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의료원이 내년 상반기부터 중입자치료를 시작한다. 난치암 환자의 생존율을 2배 이상 높이지만 부작용은 적고 치료기간이 짧다는 특성 때문에 일명 ‘꿈의 암 치료기’라 불리지만, 막대한 구축 비용 등의 문제로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중입자치료기가 설치·운영되지 못해왔다. 국내 첫 도입에 따라 국내 암 환자들의 치료 환경 개선이 기대된다.
중입자치료는 가속기 싱크로트론이 탄소원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이후 고정형이나 회전형 치료기를 통해 에너지빔을 환자의 암세포에만 조사해 치료가 이뤄지는 원리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중입자치료를 시행하는 병원은 13여 곳에 불과하다.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중국·일본 등에 이어 내년 우리나라가 치료를 시작하면 전 세계 14번째다.
3천억 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인 만큼 연세의료원이 중입자치료기를 도입하기까지는 10여년이 걸렸다. 지난 2010년 초반부터 최초 논의가 시작돼 2013년부터 중입자치료 도입 가닥이 잡혔다. 논의를 거쳐 2018년 도시바와 장비 도입 계약을 마치고, 내년 가동이 시작되게 된 것이다.
연세의료원이 도입한 중입자치료기는 고정형 1대와 회전형 2대다. 회전형은 360도 회전하며 중입자를 조사한다. 때문에 어느 방향에서도 환자 암세포에 집중 조사가 가능해 치료 횟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의료원의 설명. 직경 6미터에 무게만 200톤에 달한다. 회전형 치료는 암 치료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전형 2대를 설치는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최초다.
고정형 치료실은 내년 1분기에 문을 열 것으로 전망된다. 2024년 1사분기에 회전형 치료실도 전부 문을 열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중입자치료 횟수는 평균 12회로, X-선과 양성자 치료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환자 한 명당 치료 시간은 2분 남짓, 치료 후 별다른 통증은 없다는 게 연세의료원의 설명이다. 다만, 준비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하루에 치료 가능한 환자 수를 50명가량으로 유지할 예정이다.
윤동섭 연세의료원 의료원장은 “중입자치료는 5년 생존율이 30% 이하인 췌장암·폐암·간암 생존율을 2배 이상 끌어올릴 것”이라며 “희귀암 치료를 비롯해 낮은 부작용과 환자 편의성으로 전립선암 치료 등에 널리 활용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 중입자치료, X-선·양성자 치료보다 효과 높지만 부작용 덜해
중입자치료는 현재 사용되는 기존 방사선치료와 양성자치료보다 치료 효과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중입자의 생물학적 효과가 X-선과 양성자 보다 2~3배 정도 우수한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중입자가 양성자보다 질량비가 12배 높기 때문에 질량이 무거운 만큼 암세포도 더 강한 충격을 받게 된다.
X-선은 피부부터 몸 속 암세포에 도달하기까지 모든 생체 조직에 영향을 준다. 때문에 정상세포 손상을 고려해 에너지 세기를 줄여야만 한다.
반면, 중입자는 몸의 표면에서는 방사량이 적고 몸속 암조직에서는 방사량이 최대가 되는 중입자의 ‘브래그 피크(Bragg Peak)’ 특성을 갖고 있어 에너지빔이 조사 목표 지점에 최대의 에너지를 방출하게 된다.
정상세포나 조직에의 영향을 줄이는 것은 환자의 치료 부작용과 후유증 감소와 직결된다. 우수한 치료효과와 환자의 치료 이후 삶의 질 개선에도 중입자의 유용성은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그렇다면 중임자치료는 어떤 암 치료에 효과적일까?
혈액암을 제외한 모든 고형암에 대해 중입자치료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특히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자라는 암세포에 특히 효과가 강력한 점은 중입자치료의 특성 가운데 하나다. 저산소 환경에서 발생한 암세포는 생명력이 강해 높은 방사선 조사량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항암약물도 침투가 어려워 치료가 까다로웠다.
이익재 중입자치료센터장 겸 중입자암치료연구소장은 “중압자치료의 핵심은 정밀타격”이라며 “방사선 치료와 적응증은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치료 범위가 넓은 것 대신 암의 크기가 크고 덜 유동적인 종양의 치료는 가능하다. 대부분의 전이암은 치료 대상이 아니다. 이 센터장은 일본의 사례를 들어 “국내에서도 전립선암 치료가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수술이 어려운 흑색종 등에 중입자치료가 효과를 볼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중입자치료는 암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이 될 수 있어 환자 자부담 비용에 관심이 쏠린다. 연세의료원은 “아직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인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로 치료비 규모에 대해서는 추정이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