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회장의 승부수...SW 중심 자동차

[이균성의 溫技] 방향이 속도보다 중요

데스크 칼럼입력 :2022/10/26 08:29    수정: 2022/10/26 13:41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내놓은 스마트폰과 앱 생태계는 ‘파괴적 혁신’이라 부를 수 있다. 그것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그 시대를 준비하지 못한 기업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기존 질서를 순식간에 흔들어버렸다는 점에서 ‘파괴적’이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수많은 기업이 출현하게 했다는 점에서는 ‘혁신’이다. 나락으로 떨어진 회사를 이끌었던 기업가들에게는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을 법도 하다.

아이폰이라는 이름으로 봤을 때 잡스 또한 그 파괴력이 이 정도였을 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상상이 가능할 수 있다. 아이폰은 그 이름이 여전히 폰을 가리킨다. 폰이 진화된 정도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의 아이폰은 방점이 ‘폰’에 있는 게 아니라 ‘아이’에 있다고 봐야한다. 폰의 기능이 기반기술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폰의 기능은 극히 일부이고 나머지 전부가 ‘아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폰이되 폰이 아닌 전혀 새로운 것이 등장한 셈이다. 아이폰 못잖은 ‘파괴적 혁신’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 자동차다. 차이되 더는 차로만 볼 수 없는 새로운 어떤 것을 아이폰처럼 구체화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기존 자동차 업계는 물론이고 IT업계와 신생 스타트업도 그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파괴적 혁신’은 필연적으로 급격한 낙오자를 만든다. 현대차그룹이 거기에 속할까 우려한 적이 있다.

현대차그룹은, 수년전만해도, 10여년간 머물렀던 세계 5위 자리가 정점으로 여겨지고 거기서 버티는 것이 최선의 결과일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갖게 했다. 자동차 시장에서 세계 5위면 지속가능경영 상태로 여겨지긴 하지만, 순위가 추락한다면 위태로울 수도 있다. 그즈음 특히 중국 사업에서 애로를 겪고 있었다. 무엇보다 새로운 혁신의 시대에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 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보니 기우에 가까웠다. 특히 정의선 회장 취임 후 현대차의 변신은 놀라울 정도다. 무엇보다 실적이 말해준다. 정 회장 취임 2년여 만에 현대차는 ‘글로벌 톱3’에 올라섰다. 올해 8월까지 판매량을 보면 419만여대로, 앞자리에는 일본 도요타(637만여대)와 독일 폭스바겐(507만여대) 뿐이다. 전기차 부문에서도 테슬라 및 폭스바겐과 함께 3강을 다지고 있다. 이제 없어서 못 팔 상황이 된 것이다.

내실을 다진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미래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정 회장은 올해 신년메시지를 통해 “미래 자동차의 경쟁력은 소프트웨어 원천기술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발언은 구체화돼 지난 12일 회사의 비전으로 발표됐다.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비전이 그것이다. 2025년까지 모든 차종을 SDV로 바꾸기로 했다. 또 2030년까지 SW에만 18조원을 투자한다.

정 회장 신년 메시지가 사내에서 제대로 표현된 것은 박정국 연구개발본부장(사장)의 발언이다. 그는 12일 유튜브 공식 채널을 통해 중계된 비전 발표에서 “자동차 개념을 다시 정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제품과 비즈니스를 전환해 모빌리티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차를 차이되 SW가 중심인 또 다른 어떤 것으로 재탄생시킨다는 말과 같다.

발표로 보면 당분간은 커넥티드가 최대 화두일 듯하다. 2023년부터 출시하는 모든 차종에 무선(OTA)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기술을 적용하려는 게 그 예다. 이 서비스는 자동차 소유자가 서비스센터를 방문하지 않아도 차와 센터의 통신연결을 통해 차를 늘 최선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게 핵심 개념이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2000만대의 자동차가 커넥티드 상태에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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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문한 탓인지 국내 기업이 SW에 18조원을 투자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이 정도 투자는 국내 어떤 SW 기업도 엄두를 못 낼 정도이지 싶다. ‘글로벌 소프트웨어센터’도 만든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 현대차 그룹을 자동차 회사로만 보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다. 모빌리티에 관한 글로벌 토탈 솔루션 회사. 꾸미는 말이야 어떠하든 정의선 회장이 회사를 크게 바꾸려고 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 변화에 숙제가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중국 사업은 여전히 속을 썩이고 있고, 미국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괴팍하기 그지없는 일명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라는 것을 들고 나와 외산 자동차를 차별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도 넘어야 할 파고이고, 중국 전기차의 약진도 거슬리는 대목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 회장과 현대차가 잡은 미래 방향성만큼은 기대를 걸기에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