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은 꼭 없애는 것이 유익할까? 큰가시고기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큰가시고기는 몸 안에 기생하는 촌충 때문에 많은 괴로움을 겪는다. 일부 촌충은 큰가시고기 복부에 침입해 몸무게의 4분의 1이나 3분의 1 크기까지 자라기도 한다. 이는 마치 사람 몸 속에 20㎏이 넘는 기생충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
큰가시고기는 바다에 사는 종과 민물에 사는 종이 있다. 민물 종은 1만 2천년 전 처음 바다를 떠나 민물로 진출하며 기생충과 만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연구진이 큰가시고기들이 진화시켜 온 서로 다른 기생충 대응 전략을 비교, 8일(현지시간) 학술지 '사이언스'에 공개했다.
일부 큰가시고기들은 촌충이 침입하면 곧바로 면역 체계를 가동, 상처 조직을 만들어 촌충을 감싼다. 촌충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반면에 면역 체계를 거의 작동하지 않고 촌충을 몸 안에 그대로 놔 두는 식으로 대응하는 큰가시고기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알라스카나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지역 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호수에 사는 경우도 있는 이들 큰가시고기가 왜 다른 방식으로 촌충에 대항하도록 진화했는지 그간 논란이 돼 왔다.
연구진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지역 밴쿠버 섬에 있는 서로 인접한 두 호수, 로버츠 호수와 고슬링 호수에 사는 큰가시고기를 분석했다.
로버츠 호수의 큰가시고기는 면역 작용을 통해 촌충의 성장을 적극 억제하는 반면, 고슬링 호수의 큰가시고기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제외하면 두 호수의 큰가시고기들은 거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로버츠 큰가시고기 암컷의 번식 성공률은 고슬링 큰가시고기에 비해 80% 가까이 낮았다. 배 부분에 많이 생긴 상처가 산란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두 호수의 큰가시고기와 이들을 교배시켜 태어난 자손의 유전자를 분석, 이같은 면역 작용의 차이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몇 종류 골라냈다. 이중 하나는 쥐의 상처 작용을 담당하는 유전자와 같은 것이었다.
이어 연구진은 이 결과를 갖고 다시 본래 두 호수에 사는 큰가시고기의 유전자를 조사했다. 촌충을 억제하려 들지 않는 고슬링 호수 큰가시고기의 관련 유전자는 더 최근에 진화한 것임이 드러났다. 이는 촌충을 몰아내기보다는 공존하도록 하는 진화적 압력이 꾸준히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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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동물이 면역 체계가 기생충을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며, 필요한 경우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등 과정에 대한 이해를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매사추세츠주립 로웰대학 병원체연구소 나탈리 스타이넬 부소장은 "이 연구는 인간 감염병에 대한 연구 등 다른 동물에도 폭넓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감염병을 잘 관리하기 위해선 면역 반응에 따른 비용과 장점의 균형점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