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찾아간 전북 정읍시 SK넥실리스 배터리 동박 공장은 반도체 생산 시설처럼 청정실(Clean room·클린룸)을 갖췄다. 지난해 새로 지은 공장답게 깨끗하고 각종 첨단 설비로 채워졌다. SKC는 2020년 KCFT를 인수해 SK넥실리스를 출범했다. 4공장부터 6공장까지 3년 동안 1년에 하나씩 늘렸다. 정읍 1공장은 1996년 LG금속(현 LS일렉트릭)이 기반을 닦았다. 정읍공장 부지 면적은 10만㎡(약 3만평)가 넘는다.
정읍 5공장에서 커다란 제박기(얇은 막을 만드는 기계) 수십대가 폐구리를 녹인 액체 속에서 구리를 전기 분해해 얇은 구리막으로 만들고 있었다.
제박기는 4일 동안 최장 길이 77㎞ 전지용 동박을 1.4m 폭으로 만든다. 두께는 가장 얇은 게 4㎛(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전기차 배터리에 주로 쓰는 제품은 6㎛라고 SK넥실리스는 소개했다. 전시실에서 4㎛ 동박을 만져보니 팔랑거릴 정도로 얇고 가벼웠다. 겉보기에 얼마 차이 나지 않은 8㎛와 12㎛ 동박도 손대보니 4㎛가 확연히 얇은 게 느껴졌다.
전상현 SK넥실리스 생산본부장은 “동박을 얇게 만들수록 구겨지거나 찢어지기 쉽다”며 “이만큼 얇게 만들기도 어렵거니와 잘 다루는 것도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통 가정에서 쓰는 주방용 알루미늄 포일 두께가 20㎛ 정도”라며 “4㎛ 동박이 너무 얇아서 종잇장에 스치듯 손을 베일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일렀다.
완성된 동박 두루마리 무게는 6t이다. 5공장에서 6t짜리 동박 두루마리를 다음 공정으로 옮기는 데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제어실에서 버튼 하나 누르니 천장에 달린 자동 크레인과 바닥의 무인 운반차가 움직였다. 로봇이 견본을 분석실로 가져가 불량인지 확인했다. 이상 없다면 고객이 원하는 크기로 자른다. 이렇게 나온 동박은 국내외 이차전지 제조 회사로 들어가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음극 소재로 쓰인다.
전 본부장은 “국내외 폐구리 전문 취급 업체로부터 재료를 조달한다”며 “처음부터 버려진 구리를 재활용하는 만큼 국제 구리 가격이 올라도 수급에 문제없다”고 말했다. 고객이 원하는 크기로 자른 다음 생기는 자투리도 다시 녹이는 첫 단계로 돌아간다. 공장 한쪽에서는 자루에 구리를 1t씩 담아 모으고 있었다.
SKC는 SK넥실리스 정읍 5·6공장 같은 최신 설비를 동남아시아와 유럽, 북미에도 꾸리기로 했다. 2025년까지 생산 거점을 세계 곳곳에 두고 한 해 생산 능력을 25만t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지난해 5월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 연산 5만t 규모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비교적 저렴한 인건비를 말레이시아 장점으로 꼽았다.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는 교두보로 삼기로 했다. 내년 3분기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폴란드와 북미 공장은 현지 고객사 요구에 대응하는 기지로 삼는다. SKC는 지난 4월 폴란드 스탈로바볼라에 연산 5만t 규모 SK넥실리스 동박 공장을 착공했다. 2024년 2분기 양산이 목표다. 고객사와 손잡고 전용 라인도 구축한다.
SKC는 올해 안에 SK넥실리스 북미 투자 부지를 확정하기로 했다. 미국과 캐나다 지역 4곳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 총 2곳에서 동시에 공장을 지을 지도 고려중이다.
이재홍 SK넥실리스 대표는 “북미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전기차 생산지이자 소비 시장”이라며 “미국 서부 시대를 개척하듯 빠르게 그곳에 가서 널려있는 땅을 차지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북미에서는 이차전지용 동박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며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되면서 역내 생산 수요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북미 지역에까지 SK넥실리스 공장을 짓고 나면 SKC는 한국 공장을 연구개발(R&D)과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거점으로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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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전지용 동박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인수합병(M&A)도 검토중이다.
박원철 SKC 사장은 “지금부터 대형 M&A를 계획하면서 후보 회사를 살펴보고 있다”며 “당장 경기가 위축됐지만 내년 이후에는 인수합병 시장이 살아날 것 같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