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없이 살 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반도체는 이제 사회와 산업의 생명수이자 권력입니다. 모든 것을 움직이고 연결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멈추고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1960~1970년대 노동집약적인 우리 경제를 첨단·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시킨 반도체가 이제 기술 패권 경쟁과 4차 산업혁명 속에 새로운 시대를 맞았습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생태계 확장은 어느 때보다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지디넷코리아가 창간 22주년을 맞아 '반도체가 미래다' 시리즈를 3부에 걸쳐 연재합니다. 우리 수출 산업의 첨병을 넘어 경제 안보 자산으로 평가 받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를 면밀히 짚어보고, 무엇을 준비하고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부: 세계는 반도체 전쟁
2부: 한국 반도체 신화는 계속된다
3부: 전문가에게 듣는다
삼성전자는 기흥·화성·평택·온양·천안 국내 5개 사업장에 더해 중국과 미국 2개 나라에 해외 공장을 뒀다. 인건비가 싼 국가에서 생산 비용을 아끼는 전략에서 우수 인력과 자원이 풍부한 나라에서 정책 지원까지 두둑하게 받는 전략으로 진화했다.
중국 산시성 시안에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생산 라인이 있다. 중국 장쑤성 쑤저우에서는 메모리·시스템 반도체를 조립하고 검사한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은 시스템LSI 생산 라인이다. 삼성전자는 마찬가지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도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미국공장,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 한 축
삼성전자는 미국 테일러에 들어설 신규 라인이 국내에 있는 평택 3라인과 함께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달성하는 핵심 생산 기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9년 4월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며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확실히 1등을 하겠다”고 밝혔다.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생산·연구개발(R&D)에 133조원을 투자해 세계 1위 파운드리 회사 대만 TSMC를 넘어서겠다는 목표를 잡았다.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은 7일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기자들과 만나 “세계에서 처음으로 3나노미터(㎚) 반도체 파운드리 제품을 양산했다”며 “성능을 끌어올려 개발 중인 2세대 제품에 요즘 고객 관심이 쏠렸다”고 말했다. 경 사장은 “그동안 삼성전자 5나노·4나노 파운드리 제품의 개발 일정과 성능은 TSMC에 뒤졌다”면서도 “3나노를 적극적으로 개발해 내년 말이면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지금과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다. 3나노 공정은 반도체 제조 공정 가운데 가장 앞선 기술이다.
삼성전자는 얼마 전 미국 테일러 공장 기초 공사를 시작했다. 미국 오스틴 사업장과 25㎞ 떨어진 곳에 있다. 기존 사업장 생산 기반을 활용할 수 있다. 용수와 전력 등 반도체 생산 라인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도 좋다고 삼성전자는 평가했다.
경 사장은 “테일러에 짓고 있는 새 공장에 고객 관심이 굉장히 많다”며 “테일러 공장을 기대하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와 사업을 같이 하자는 고객도 있다”고 귀띔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정부로부터 통 큰 지원을 받아 앞으로 20년 동안 텍사스에 반도체 공장 11개를 새로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2천억 달러(약 260조원)를 투자해 오스틴에 2개, 테일러에 9개 건설을 검토한다.
경 사장은 “반도체 파운드리는 마치 호텔처럼 건물을 미리 지어놓고 방을 빌려주는 사업 같다”며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큰 고객을 확보하려면 큰 호텔을 지어야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큰 고객과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을 하려면 생산 능력을 그가 원하는 만큼 갖춰야 한다”며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 평판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이어 “우리가 약속한 파운드리 제품을 제때 못 주면 계약 상대방이 망할 수 있다”며 “다른 회사로 눈을 돌릴 수 있는 메모리 반도체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중국시장 중요…윈윈 전략 찾는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반도체 사업장에 2012년 1기 기공식을 시작으로 2013년 전자연구소 설립, 2014년 1세대 V-낸드플래시 양산, 2015년 후공정 라인 완공, 2018년 2기 증설까지 꾸준히 투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0명이 될 때까지 중국 정부가 도시를 봉쇄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임직원 안전과 건강을 고려해 시안 공장을 탄력적으로 운영했다.
삼성전자 쑤저우 법인은 1994년 세워졌다. 메모리·시스템 반도체를 조립하고 검사하는 후공정을 맡는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다퉈 삼성전자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 삼성전자는 모두가 득을 보는 ‘윈윈(win-win)’ 방안을 찾고 있다. 미국 정부는 미국에서 세제 혜택을 받으면 중국에 더 이상 투자할 수 없다며 원천기술을 무기로 내걸었다.
경 사장은 “중국 반도체 공장에 새로운 설비를 들이는 게 어려울 수 있겠다”면서도 “세계 정보기술(IT) 산업에서 40% 넘게 비중을 차지하는 중요 시장을 삼성전자가 놓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 쪽에 붙지 않을 것”이라며 “미·중 갈등 속에서도 모두가 유리한 방법을 찾으려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삼성전자 해외공장, 100% 재생에너지 사용
삼성전자는 2019년 미국과 중국에서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해 해외 반도체 사업장에서 쓰는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바꿨다. 국내 사업장에서는 태양광·지열 발전 시설을 설치해 일부 사무실 전력으로 쓰고 있다. 삼성전자는 온실가스 저감 장치에 들어가는 새로운 촉매를 개발했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관련기사
- 중국, 시안 1주일 봉쇄…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소재2022.07.07
- 삼성전자, 시안 봉쇄 길어지면 ‘탄력적 조정’2022.01.03
- [르포]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가보니…"세계 최대 반도체 공장"2022.09.07
- 대한민국 반도체 역사 '삼성전자'…미래는 평택에2022.08.25
삼성전자는 영국 친환경 인증 기관 카본트러스트에서 국내외 모든 반도체 사업장이 탄소·물·폐기물을 줄였다는 인증을 받고 ‘트리플 스탠다드(Triple Standard)’ 라벨을 취득했다. 트리플 스탠다드는 3년간 사업장의 탄소 배출량을 3.7%, 물 사용량을 2.2%, 폐기물 배출량을 2.1% 이상 줄이고 종합 경영 평가 기준을 만족한 기업에 주어진다.
반도체 업계는 친환경도 기술이라고 여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 제품 미세화·고집적화에 따라 제조 공정이 복잡해지면서 물 사용과 탄소·폐기물 배출도 함께 늘어난다”며 “기업이 모든 반도체 사업장에서 물 사용량과 탄소·폐기물 배출량을 저감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