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다음달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ARM 공동 인수를 제안할 것 같다"며 메가톤급 발언을 했습니다. 그동안 수면 아래서 맴돌던 삼성전자의 ARM 인수 가능성이 처음으로 공식화된 겁니다. 세계 반도체 산업의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 ARM 인수를 놓고 기업간 수싸움과 빅딜 신호탄이 쏘아진 셈이죠. 지디넷코리아가 긴급히 전문가 의견을 듣고 ARM 빅딜 시나리오를 점검해 봤습니다. [편집자주]
올 2월 ARM 매각 계획을 철회한 일본 소프트뱅크(SB) 그룹이 삼성전자와 협력을 통해 몇 달째 표류하고 있는 ARM 출구 전략 조정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영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다음 달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서울에 오셔서 ARM 관련 제안을 할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22일 소프트뱅크 측도 "다음 달 손정의 회장이 한국을 방문해 삼성전자와 ARM의 전략적 제휴 관련 협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소프트뱅크는 지난 2월 ARM 매각 무산 이후 내년 3월 말까지 ARM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영국 런던증권거래소 등에 상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런던증권거래소 우선 상장을 주장해 소프트뱅크와 의견차를 보여왔다.
또 인텔을 비롯해 퀄컴,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업체는 지난 2월부터 계속해서 ARM 인수 컨소시엄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이 역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소프트뱅크가 삼성전자에 컨소시엄 결성 주도, 혹은 컨소시엄 참여 등을 요청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 소프트뱅크, 2016년 38조원 들여 ARM 인수...엔비디아에 매각 실패
소프트뱅크는 2016년 ARM 주주들이 가진 주식 14억 1천200만 주에 대해 한 주당 17파운드(약 21.79달러), 총 320억 달러(약 38조원)를 들여 ARM을 인수했다. 당시 손정의 회장은 "IoT는 기회이고, ARM의 미래 성장여력을 감안하면 저가에 인수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IoT 시장의 성장세는 소프트뱅크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ARM은 IoT 사업 부문인 'IoT 플랫폼'과 'IoT 트레져 데이터'를 소프트뱅크 그룹 계열사로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ARM에는 반도체 설계 부문만 남았다.
소프트뱅크는 이후 ARM 매각을 여러 차례 고려해 왔다. 2020년 9월에는 엔비디아 주식과 현금 등 총 400억 달러(약 47조 9천억원)를 받고 ARM 매각을 시도했지만 전세계 글로벌 반도체 업체의 반발과 각국 경쟁당국의 불허로 이를 철회했다.
■ 내년 3월 상장 시한 앞두고 英 정부 압박도 지속
소프트뱅크는 ARM 매각 좌절 이후 ARM을 전세계 주요 증권 시장에 상장해 투자 금액을 회수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소프트뱅크는 그간 잇단 투자 실패로 적자를 기록하는 등 현금에 목말라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미국 뉴욕 상장을 선호하는 소프트뱅크와 런던 상장을 요구하는 영국 정부의 의견차는 여전하다.
지난 2월 소프트뱅크는 엔비디아와 진행하던 ARM 매각 철회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2022년 회계연도가 끝나는 2023년 3월 말까지 ARM을 상장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지금까지 나온 주요 외신들의 보도를 종합하면, 소프트뱅크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반면 영국 정부는 ARM을 런던증권거래소(LSE)에 우선 상장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지난 16일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 7월 사임한 보리스 존슨 영국 전 총리 후임자인 리즈 트러스 총리 측도 ARM을 런던증권거래소에 우선 상장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 이미 한 번 실패한 '통매각', 재시도 가능성 낮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22일 "3년만에 처음 이뤄지는 한국 방문을 기대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ARM의 전략적 제휴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손 회장이 '전략적 제휴'라는 이름 아래 들고 올 수 있는 카드는 극히 제한적이란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ARM 인수 가능성을 점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현재 약 120조 원 가량의 현금성 자산을 가지고 있다. 이사회 승인만 거친다면 ARM 단독 인수에는 적어도 이론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ARM 통매각은 각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와 반도체 업계 반발로 이미 한 번 흥행에 실패한 시나리오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소프트뱅크가 엔비디아에서 삼성전자로 '배우'만 바꾸는 모험을 시도하기도 어렵다.
삼성전자 역시 과거 엔비디아의 ARM 인수를 반대했던 퀄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테슬라, 아마존과 고객사 혹은 주요 공급 업체로 얽혀 있다. 무엇보다 삼성전자 자신도 과거 엔비디아의 ARM 인수에 반대 목소리를 낸 적이 있다.
■ 소프트뱅크, 삼성전자에 컨소시엄 주도 요청 가능성
반면 ARM에 이해 관계를 가진 주요 반도체 업체가 컨소시엄에 참여해 ARM 주식을 인수하거나 일정 비율로 ARM에 투자한다면 사유화나 공정 경쟁 등 논란을 피할 수 있다. ARM 매각 무산 직후인 지난 2월부터 인텔을 비롯해 퀄컴,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업체는 "컨소시엄이 구성된다면 ARM 지분 확보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반 년이 지난 지금까지 컨소시엄 구성을 밝힌 곳은 아무 곳도 없다. 각 업체 당 어느 정도의 지분을 투자할 것인지, 컨소시엄의 주도권은 누가 쥘 것인지에 대한 의견 조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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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소프트뱅크 손 회장이 이번 방한을 통해 삼성전자에 ARM 지분 확보를 위한 컨소시엄 결성 주도, 혹은 컨소시엄 참여를 요청하는 방안이 오히려 더 현실적일 수 있다.
다만 소프트뱅크 역시 지분 투자와 컨소시엄 주도에 대한 대가로 삼성전자에 무언가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음 달 이재용 부회장과 손정의 회장의 회동에서도 이 '반대급부'가 중요한 안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