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삶의 이정표이자 동력이다. 꿈은 곧 미래의 삶이다. 꿈은 그래서 소중하다. 꿈은 사람마다 다르고 다른 만큼 다채롭다. 스타트업이 꾸는 꿈도 그럴 것이다. 소중하고 다채롭다. ‘이균성의 스타트업 스토리’는 누군가의 꿈 이야기다. 꿈꾸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른 꿈꾸는 사람을 소개하는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된다.[편집자주]
“인류에게 ‘제3의 눈’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김재혁 레티널 CEO는 수줍어하는 미소년 스타일이다. 대학 3학년 재학 중인 젊은 나이에 창업을 했다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곱고 온화한 인상이다. 하지만 김 CEO의 꿈은 혁명가의 그것을 닮아 있다. 실제로 레티널이 하고 있는 비즈니스는 혁명과 관련이 있다. 김 CEO는 그것을 ‘3차 시각혁명’이라 표현했다.
그에 따르면 1차 시각혁명은 안경을 개발한 일이다. 2차 시각혁명은 안경을 진화시켜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개발한 것이다. 잘 안 보이는 것을 잘 보이게 한 점에서는 같되, 1차 혁명은 시력이 안 좋은 사람만 돕는 일이었다면, 2차 혁명은 시력이 아무리 좋아도 보기 힘들었던 것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게 큰 차이점이다.
시각의 3차 혁명은 증강현실(AR)의 구현이다. 인간의 눈이 실제의 세계와 가상으로 만들어낸 세계를 동시에 보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특수한 안경이 필요하고, 또 그 안경을 위해서는 특별한 기술의 렌즈가 필요하다. 레티널이 하는 사업이 그 렌즈를 만드는 일이다. 세계적으로도 극소수 기업만 그 일을 하고 있다.
■AR 렌즈는 인류에게 ‘제3의 눈’과 같다
인간은 지금까지 2개의 눈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육안(肉眼)이다. 동물로서의 인간의 눈이 육안이다. 물리 세계의 형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육안이다. 육안의 상대 개념이 심안(心眼)이다. 심안은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게 하는 눈이다. 보통 마음의 눈이라고 하는데, 이 눈은 지식과 경험으로 구성돼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게다.
심안은 특히 인간의 창의성과 깊은 관계가 있겠다. 지식과 경험을 통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고(상상하고) 그것을 현실로 구현해내는 것이 창의적인 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창작물은 그 모든 게 심안의 결과물인 셈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 심안의 결과물을 다시 육안으로 보고 느끼며 심안을 심화시켜나가게 된다.
증강현실은 육안과 심안이 절묘하게 융합되는 과정이다. 육안으로 현실의 물리세계를 목격하면서 동시에 인간이 만들어낸 가상 세계를 볼 수 있다. 가상세계는 당연히 누군가의 심안으로 만든 결과물이다. 한꺼번에 물리 세계와 심안의 결과물로서의 가상세계를 동시에 본다는 것은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김 CEO는 그래서 AR 렌즈를 ‘제3의 눈’이라고도 표현한다.
■‘AR 렌즈’는 경험 극대화의 핵심 요소다
“AR 렌즈는 시각혁명을 통해 공간을 재창조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물리적 탁자를 AR 렌즈를 통해 보면 훌륭한 사무공간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멋진 스키장이 될 수도 있죠. 공간의 재창조가 AR 렌즈가 만들어내는 효과입니다.”
김 CEO의 발언은 계속된다. “공간이 재창조 되면 많은 게 변할 겁니다. 같이 업무를 한다면 협업이 더 쉬워질 것이고, 몰입도도 한층 더 높아질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 결과적으로 생산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도움이 될 겁니다.”
AR 렌즈의 효과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경험의 극대화’다. 김 대표는 이를 ‘스토리 익스피어리언스(story experience)’란 말로 표현했다.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실제 혹은 가상의 경험을 이야기나 각종 창작물 형태로 공유하는 것이라면, 스토리 익스피어리언스는 현실 공간에서 실시간으로 스토리를 경험하는 것이다.
■스마트 안경은 글로벌 디바이스 차기 전장(戰場)
글로벌 빅테크의 경쟁은 대중의 시간을 점유하기 위한 싸움이다. 대중을 자신의 플랫폼 위에 더 오래 잡아놓을수록 경쟁력이 커진다는 뜻이다. 마이크로소프트, 메타(옛 페이스북), 구글, 애플 등이 어떤 형태로건 스마트 안경에 눈독을 들이는 까닭은 그것이 대중의 시간을 붙들어 매는 차세대 디바이스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대중의 시간을 점유하려면 경험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어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이 그 새 방법론이구요. 빅테크는 직접 하드웨어 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디바이스를 통한 생태계에서 주도권을 놓고 싶지 않아 합니다.”
레티널이 생산하고 있는 AR 렌즈의 시장이 앞으로 계속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 CEO는 여러 자료를 통해 3년 뒤인 2025년에 세계 스마트안경 시장이 20~30조원에 이르고 이중에서 렌즈 시장만 6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핀 미러(PinMR) 방식 렌즈 개발
세계적으로 AR 렌즈를 만드는 기업은 극소수다. MS의 홀로렌즈 사업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고, 레티널이 경쟁사로 생각하고 있는 AR 렌즈 전문 업체로는, 미국의 디지렌즈, 영국의 웨이브옵틱스, 이스라엘의 루무스 등을 들 수 있다.
