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어떤 사람에겐 약간 독한 감기 정도로 지나가지만, 어떤 사람에겐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같은 차이가 생기는 이유를 유전차 차원에서 규명하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 알츠하이머 유발 유전자, 코로나19 사망률과 관련 있어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유전자 변이가 코로나19 환자의 사망율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록펠러대학 연구진의 이 연구는 학술지 '네이처'에 21일 실렸다.
연구진은 암세포 전이와 알츠하이머 발병에 관여하는 'APOE'라는 유전자에 주목했다. 앞서 연구진은 APOE가 흑색종의 확산을 막는 역할을 하지만, 가장 흔한 APOE3와 아미노산 1-2개만 다를 뿐인 APOE2나 APOE4 변이를 가진 사람은 알츠하이머나 죽상동맥경화증에 걸릴 위험이 크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APOE 유전자를 갖도록 조작한 쥐 300마리를 코로나19에 노출한 결과, APOE2와 APOE4 변이를 가진 쥐는 APOE3 쥐에 비해 사망률이 높았다. 또 폐에서 바이러스 증식도 빨랐고 염증과 조직 손상도 심했다.
이는 사람에 대한 데이터로도 확인됐다. 영국 바이오뱅크에 등록된 1만 3천명의 환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APOE2나 APOE4 변이를 가진 사람이 코로나19로 더 많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APOE2나 APEO4 변이를 가진 사람은 세계 인구의 3% 정도인 2억 3천만명으로 추산된다. 이 유전자 변이와 코로나19 사이 관련성이 보다 명확히 규명되면 변이를 가진 사람에게 백신 접종을 우선 권장하는 등의 대처 가능하다.
소하일 타바조이 록펠러대 교수는 "나이나 성별, 당뇨 등의 병력이 코로나19 치명율을 높이는 것은 확실하지만, 이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라며 "흔한 유전자 변이와 코로나19 사망률의 연관 관계를 찾으려 한 연구라는 점에서 의미 있"라고 말했다.
■ 코로나 바이러스에 너무 잘 대응하는 것이 문제?
이상준 UNIST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세포 속에서 바이러스 감염을 인지하는 선천 면역 세포 역할을 하는 'ZBP1' 유전자가 코로나19 환자의 사망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유전자는 세포 속에 침투한 바이러스를 인지하고, 면역 단백질인 사이토카인을 만들라는 신호를 준다. 그런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사이토카인을 너무 많이 만들도록 하는 바람에 온몸에 과도한 면역반응으로 인한 염증이 생기고, 사망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물질이나 미생물 등을 제거하는 대식세포는 ZBP1 유전자를 가진 경우,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사이토카인 폭풍으로 사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 유전자를 제거한 대식세포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사멸하지 않았다.
ZBP1 유전자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특히 잘 인지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사이토카인을 만들어내는 경향도 커 환자 사망률을 높였다.
바이러스 치료에 많이 쓰이는 인터페론 요법이 코로나19 환자에 잘 안 통하는 이유도 ZBP1과 관련 있었다. 인터페론은 이 유전자를 강력하게 발현시켜 사이토카인 폭풍을 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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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 교수는 "면역세포는 병원체와 싸우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잘못하면 스스로 공격하는 '양날의 검'이라 면역세포 활성화의 균형이 중요하다"라며 "이번 연구는 어떤 선천 면역 센서가 균형을 깨고 사이토카인 폭풍과 사망을 일으키는지 밝혔다"라고 말했다. ZBP1 유전자 발현을 조절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연구진은 기대했다.
이 연구는 미국 세인트쥬드아동병원과 공동 진행됐으며, 학술지 '사이언스 이뮤놀로지(Science Immunology)'에 최근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