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흔히 ‘산업의 쌀’이라 불린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의 반도체 패권 경쟁을 치열히 벌이는 이유다. 개인용 컴퓨터(PC)에서 자동차, 산업용 로봇, 최근에는 미아찾기나 보안감시를 위한 지능형CCTV에 이르기까지 반도체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 곳이 없다. '반도체 에브리웨어'인 것이다.
반도체 활용성은 全산업의 지능화, 디지털 전환을 위한 인공지능융합이 가속화하면서, 고속의 병렬처리와 의사결정이 가능한 인간의 뇌와 유사한 동작 구조를 갖는 새로운 형태의 반도체, 인공지능(AI)반도체 시장으로 급속히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인 반도체시장 변화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세계적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전세계 AI반도체 시장이 지난해 343억 달러(약 44조원)에서 오는 2025년 711억 달러(약 91조원)로 2배 이상 급증, 불과 7년 후인 2030년에는 전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의 31.3%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시스템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아직 3%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동안 정부도 반도체산업 발전을 위해 다각적 노력을 해왔지만, 메모리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해진 국내 시스템반도체기업 육성과 부족한 기술인력 확충과 플랫폼 기술 확보 등 단기간에 격차를 해소하기에 많은 난제들이 있다. 이에, 지난 6월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5년간 1조 200억원의 투자와 전략적인 육성방안을 담은 '인공지능반도체 산업성장 지원대책'을 발표했고, 우리 원도 본격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6월말 발표한 정부 대책의 가장 특징은 두 가지다. 먼저 우리나라가 강점을 갖고 있는 메모리 기술 기반의 AI반도체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외산이 주도하고 있는 비메모리 시장에서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국내기술로 개발한 AI반도체의 테스트베드를 마련할 뿐 아니라 시장 중심의 선도형 AI반도체 산업 성장을 지원하는 초기 수요를 창출, 전문기업을 육성한다는 것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국내 기업이 개발한 AI반도체 제품에 수요기업이 개발한 AI 응용서비스를 공동으로 시범 적용하는 실증사업을 지원할 예정이다. 우수한 성능의 AI반도체를 개발해도 몇몇 글로벌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시장에서 인지도 부족 등으로 어려움이 있는 기업들에게 제품 실증을 통해 제품 경쟁력과 신뢰도를 검증 받는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또 수요기업에게는 제품 선택권을 늘려주자는 것이다.
특히, 해외 빅테크 기업들이 AI가 필요한 사용자들에게 자사 반도체 활용에 편리한 통합 소프트웨어 개발환경과 병렬컴파일러 등 개발 환경을 제공하면서 자사의 반도체 활용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아직 초기시장 형성단계인 국내 AI반도체의 시범 적용과 테스트베드는 반드시 필요한 전략이다.
둘째,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상용화 시장환경을 구성한다. 민간이 보유한 고성능 클라우드 환경에서 국산 AI반도체 팜(Farm, 약 10페타플롭스)을 구축해 상용 클라우드 서비스 환경의 대규모 테스트베드를 제공한다. 이는 상용화한 AI서비스상에서 외산 반도체와 객관적인 경쟁환경을 구축, 빠른 응용시장 적응력을 지원하는 것이다.
셋째, 정부가 나서서 초기 수요시장 마중물 역할을 한다. 국가 ICT 연구개발사업, 정보화 사업 등에 국내기술로 만든 AI반도체도 또 다른 대안으로 검토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국가시설물에 대한 지능형 CCTV 구축, 스마트시티 등 공공 시스템에서 외산 반도체 규격과 차별 없이 경쟁할 수 있고 활용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넷째, 다양한 AI서비스 활용을 위한 수요 맞춤형의 AI반도체 시스템 SW 개발과 AI바우처 사업을 지원한다. 특히 AI반도체는 AI서비스 유형에 따라 외산 플랫폼으로 개발한 SW에 대한 호환성을 유지하면서 성능에 최적화된 컴파일러, 라이브러리 등 SW환경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국내 중소 시스템 반도체 큰 도움이 되는 부분으로 시스템반도체 기업들은 다양한 응용서비스를 위한 상용화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 대한 패권 경쟁이 나날이 가속화하고 있다. 미중간의 정치 갈등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반도체 등 산업 패권을 위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취할 전략은 누구도 넘보지 못할 '급소 기술'을 갖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AI반도체다. 이에 국내 AI반도체 기술이 시장에 빨리 뿌리 내릴 수 있게 교두보를 마련, 상대적으로 앞서있는 외산 반도체 플랫폼과 공평한 경쟁구도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국내 AI반도체 시장과 수요시장이 역동적으로 활성화된다면, 국내 중소 반도체 기업의 기술개발과 투자여력이 늘어나게 되고, 그동안 유출된 해외 인재들의 국내시장 유입도 늘어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기술인재가 늘어나면, 기술력이 배가 됨은 물론이다.
이번 대책을 시작으로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다양한 시장 수요와 맞춤형 공급이 이뤄지는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한다면, 여기에 민간이 창의적 아이디어와 미래 기술, 인력자원 등의 투자가 집중된다면 우리나라는 가까운 미래에 세계 AI반도체 시장을 선도하는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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