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서울에 아파트를 마련한 직장인 C씨. 부동산 가격이 앞으로 급등할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에 영혼까지 끌어모아 은행에서 연 3.6% 금리에 4억원을 빌렸다. 부족한 돈은 신용대출을 끌어다 썼다. 매달 은행에 내야할 이자가 180만원이나 됐지만, 든든한 아파트 한 채가 생겨 기분은 좋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가 꿈꿨던 그림과 반대로 흘러갔다. 한국은행이 연일 인플레이션 경고를 하더니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 것이다. 급기야 유례없는 '빅스텝(기준금리 0.50%p 인상)'을 두 번이나 단행했다. 그가 내야 할 이자만 100만원이 늘었다.
설상가상으로 믿었던 아파트 가격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A씨의 아파트 시세는 현재 구매 당시 대비 약 7000만원 내려갔다. 이자 비용 부담에 식비까지 줄여버린 A씨. 요즘 들어 괜히 집을 샀나 후회될 때가 많다.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은행권 대출금리가 1년 만에 껑충 뛰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에 나선 이들의 이자 부담도 두 배 가까이 불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 큰 문제는 대출 금리 '정점'이 아직 오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8%에 육박한 상황인데, 내년에도 한국은행과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것을 감안하면 연 10%까지 금리가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변동형(신규코픽스 기준)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5.28~7.80%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6월 중순(6월 14일) 이들 은행의 변동형 대출 금리는 연 2.35~3.99%였는데, 1년5개월만에 상단 금리가 8%에 근접했다.
올 6월만해도 이들 은행의 금리는 연 3.69~5.63%으로 4%대 주택담보대출을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반년도 되지 않아 4%대 상품이 자취를 감췄다.
신용대출 금리 역시 급등했다. 4대 은행의 고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금리는 지난해 8월말 연 3.02~4.17%에서 지난 18일 6.14~7.46%로 올랐다. 1년 3개월 만에 하단 금리가 3%포인트(p)나 올랐다. 고신용자 신용대출 최저 금리가 6%대라는 건, 시장에 5%대 대출이 없다는 의미다. 은행 기준으로 고신용자는 의사 등 전문직 고객을 말한다.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돼 연체 가능성이 매우 낮은 차주조차 매년 6%의 이자를 물고 대출을 받게 된 상황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영향이 직접적이었다. 한국은행은 올해만 기준금리를 2%p 올렸다. 지난 7월과 10월엔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0.75%p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포함해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는 상황에서, 물가상승률이 관리 목표치인 2%를 넘어 6%를 넘기는 등 인플레이션까지 가속화되자 한국은행 설립 이래 처음으로 '빅스텝'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그 와중에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가 시장금리 상승세에 기름을 부었다.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하면서 '국고채' 대우를 받았던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PF ABCP)의 부도로 채권시장에 불안감이 확산하면서 시장금리가 천정부지로 뛰었다. 회사채 발행이 막힌 기업들이 은행으로 몰리자, 은행들이 은행채를 통해 시장의 자금을 쓸어가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은행권 변동형 주담대 준거 금리가 되는 신규코픽스는 올 1월 1.69%에서 이달 3.98%로 뛰었다. 코픽스는 은행들이 자금을 조달할 때 들인 비용을 가중평균한 수치로 수신금리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큰 폭 인상하면서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현재 연 5%에 진입한 상태다. 신용대출의 준거 금리가 되는 금융채 6개월물은 연초(1월 3일) 연 1.591%에서 18일 4.645%로 올랐다.
대출금리 상승세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권은 변동형 주담대 최고금리가 완만한 상승세를 이어가며 내년 상반기엔 연 9%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연 10%에 도달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 연준과 한국은행이 내년에도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달 초 FOMC 기자회견에서 금리 인상 중단 논의 가능성에 대해선 "시기상조"라며 "아직 갈 길이 좀 남아 있다(some ways to go)"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를 상회하는 한 기준금리를 올려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시장에선 한국은행의 최종 기준금리가 연 3.75%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은행이 이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0.25%p 인상이 유력한 점을 감안하면 내년에 적어도 두 번은 금리를 올린다는 얘기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미국의 통화 정책 방향에 따라 한국은행도 움직일 수밖에 없는데, 미 연준이 내년 최종 금리 수준이 예상보다 높을 수 있다고 밝힌 만큼, 미국과의 금리 차이를 고려하면 한국은행도 따라 올려야 할 것"이라며 "국내 인플레이션 문제도 있기 때문에,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급격히 경색된 채권시장 상황도 대출금리 인상 압력으로 작용할 예정이다. 은행채가 자금시장 '블랙홀'이 되자 금융당국은 은행에 은행채 발행을 최소화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의 수신 의존도가 종전 대비 높아진 상황이다. 예·적금을 통한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난 만큼, 코픽스 상승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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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대출금리 상승·2금융권 유동성 애로 등을 이유로 은행권에 자금조달 경쟁을 자제해달라고 주문했지만, 유의미한 효과는 거두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은행은 모으고자 하는 자금의 규모를 먼저 정해두고 수신금리를 조정한다"며 "기업대출 수요가 늘어나면서 모아야 할 자금의 규모도 커진 만큼, 수신 금리를 조정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제공=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