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독일국가정책, 일관성과 중장기 접근 배울만

전문가 칼럼입력 :2022/08/23 14:51    수정: 2022/08/23 15:08

지석구 전 NIPA 본부장

필자는 민간과 공공분야 주재원으로 독일에서 두 차례 근무한 적이 있다. 유럽을 많이 다녀온 사람들은 느끼겠지만 시간이 흘러도 도시 모습이나 사람들 생활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별로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적으로는 뭔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코로나 19’가 막 터지기 직전 2020년 초 독일 경제에너지부 주관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행사 주제는 ‘Industry 4.0 현황 점검 및 이슈 토론’이었다. 독일의 Industry 4.0 정책은 제조업 혁신에 기반한 국가발전 전략으로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4차산업혁명과 유사한 정책이다. 이날 토론회는 독일 경제에너지부 담당 국장 인사말로 시작했는데 행사에 참가한 산학연 전문가들의 토론을 보고 느낀 점을 토대로 양국의 국가정책수립 방법 차이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첫째, 독일은 정부가 바뀌어도 국가의 주요 중장기 정책 근간은 흔들지 않는다. 플래닝(계획수립)에 많은 노력을 투입해 세밀한 계획을 수립하고 한번 수립한 정책은 좀처럼 바꾸지 않고 꾸준히 장기적으로 추진한다.

어느 국가나 비슷하겠지만 특히 독일의 경우 국가정책을 수립할 때 장기간에 걸쳐 이슈의 근원을 파헤쳐 심도 있게 분석하고 합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정책을 신중히 확정한다. 물론 부분 수정(Minor Change)은 있을 수 있지만 한번 수립한 정책은 상당히 오랫동안 변경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밀고 나가는 특징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플래닝에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했다면 이행과정에서 당연히 크게 바꿀 일이 적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초기 플래닝을 서둘러 얼기설기 하다 보면 바탕이 부실해 이후에 수시로 변경하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둘째, 독일의 많은 정책이나 프로젝트들은 하향식(Top-down)이 아니고 상향식(Bottom-up) 형태로 기획되며, 특히 실무자 입김이 많이 작용한다. 즉, 실무자가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정책을 수립한다. 산업정책의 경우 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연구 프로젝트들을 공공·민간 연구기관과 대학, 즉 산학연관이 공동으로 기획하고 민간과 정부가 자금을 투입해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주로 매칭펀드로 진행하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도 적은 편이다.

필자는 공공 R&D 프로젝트 협력을 위해 교육연구부, 경제에너지부 등 부처 공무원들을 여러 차례 접촉해보았는데 미팅이나 행사에 참석한 실무 공무원(대부분 과장급)들이 자기 분야에 대한 기본 지식을 충분히 갖춘 것은 당연하고 프로젝트 추진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상당히 갖고 있어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았다.

셋째, 독일은 어떤 정책을 수립하더라도 계획이 상당히 구체적이다. 큰 그림하에 추진할 세부사업들을 보면 실천 가능성이 매우 높아 예산 투입에 대한 효율이 높은 편이다. 예를 들면, ‘Industry 4.0’과 관련된 프로젝트 200여 개의 개요를 받아본 적이 있는데 좀 미미하다고 할 정도의 규모가 작은 프로젝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작은 프로젝트라도 성공시켜 실제로 제조 현장에 잘 적용하고 이런 것들이 모이면 전체적으로 큰 성과를 도출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위와 같이 양국의 정책수립 및 이행과정을 비교해보면 단중기 계획의 수립과 실천은 한국이 강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은 독일이 강하다. 또한 독일의 경우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상향식(Bottom-up) 정책을 주로 추진함에 따라 실제 현장에서 필요하며 또 구체적인 사업이기 때문에 프로젝트 투입에 대한 효과가 높다. 독일의 장점을 잘 활용해 우리나라 장점과 융합한다면 앞으로 우리의 많은 정책들이 더 성공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지석구 전 NIPA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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