레티널은 이중에서도 독보적인 방식의 렌즈를 개발해 주목 받고 있다. 다른 회사는 대부분 회절(DOE) 방식을 사용한다. 이는 렌즈 표면에 작은 돌기를 만들어 빛의 회절 현상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 눈이 영상을 인식하게 하는 방식이다.
레티널은 이와 달리 핀 미러(PinMR) 방식으로 개발했다. 렌즈 표면에 돌기가 아닌 작은 반거울을 붙여 빛의 반사를 통해 영상을 인식케 하는 방식이다. 김 CEO는 “어느 방식이 더 우수하냐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고 서로 장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 방식은 우리만 할 수 있다”며 독보성을 강조했다.
■CES 증강현실·가상현실 부문 2년 연속 혁신상
레티널의 핀 미러(PinMR) 방식 AR 렌즈는 그러나 김 CEO의 입보다 외부에서 더 호평을 받고 있다. CES 2년 연속 혁신상 수상이 대표적이다.
CES 2023 출품작인 ‘KEPLAR’는 “한 해 전 혁신상을 받은 전작 대비 ▲4배 커진 시야각 ▲9배 증가한 해상도 ▲3배 커진 렌즈 ▲경쟁사 대비 최대 8배 이상의 사용 시간 등을 구현했다”는 설명과 함께 다시 혁신상의 영예를 얻었다. 김 CEO는 강조하지 않았지만 핀 미러 방식 렌즈의 기술 진보성이 상당히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김 CEO는 “우리는 딱 세 가지를 추구합니다. 더 일반 안경 같고, 더 잘 보이고, 더 오래가는 것이 그것이죠. 그 점에서 경쟁사에 앞선다고 믿어요.”
■흔한 현상을 밀도 있게 관찰한 결과가 낳은 아이템
레티널은 김 CEO와 고등학교 친구인 하정훈 기술이사(CTO)가 공동 창업했다. 아이템을 창안한 사람은 하 CTO다. 하 CTO는 김 CEO와 이 아이템을 오래 이야기했고, 김 CEO는 사업화가 가능하다는 판단에 2016년 함께 법인을 세웠다. 하 CTO는 발명가의 기질을 갖고 있고, 김 CEO는 효용성을 더 중요하게 여겨, 죽이 잘 맞았다.
하 CTO가 이 아이템을 생각한 것은 우연이었다. 어느 날 개기일식 때 나뭇잎 사이를 뚫고 들어온 빛으로 인해 물기가 약간 있는 지표 위에 달에 가려진 태양의 이미지가 어린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사진기의 이론인 이른바 ‘핀 홀(바늘 구멍) 원리’가 거울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이치의 발견이었고, 핀 미러 렌즈 개발의 출발이었다.
■“50개 고객사와 보조를 맞춰 차근차근 갈 겁니다”
스마트 안경이 디바이스 차기 전장(戰場)이 될 것은 분명하지만 이제 막 시장을 열어젖혀야 하는 상황이어서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아직 일반 소비자의 사용성을 극대화하는 데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 사업이 예상보다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김 CEO는 그래서 스마트 안경은 스마트폰보다 스마트워치의 성장곡선을 따라갈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스마트 안경을 주력으로 하는 글로벌 고객사와 보조를 맞춰 투자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현재 레티널과 보조를 맞추고 있는 글로벌 고객은 50곳 정도이며 이중 10여개 고객으로부터는 매출이 일어나고 있다. 취재를 위해 경기도 안양 사옥을 방문한 18일 LG전자는 레티널에 5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고, 기자가 방명록을 쓰기 3시간 전에는 또 다른 유명 기업 두 곳이 방문한 것으로 방명록에 기록돼 있었다. 김 CEO는 “요즘에는 우리 기술이 소문이 나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찾아오신다”고 말했다.
레티널은 2016년 설립됐으며 지금까지 총 279억원을 투자 받았다.
■게임을 좋아했던 대학 3학년생의 빛나는 투혼
김 CEO는 군대를 먼저 가고 대학에 들어간 케이스다. 동기보다 대학에 늦게 들어간 만큼 더 알차게 다니려고 노력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각종 연구에 참여하고 방학 때마다 해외 연수를 나가려 했으며 기업 연구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런 다양한 활동이 창업 결심으로 이어진 듯하다. 김 CEO는 대학 1학년 때인 2014년에 하 CTO와 핀 홀 원리를 토론하면서 2학년 때인 2015년부터 경진대회 출품 등을 통해 창업 준비를 하고 3학년 때인 2016년에 본격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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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좋아한다는 김 CEO는 “게임이 갖는 다양한 스토리와 몰입 특성이 사업에도 큰 영감을 준다”며 “AR 광학계 솔루션을 통해 인류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게 나와 레티널 임직원들의 꿈”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이는 말씀: 김재혁 레티널 CEO가 추천한 다음 인터뷰 대상은 김승용 코코넛사일로 대표입니다. 코코넛사일로는 현대차그룹에서 스핀오프 방식으로 독립한 스타트업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