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소스 RISC-V, ARM 대안될까

[이슈진단+] 라이선스 정책 개편으로 지배력 강화 노리는 ARM (下)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22/11/02 15:54    수정: 2022/11/03 10:47

ARM이 지난 9월 초 퀄컴을 라이선스 위반으로 미국 델라웨어 주 법원에 제소하고 퀄컴이 이에 반소하며 제출한 소장을 통해 ARM이 기기 제조사에만 라이선스를 제공하고 자사 이외의 타사 IP 혼합 사용 금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ARM은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약 40%, 모바일용 프로세서 시장에서는 거의 대체가 불가능한 세계적인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이다. 퀄컴 뿐만 아니라 그동안 ARM에 의존하던 전세계 반도체 업체들의 사업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RISC-V 기반 시스템반도체 시제품. (사진=UC버클리)

ARM 아키텍처의 대안으로는 2020년대 들어 부상하고 있는 오픈소스 아키텍처인 RISC-V(리스크파이브)가 꼽힌다. 그러나 설계부터 검증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오픈소스 특성이 걸림돌로 꼽힌다.

■ 2010년 이후 ARM 자체 CPU '코어텍스' 부진

ARM은 2005년부터 코어텍스 A 시리즈 CPU 명령어셋을 개발해 주요 회사에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2010년 중반 이후 라이선스를 받아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코어텍스 대신 자체 개발 CPU를 탑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ARM이 오는 2024년 이후 자사 IP만 쓸 수 있는 방향으로 라이선스 정책 개편을 시도하는 이유 중 하나로 추측되는 것은 자체 개발하는 CPU IP '코어텍스'(Cortex)의 입지 축소다.

애플이 지난 6월 WWDC 22 기조연설을 통해 공개한 애플 실리콘 2세대 칩, M2. (사진=애플)

애플은 아이폰5에 탑재한 A6 칩부터 ARM 코어텍스 대신 자체 개발한 CPU를 탑재하고 있다. 2020년 말부터는 스마트폰·태블릿을 넘어 PC용 칩인 M 시리즈를 개발해 인텔 프로세서를 대체해 버렸다.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CEO는 지난 해 11월 누비아가 개발한 CPU 확대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사진=퀄컴)

퀄컴 역시 향후 코어텍스 대신 누비아가 개발한 CPU를 쓸 예정이다.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CEO는 이미 지난해 "누비아가 설계한 CPU가 XR이나 오토모티브(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수 있다"고 공언한 바 있다.

■ 퀄컴 "ARM 모회사인 소프트뱅크도 우리 방해해"

ARM이 퀄컴을 상대로 과거 누비아 시절 맺었던 라이선스 계약의 갱신이나 조정 등을 요구하는 것은 응당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마치 퀄컴을 겨냥한 듯한 라이선스 체계 개편을 통해 고객사의 사업 모델까지 흔드는 것은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게 일반적이다.

퀄컴은 소장에서 "ARM 뿐만 아니라 그 모기업인 소프트뱅크도 퀄컴에 손해를 입히고, 제품을 비난하며 퀄컴과 고객사의 관계를 방해하고, 존재하지 않는 불확실성을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퀄컴은 지난 해 2월 엔비디아의 ARM 인수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미국을 포함 각국 규제기관에 전달한 적이 있다. (사진=엔비디아)

물론 퀄컴 소장에 등장한 소프트뱅크가 실제로 퀄컴의 비즈니스를 방해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몇 가지 짚어 볼 대목은 있다.

우선 퀄컴은 엔비디아의 ARM 인수전이 진행되던 지난 해 2월 중순 미국, 유럽연합(EU), 영국, 중국 등 전 세계 주요국가 규제기관에 엔비디아의 ARM 인수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바 있다.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CEO는 지난 5월 말 ARM 인수를 위한 컨소시엄 구성 방안을 고려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사진=퀄컴)

또 엔비디아의 ARM 인수가 무산된 지난 5월 말 크리스티아노 아몬 CEO는 "경쟁사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ARM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최근의 퀄컴 행보가 소프트뱅크를 자극한 것은 아니냐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 ARM의 라이선스 체계 변경, 잠자던 RISC-V 깨우나

ARM이 라이선스 체계를 개편하려는 진정한 의도는 르네 하스(Rene Haas) ARM CEO, 혹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황금알 낳는 거위 배 가르기' 격의 결말을 가져올 수 있다.

르네 하스 ARM CEO. 지난 2월 엔비디아의 ARM 인수 무산 이후 취임했다. (사진=ARM)

ARM의 새로운 라이선스 정책을 따를 수 없는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오픈소스 명령어 세트인 RISC-V(리스크 파이브)로 대거 넘어가는 시나리오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RISC-V는 비영리 단체인 'RISC-V 인터내셔널'이 관리하는 오픈소스 명령어 세트다. 이를 이용해 시스템 반도체나 프로세서 등 어떤 제품이든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고 최종 제품을 판매할 때 로열티를 지불할 필요도 없다.

RISC-V는 오픈소스 기반으로 어떤 제품이든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고 최종 제품 판매시 로열티 지급 의무도 없다. (사진=RISC-V 인터내셔널)

익명을 요구한 국내 팹리스 스타트업 관계자는 "RISC-V 기반 제품은 라이선스 비용이 필요 없어 기존 ARM 기반 제품 대비 원가를 낮추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TSMC 이어 인텔도 생산·지원 나서...상용 제품도 등장

실제로 ARM 대신 RISC-V를 이용해 상용 제품을 생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저장장치 글로벌 기업인 씨게이트와 웨스턴디지털은 SSD나 HDD(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제어용 컨트롤러 칩 개발에 ARM 대신 RISC-V를 채택했다.

씨게이트가 개발한 RISC-V 기반 기업용 HDD 컨트롤러 칩. (사진=씨게이트)

RISC-V 기반 칩을 대량 생산하는 파운드리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해 4월에는 알파웨이브 IP 산하 오픈파이브(OpenFive)가 RISC-V 기반 칩을 대만 TSMC의 5나노급(N5) 공정에서 시험 생산했다.

인텔은 지난 2월 초 RISC-V 기반 반도체 생산을 위해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인텔)

파운드리 후발주자인 인텔 역시 지난 2월 초 기술 공동 최적화와 웨이퍼 셔틀 우선 순위 지정, 고객 설계 지원, 개발 보드와 소프트웨어 인프라 구축 등 RISC-V 기반 반도체 생산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RISC-V, 무한한 자유 대신 지원 없는 오픈소스 특성이 걸림돌

문제는 바로 오픈소스의 특성에 있다. RISC-V는 이용료를 요구하지 않지만 개발자를 지원해 주지도 않는다. 설계부터 검증, 문제 해결부터 테이프 아웃까지 모든 과정을 개발자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

ETRI가 개발한 RISC-V 익스프레스 플랫폼 기반 반도체 시제품. (사진=ETRI)

ARM이 준비 중이 라이선스 체계 변경 시점인 오는 2024년까지 약 1년여가 남은 시점에서 전 세계 모든 업체들이 한날 한시에 ARM을 버리고 RISC-V로 전환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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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구한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도 "기업들은 ARM에서 RISC-V로 짧은 시간 안에 넘어가기 힘들기 때문에 향후 소송 추이를 보면서 대응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퀄컴은 소송과 관련된 지디넷코리아 질의에 "ARM은 퀄컴이나 누비아의 혁신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 ARM의 주장은 퀄컴 역시 자체 개발한 CPU를 포함하는 폭넓은 라이선스를 가졌음을 무시하는 것이며 이런 권리가 인정받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