는 꿈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주체들의 ‘디지털 역량 강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디지털 역량 강화’의 핵심은 데이터에 대한 풍부한 이해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는 그의 詩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노래했다. 김 대표에게는 ‘데이터’가 그렇다. 데이터도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그 가치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
도서관에 쌓인 책을 생각해보라. 책은 누군가의 소중한 지식과 경험의 총체다. 그것은 끄집어내져 누군가에게 공유될 때 ‘꽃’으로 되살아난다. 먼지를 쓴 채 도서관 구석에 처박혀 있기만 하다면 그 책은 낡은 종이와 잉크 자국으로만 남게 된다. 이때 누군가의 소중한 지식과 경험은 아무런 쓸 모도 없는 것이다.
데이터도 그렇다. 데이터는 결국 인간의 지식과 경험의 흔적이다. 본질적으로 소중한 것이지만 대개는 먼지 쓴 채 도서관 구석에 처박혀 있는 신세다. 누구도 꺼내 볼 생각을 하지 않고, 꺼낼 생각을 한다 해도 그걸 볼 엄두가 나지 않으며, 본다 하더라도 그걸 어떻게 재활용할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 탓이다.
■디지털 전환(DX)은 단지 IT 용어일 수만은 없다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DX)은 세계적인 트렌드다. 정보기술(IT) 용어다. IT 기술을 활용해 기업이나 기관의 모든 업무를 디지털 환경으로 전환한다는 의미로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DX는 단지 기술 용어로만 한정지을 수 없다. 그보다 지식과 경험을 21세기적 방식으로 재조직하는 일에 가깝다.
지금까지 기업과 기관의 업무는 현업과 IT지원으로 구분돼 있었다. IT는 현업의 업무를 더 생산적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처럼 여겨진 것이다. 하지만 생산성 향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생산성 향상으로 사업의 유지나 발전은 가능하지만, 이 또한 왕왕 ‘혁신이라는 괴물’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혁신이다. 끊임없이 혁신하지 않으면 누구도 그 무엇도 지속가능을 담보하지 못하는 시대다. 김 대표는 “그 혁신이 다름 아닌 ‘데이터’로부터 비롯된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데이터를 다루는 일은 이제 IT 개발자만의 몫이 아니다”고 믿는다. 모든 조직원이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길을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역량 강화가 혁신의 출발점”
김 대표는 “디지털 역량 강화는 단지 코딩하는 기술을 보유하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며 “그보다 기존 업무를 새롭게 인식하고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는 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능력은 본인과 조직이 생산한 데이터를 정확히 읽어낼 때 축적된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엘리스의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 플랫폼은 그래서 단순한 코딩 교육에만 머물지 않는다”며 “우리는 기업이나 기관이 혁신하고자 하는 과제를 제시해주면 그래픽처리저장장치(GPU) 및 머신러닝 오퍼레이션(MLOps)로 구축된 플랫폼과 100여 가지의 솔루션을 통해 최적의 실습 교육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와 엘리스에 대해 ‘디지털 역량 강화를 통한 기업 혁신의 동반자’라고 표현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디지털 역량이라 함은 곧 “어딘가에 쌓여 있을 데이터를 통해 ‘연산’하고 ‘분석’하며 ‘예측’할 수 있는 힘”이다. 누구나 그 힘을 갖도록 하는 것이 김 대표와 엘리스가 하려는 일이고,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기업 임직원 30만명이 선택했습니다”
‘디지털 역량 강화’는 이제 모든 기업과 기관의 화두가 됐지만 기업과 기관이 스스로 그것을 하기란 쉽지 않다. 기업과 기관의 조직원에게는 컨베이어 벨트 옆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일처럼 대개 한정된 일만 주어지고 조직원은 그 일만 하면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데이터는 물론 그 과정에서 생산되지만, 조직원이 그 데이터를 통해 컨베이어 벨트 자체를 바꿀 생각까지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쉽지 않다.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은 그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 과정이 조금씩 쌓이면 그곳에서 혁신의 싹이 움튼다. 기업들이 엘리스를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성을 비롯해 국내 20위권 기업 중 18곳을 필두로 1천개 기업과 기관이 엘리스의 고객이며, 현재까지 이들 기업 임직원 30만 명이 교육을 받았다.
