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받은 만큼만 딱 일할겁니다"
직장인 5년차 박 모 씨는 최근 '조용한 사직'이라는 말에 큰 공감을 느끼고 있다.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란 실제 퇴사를 하진 않지만, 마음은 일터에서 떠나 최소한의 업무만 하려는 태도를 뜻하는 신조어다.
김난도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도 지난 5일 오후 '트렌드 코리아 2023' 출간 간담회에서 내년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로 '조용한 사직'을 꼽았다.
A씨는 "최근 '조용한 사직'이란 단어에 너무 크게 공감한다"며 "친구들이랑 술자리가면 10명에 9명이 다 동의할 정도로 요즘 우리 세대 직장인들에겐 보편적인 현상 아닐까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봉협상을 했는데 물가는 엄청 올랐는데 월급은 쥐꼬리만큼 올려주면서 불황에도 인상했지 않냐는 회사의 망언을 들으며 더 확실히 '조용한 사직'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특히 사원·대리·과장 등 이른바 MZ직장인들 상당수가 조용한 사직을 실천하고 있었다. 반면 차장·부장·임원 등 40~50대 직장인들은 온도차가 있었다.
통계에서도 이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지난해 12월 직장인 3293명을 대상으로 '딱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면 된다'라는 말에 10명 중 7명(70%)이 '동의한다'고 답했다. 세대별로 '동의한다'는 응답 비율이 20대(78.5%), 30대(77.1%)에서 높게 나타난 반면에 40대(59.2%)와 50대(40.1%)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 "부장님 이 월급 받고 왜 일 더해야죠?"…월급 루팡 아니라 딱 돈 준 만큼만
7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많은 MZ세대 직장인들이 '조용한 사직'에 동감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직장인 2년차 B씨는 "부장님이 지난 번에 저녁 술자리에서 라떼를 시전하시면서 '열정'을 갖고 회사 일에 임하라고 하는데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왔다"고 말했다.
최근에 결혼한 직장인 4년차 C씨는 "부장이랑 전무, 대표이사 등 윗분들은 그 당시 회사 월급으로 집도 사고 가족도 부양하니 회사에 충성했을 것"이라며 "지금은 회사 월급이 내 삶을 책임져줍니까"라고 되물었다. 이어 "그렇다고 일을 아예 안하고 월급만 챙겨가는 이른바 '월급 루팡'을 한다는게 아니다"라며 "딱 돈 준만큼 일 하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말을 듣던 D씨는 "상사들을 보니 회사에 충성하고 인생을 바쳐도 회사로부터 돌아온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며 "오히려 '조용한 사직' 같은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는게 맘 편하다"고 동조했다.
◇ "MZ세대가 벼슬인가"…'팀워크 포기' 기성세대 골머리
기성세대도 신입 직원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나 때는'으로 시작하는 무용담은 삼키고 후배 눈치도 살피느라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 그럼에도 마뜩잖은 후배의 업무 태도를 지적하기 보다 함께 일하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소기업 과장 양현수씨(35)는 "MZ세대가 벼슬도 아닌데 상전모시듯 하게 돼 우리 부서에선 신입 직원을 받고 싶지 않아 한다"며 "업무 시간을 칼같이 지킬 수 없는 날이 있음에도 한 후배가 20분 초과근무한 날을 문제 삼았을 땐 정말 난처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기업 부장급인 천 모 씨(40)는 "요즘 신입 직원들은 MZ세대라는 말로 자기 행동에 면죄부를 만들어 부담스럽다"며 "업무 인수인계를 위한 설명 한 번에도 후배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부터 하게 돼 오히려 혼자 일하는 것이 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고 고백했다.
천씨는 "후배들의 개인 영역을 존중하다 보니 대화를 하거나 친분을 쌓는 일도 포기한 지 오래"라며 "애사심이나 동료애를 꼭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팀워크로 완성하는 업무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씁쓸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업도 조직 내 MZ세대와 기성세대 간 불협화음을 느낀지 오래됐다. 그러나 단순히 조직 문화 개선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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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담당자 A씨(32)는 "신규 입사자 중 1~2년 이내 퇴사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며 "최근 젊은 세대가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자아 실현은 회사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연봉인상이나 복지제도 개선도 해결책은 아니라고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제공=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