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사람이 너무 많아. 구겨지는 줄 알았어."
30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만난 이태원 참사 희생자 A씨(24·여)의 친언니는 텅 빈 눈으로 동생과 나눴던 마지막 통화를 떠올렸다.
언니 휴대전화에 남은 동생과의 마지막 통화 기록은 전날(29일) 밤 9시43분에 멈춰 있었다.
동생과 함께 놀러 간 친구가 숨졌다는 소식을 친구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으면서도 내 동생에게는 아무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평소 직장과 집만 오가는 '집순이' 동생은 휴일 밤 오랜만에 친구와 이태원으로 향했다가 결국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언니 기억 속의 동생은 항상 착했던 기억뿐이다.
언니는 "오늘 아침에 경찰 연락을 받고 병원에 왔다"며 "지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힘없이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바로 옆에 따로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안치실 앞에는 빨갛게 피부가 부어오를 정도로 눈물을 흘린 유족들이 오열하고 있었다. 새벽녘 날아든 비보에 급히 자신을 돌볼 새도 없었던 듯 잠옷과 슬리퍼 차림이었다.
이태원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는 전국 각지에 상흔을 남겼다. 서울과 수도권의 병원 장례식장에서 옮겨진 희생자들의 시신을 마주한 유족들은 끝내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이날 오후5시30분쯤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 장례식장 빈소 앞에서 '어떤 조카였냐'는 질문에 그만 A씨는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어렸을 때부터 똑 부러졌던 김씨는 누구에게 손을 벌리지도 그렇다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서울에 상경해 명문대를 졸업하고 어린 나이에 7급 공무원에 합격하면서 가족의 살림에도 보탬이 되는 자랑스러운 집안의 장녀였으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예쁜 조카였다.
하지만 내년 5월 남자친구와 결혼을 채 6개월을 남겨뒀던 김씨는 남자친구와 볼일을 보기 위해 이태원을 방문했다가 그만 사고를 당했다.
A씨는 "인파에 휩쓸려 그만 압착이 됐다고 들었다"며 "남자친구가 보호하려고 했는데 인파에 떠밀려 그마저도 어려웠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주위에서 심폐소생술(CPR)을 받고 깨어난 남자친구는 의식이 없는 김씨에게 직접 CPR을 1시간가량 진행했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한편 몇몇 병원에는 자리가 부족하거나 신원 확인이 늦어지는 바람에 희생자들의 빈소가 미처 마련되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는 모두 한국 국적인 20대 남성 2명과 20대 여성 1명이 안치됐다. 그러나 장례식장이 부족해 이날 오후까지도 희생자 빈소가 차려지지 못했다.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는 희생자들에 대한 빈소가 마련될 예정이었지만 시신 검시 등 신원확인 절차가 늦어진 탓에 그중 2명만이 저녁 늦게 빈소가 차려졌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오늘은 빈소가 아예 없어서 유족이 온다고 해도 들어올 수가 없다"며 "유가족분들도 병원으로 오지 않고 (합동분향소 설치 등의 계획을) 기다리고 계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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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9시30분 기준 이태원 참사 사망자는 총 154명(남성 56명, 여성 98명)이며, 이중 153명(외국인 26명, 14개국) 신원이 파악돼 유족들에게 전원 통보된 상태다. 경찰은 미확인 1명에 대한 신원 파악 중이다.
제공=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