물론 코딩 전문 교육도 한다. 코딩 교육은 보통 6개월 과정으로 진행되며, 이 과정을 수료하면, 산업계에서 필요한 기초 실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대개 이 과정은 고용노동부의 '코딩 국비 지원 프로그램'과 연동돼 운영된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 이 과정을 통해 1천명 가량의 코딩 인력을 양성했다”고 설명했다.
■“대표 방도 대표 자리도 없습니다”
28일 김 대표를 인터뷰하러 역삼동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당혹스러웠던 일 하나. 문을 열고 들어가 가장 가까이에 앉아 있던 직원에게 “대표님 좀 뵈러 왔습니다” 했더니 “제가 대푠데요, 어디서 오셨나요”란 대답이 돌아왔다. 당혹스러웠다. 여러 기업을 취재했지만 대표가 문간에 앉아 있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여기가 대표님 자리입니까.”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지금은 여기지만 내일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무실이 여러 곳에 있는데, 아무 곳이나 빈자리에 앉아 일합니다.”
“왜 따로 방을 두지 않는 거죠. 불편하지 않나요.” 다시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독특한 리더십이나 경영철학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원래 대표 방이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원격근무에 익숙하기도 하고, 임직원이 급격히 늘어나며 공간도 부족하고, 해서 그 방을 회의실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곳저곳 움직이며 일하고 있습니다.”
“옆 직원이 불편해하지 않나요.” 다시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불편해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당장 피드백을 받고자 옆에 앉는 건 아니니까, 다들 크게 불편해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물론 제 생각이긴 하지만...... 앞으로도 단지 옆에 있다고 해서 불편해하지 않았으면 싶습니다.”
■2019년부터 매년 세 자릿수 성장세 기록
김 대표의 말처럼 엘리스는 2019년부터 매년 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2021년 매출은 110억 원인데 이는 전년대비 240% 성장한 것이다. 김 대표는 올해 매출도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영업이익을 외부에 공개하지는 않지만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긴 상태다. 지금까지 135억 원을 투자받았는데, 유동성에 별 문제가 없고, 자체 자금으로 평택 데이터센터에 규모 있는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엘리스는 교육에서 출발한 DX 솔루션 회사이며, 이를 위해 평택에 있는 데이터 센터를 동시에 수만 명이 접속할 수 있는 규모로 확장해가고 있다.
아직은 기업공개(IPO)를 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KAIST AI연구실에서 피어난 사업 아이템
엘리스 사업 아이템은 김 대표가 KAIST 박사 과정에 있을 때 우연찮게 씨앗이 뿌려졌다. 김 대표는 당시 조교를 하며 기초 프로그래밍 강의 수업에서 학부생 코딩 답안지를 채점했는데 종이 인쇄물로 채점을 하다 한계를 느껴 자동 채점이 가능한 플랫폼을 만들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플랫폼에 코딩 답안을 제출하고, 조교는 플랫폼에 접속해 코드를 실행하며 채점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플랫폼을 개발하게 된 것.
이 플랫폼이 코딩 실습 교육의 뿌리가 된 셈이다. 김 대표는 당시 플랫폼을 같이 개발했던 대학원생 2명과 함께 2015년 엘리스를 창업했다.
■캐나다 통신사 텔러스에서 배운 소중한 경험
김 대표는 캐나다에서 대학을 마치고 애플 캐나다와 엔비디아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2009년에는 캐나다 통신사 텔러스에 입사해 3년을 근무했다. 김 대표는 이 때 경험을 통해 데이터와 DX의 소중함을 크게 느꼈다고 한다.
“운이 좋았습니다. 신사업팀에 소속돼 있었는데 짧은 시간에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특정 업무보다는 1만 명의 거대 조직 이곳저곳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디지털 전환과 조직의 소통 등에 관한 것이었죠. 해야 할 일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느꼈고,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KAIST 박사 과정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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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 아무 곳에나 앉아 일하는 김 대표는 “최고 복지는 좋은 동료”라 말한다. 본인이 워커홀릭이어서 주변에 불편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 불편이 김 대표의 뜻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엘리스의 기업 모토는 ‘교육을 혁신하며 모두에게 제약 없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문장으로 정리된다. 그것이야 말로 워커홀릭 김 대표의 뜻이겠다. ‘모두에게 제약 없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 불가능에 대한 도전과 꿈이 김 대표를 워커홀릭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덧붙이는 말씀 : 김재원 엘리스 대표가 추천한 다음 인터뷰 대상자는 AI반도체 기업 퓨리오사AI의 백준호 대표입니다. 벌써부터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