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복지부 산하기관 성범죄 보도 이후

2차 가해 발생 가능성 세심 고려 못한 기자의 사과글

기자수첩입력 :2022/09/26 18:12    수정: 2022/09/26 21:27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8일 ‘작년부터 올해 7월까지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 11곳 중 7개 기관 직장 내 성범죄 발생’이란 제목의 국정감사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부했다. 한 의원은 복지부 산하 기관들의 지난해부터 올해 7월까지의 직원 징계현황을 분석해 근무기강 해이를 지적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 자체로는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매년 유사한 내용의 보도자료는 국감의 단골손님이었다. 생각해볼 부분은 범죄 사실의 묘사, 특히 성범죄에 대해 지나치게 구체적인 범죄 사실을 언론에 배부했고, 그러한 내용들이 여과 없이 상당수 언론보도화 됐다는 점이다. 기자도 기사를 썼다.

보도 이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여부가 우려된다는 의견이 여럿 기자에게 날아왔다. 직접적인 우려 표명을 한 곳들은 기사에 거론된 산하기관에서였다. 경솔함에 자책했다. 기자는 범죄사실을 흐릿하게 뭉뚱그려 혹시 모를 2차 가해 여부를 줄이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했다.

보라색 히야신스의 꽃말은 사과를 의미한다. (사진=픽셀)

고민은 여기부터 시작됐다. 성범죄 피해자의 2차 가해 발생 가능성이 존재한 상황에서 보도에 이르기까지 이를 예방할 수 있었던 단계는 어디였을까?

우선 피감기관의 경우는 제출 요구를 받은 자료에 대해 손을 대기 어려웠을 것이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10조에 따르면, (국회 상임)위원회 감사 또는 조사와 관련된 보고 또는 서류 등의 제출을 관계인 또는 그 밖의 기관에 요구할 수 있다. 

요구를 받은 관계인 또는 기관은 ‘국회에서의 증언ㆍ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서 특별히 규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이에 따라야 하고, 위원회의 검증이나 그 밖의 활동에 협조해야 한다.

그럼에도 의견 표명을 통해 해당 범죄 사실은 2차 가해 가능성이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해줄 것을 의원실에 요청해야 했다. 기관들은 그런 조치를 했을까?

또 1차 자료를 수집한 의원실은 어떤 고민을 했을까. 성범죄 가해 사실이 포함된 보도자료를 받아본 기자는 고백컨대 자극적인 부분을 다소 부각시켜 기사를 썼다. 나름의 이유가 있긴 했다. 범죄 사실을 통해 유사 사례에 대한 경각심을, 또 기관에는 더 강화된 사후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싶었다. 의원실도 이런 의도이지 않았을까? 문제가 있는 기관을 혼내어 다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말이다. 의도 자체는 순수했으나, 과정과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다른 질문도 가능하다. 2차 가해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자료를 제출한 기관, 이를 받아서 언론에 뿌린 의원실, 자료를 그대로 쓴 언론 중에서 최종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또 다른 질문도 생각해볼 수 있는데, 기관들은 2차가해 가능성을 방패로 자신들은 발을 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피해자의 고통을 세심히 배려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2차 가해를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기관에 부정적인 기사를 손보고 싶은 의도는 과연 없었을까. 복지부는 과연 의원실에 자료를 제출한 기관들로 하여금 기자들을 설득해 기사를 고치도록 종용하진 않았는지.

그럼에도 상당수 책임은 큰 고민없이 기사를 쓴 기자에게 있다. 기자의 기사 하나로 상처 입었을 복지부 산하기관 내 성범죄 피해자분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복지부, 산하기관, 의원실도 피해자들에게 미안함을 갖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